스물셋
며칠 전, A를 만났다. A는 나와 동갑이며 함께 일했던 사람이다. 큰 눈을 가진 A는 똘망똘망한 인상만큼이나 열심히 일했고 잘했다. 언젠가 A가 나와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A가 궁금해졌다. A의 전공은 무엇이며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요 며칠 표정이 좋지 않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나와 다른 팀에서 일하던 A는 우리 팀 직원이 나가며 나와 함께 일하게 되었고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나는 직원인 A의 동료가 되었다.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은 단순하지만 많았다. 간식 주문과 정리, 사무보조, 매일 있는 외근까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조금 번거롭고도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하던 일은 A에게로 갔고 나는 외근 업무와 사무보조 업무만을 맡게 되었다. 가까이서 본 A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내가 하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신기했다. 어른들은 요즘 사람들을 보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눈이 너무 높다고 하는데 A를 보면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A와 나는 함께 외근을 다니며, 또 업무를 공유하며 가까워졌다. 내가 회사를 나오던 날, 나를 가장 따뜻하게 배웅해준 사람도 A였다.
회사가 아닌 곳에서 만난 A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A는 회사 일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았고 나는 그걸 가만히 들었다. A의 가장 큰 고민은 전공에 맞춰 회사를 택했음에도 막상 하는 일은 그것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A는 그 점에서 괴리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는 A를 보며 전공을 살렸다고 생각했는데, A의 입장에선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문득 전공과 취업에 대한 회의가 밀려들었다.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A는 내게 요즘 무얼 하냐고 물었다. 요즘 무얼 하냐며 사는 질문은 내가 어려워하는 질문 중 하나이다. A의 질문에 나는 웃으며 그냥 이것저것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A는 토익 학원 주말 반을 끊었는데 혹시 시간이 된다면 같이 듣자고 했다. A의 말엔 어떠한 티끌도 흠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해졌다. 취업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자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때의 나는 한의사를 꿈꿨지만 시간이 지나며 돈이 되지 않는 일들을 꿈꿨다. 누군가는 내게 돈을 벌며 글을 써도 되지 않냐고 말했지만 그럴 때마다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렇기에 나는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 선배들을 보고 내 또래의 아이들을 보며, 내가 너무 현실 감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주변을 봤을 때, 우리 과를 제외한 다른 과는 모두 토익 책을 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모두가 취업난에 허덕이며 공기업을 준비하거나 대외활동을 할 때, 나는 그러지 않는 것 같아서 생경해질 때가 있었다. 시를 읽으라는 선생님 말씀을 다시 생각하기도 했었다. 등단할 만큼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기에, 이러다 글마저 쓰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밀려올 때도 있었다.
그날 나와 A는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 뒤 헤어졌다. A는 내게 자주 만나자며, 즐거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나 역시 A에게 즐거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오랜만에 A를 만나 즐거웠지만 애써 숨겨두고 모른 척 했던 나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