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시작은 버림

스물여섯

by 목연





물건을 버리는 일은 어렵다. 특히 쓰지 않고 쌓아둔 물건을 정리하기란 미련을 동반한다. 아침이면 톨이와 달래가 찾아온다. 집사 있는 두 (길)고양이는 아침이면 집으로 와 잠을 자고 오후면 외출을 한다. 나의 기상 시각보다 십 분 일찍 찾아오는 달래와 톨이는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내 방 침대로 뛰어온다.


올해로 세 살이 된 달래는 톨이에 비해 차분하고 내향적이다. 그렇기에 달래는 제 기분이 좋거나 다른 고양이가 없을 때에만 애교를 부리고 눈을 맞춘다. 반면 톨이는 천방지축, 우당탕 그 자체다. 침대와 거실을 오가며 알은 체를 하던 톨이는 책이 한가득 쌓인 내 책상 위로 뛰어올랐다. 톨이가 발을 뗄 때마다 책으로 쌓은 탑이 흔들렸다. 나는 그런 톨이에게 하지 말라고 외쳤지만 톨이가 그걸 알아들을 리 없었다(알아들었다 할지라도 듣지 않을 것이다). 톨이는 중심을 잡기 위해 발을 더욱 움직였고 결국 책 탑이 무너졌다. 책이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톨이는 식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나는 한숨을 쉬며 떨어진 책을 주웠다. 책상에 쌓인 책을 볼 때마다, 공간을 가지지 못한 채 쌓여가는 옷을 볼 때마다 늘 ‘정리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옷과 책이 하나둘 쌓여갈수록 막막함도 커져갔다. 손을 대면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시간이 쌓여 결국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잠든 톨이와 달래를 거실로 내보내고 서랍장 위 쌓인 옷부터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 입었던 옷과 빨래한 옷이 뒤섞여 구분되지 않았다. 나는 옷들을 모두 챙겨 빨래 통에 넣었다. 옷을 치우자 서랍장 위가 조금 깔끔해졌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책장에 꽂힌 책 중 읽지 않는 책을 모두 버려야했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에 산 책과 시집, 에세이 몇 권을 제외하곤 모두 꺼냈다. 초등학생 시절 샀던 청소년 도서와 휴게소에서 샀던 손바닥 크기의 카프카 단편선, 미투 당시 폭로된 작가의 소설까지. 진즉 버렸어야 할 책들이 바닥에 쌓여갔다. 하나둘, 읽지 않는 책을 꺼내자 어느새 스무 권이 넘는 책이 탑을 이뤘다. 나는 그것들을 잠시 거실에 두고 오랜 시간 쌓인, 묵은 먼지를 닦아냈다.


책장을 정리하는 데만 한 시간이 더 걸렸다. 나는 장르별로 책을 꽂았고 자주 찾는 책은 앞쪽에, 가끔씩 꺼내 읽는 책은 뒤쪽에 꽂았다. 책장을 정리한 후 시선을 돌리니 책장에 꽂혀있던 책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책이 책상 위에 쌓인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났다. 대체 이 많은 책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사서 쌓아 둔 건지,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하나라도 빨리 버리고 비워야 했다. 책상 위에 쌓인 책은 주로 수업 때 사거나 서평단으로 활동하며 받은 책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 책장의 빈 곳에 꽂았다. 책상 한 구석엔 수업 교재도 한 가득 쌓여있었다. 학기가 끝난 후 그것들을 펼쳐 본 적은 없지만 나와 동기들의 습작품, 노력이 밴 것이기에 먼지를 턴 후 빈 박스에 넣어두었다. 책상 위에 놓인 책들은 대체로 신간이었기에 버리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그것들을 마저 정리한 후 청소포로 책상을 두 번 닦았다.


약 두 시간에 걸쳐 방 정리가 끝났다. 톨이는 여전히 잘 자고 있었고 달래는 이미 나간 후였다. 엄마는 그런 내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수고했다고, 훤한 책상을 보니 엄마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다고. 나는 쓰지 않는 것들과 미련 가득해 버리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집 앞에 내놓았다. 그리고 거실에 잠시 쌓아 둔 읽지 않는 책들을 끈으로 묶어 내다놓았다. 책이 쌓여 있지 않은 책상은 오랜만이었다. 방을 보고 개운함을 느낀 것 역시 오랜만이었다. 청소를 끝낸 후 엄마와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움의 시작은 버림이고, 버림의 시작은 비움이라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비워야만 버릴 수 있고, 버려야만 비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물건뿐만 아니라 나의 마음이나 인간관계에서도 그랬다. 쓰지 않는 물건을 두고 ‘언젠가는 쓰지 않을까’ 하며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뒀지만, 그 물건을 쓰지 않을 거란 걸, 또 그 행동이 미련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련은 버려야 할 것이자 비워야 할 것이었다. 그걸 버려야만 빈 공간이 생기니까. 사람도 그랬다. 너와 나 사이에 생긴 오해를 풀면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매순간 그런 건 아니었다. 특히 소중하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버림과 비움은 더욱 필요했다.


비워야지, 버려야지 하던 마음을 실천하게 해준 톨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톨이가 책 탑을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호기심을 참고 책상 위로 점프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쌓인 책을 보며 한숨만 쉬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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