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혀두었던 마음

스물일곱

by 목연





상처 난 자리에 연고를 바르면 딱지가 앉는다. 딱지를 꾹 누르면 처음 상처가 났던 그때보다 아프지 않다. 부드러운 피부 위 홀로 딱딱한 딱지를 보면 뜯고 싶어진다. 그걸 뜯으면 피가 나고 흉터가 질 것을 앎에도 말이다. 손톱으로 딱지를 건드려본다. 떨어질락 말락 하는 딱지를 조금씩 뜯어낸다. 결과는 둘 중 하나다. 딱지가 저절로 툭 하고 떨어지거나 딱지와 피부 사이 피가 새어나오거나. 우리 가족에게 아빠는 딱지가 앉은 상처와 같다. 몸에 산 상처와 다른 게 있다면 그 딱지가 시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기억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우리 집은 대체로 무난했으나 가끔 크게 흔들렸다. 그렇기에 행복과 불행 중 어느 것에 기운다기보단 그것의 중심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전히 시골인 그곳에서 아빠는 칠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빠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고 할아버지는 그런 아빠를 데리고 밭으로 나가셨다. 할아버지는 아빠가 어릴 때 군대에 다녀오셨다. 그때만 해도 성인이 되기 전 얼굴도 모르는 이와 결혼하는 게 당연했기에, 할아버지는 어린 자식들과 아내를 두고 군대로 향했다. 술을 못 했던 할아버지는 군대에서 술을 배웠고, 할아버지의 폭력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빠는 할아버지를 피해, 또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택시 기사 일을 하며 돈을 벌었던 아빠는 자취방도 없이 차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다. 아빠가 힘들게 번 돈은 할아버지의 외상값으로 쓰였고, 이모에게 믿고 맡겼던 돈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 이야기를 할 때, 아빠의 눈동자는 늘 먼 곳을 바라봤다. 아빠는 그 후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했고 직물 공장과 탄광 등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러다 아빠는 지금의 지역으로 왔고, 건설 노동자로 약 삼십 년 째 일하는 중이다.


엄마와 아빠는 외할머니의 소개로 만났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었던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외할머니는 자신이 죽기 전 꼭 시집을 보내야겠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그때를 생각하면 엄마는 늘 “할매는 네 아빠 어디가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의 삶 속에 할아버지의 폭력이 배어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술을 잘 하지 못하면서도 매일 술을 마셨다. 아빠가 술을 마신 날이면 집안은 얼어붙었고 모진 말이 집안을 채웠다. 아빠는 우리를 때리진 않았지만, 차라리 때렸으면 싶을 만큼 모질게 굴었다. 어렸던 언니와 나는 아빠 눈치를 보며 방으로 숨었고 엄마는 잘못한 것도 없이 아빠에게 미안하다 했다. 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런 날들이 계속 되었다. 아빠가 술을 마신 날이면 엄마와 나는 눈치를 봤고 언니는 울었다. 집에 불을 질러 죽여버리겠다는 아빠에게, 어린 내 손을 잡고 죽겠다 말하는 아빠에게, 엄마를 욕하는 아빠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열세 살이 되었을 때, 망치를 손에 든 아빠 앞에서 나는 우리 집이 잘못 되었음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와 언니는 생각했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하고.


그런 날이 반복될 때마다 아빠를 알고 싶었다. 아빠와 대화하고 싶었고 잘못된 점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아빠에게도 할아버지의 폭력이 상처였음을, 할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가버린 할머니에 대한 기억 역시 크나 큰 아픔임을 알고 있기에, 여전히 어린 소년인 아빠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늘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웠고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언니는 아빠를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게 되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빠를 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스트레스였다.


글을 쓰며, 기억을 되짚으며 마음에 난 상처를 꾹꾹 누른다. 그럼 피가 나기도 하고 딱지의 일부분이 떨어지기도 한다. 어릴 때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한 어른을 가까이에서 보며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어른이 되려면 행복한 청년이 되어야 하고, 나아가 행복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시 선생님의 말씀처럼 아빠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린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나는 여전히 그 방법을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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