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자이언트>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더 부정적인 시기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살아온 황성철 목사님의 회고록입니다. 평범하고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도 힘들 법한 여정들을 ‘오뚜기’처럼 살아오셨습니다. 저자의 이야기 방식은 진솔함입니다. ‘이것도 오픈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목사님께서는 실수와 실패를 가볍게 지나치지 않고, 뼈아픈 해석의 시간을 통과하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핑계와 외면은 성장과 성숙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세월을 어떻게 살아내야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사명자’가 되는지 읽는 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저자의 ‘네 살’은 평생 장애로 살게 하는 낙인을 찍는 해였습니다. 처절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어린 황성철의 그 날, 그 눈물과 울음은 미래의 수많은 광야 같은 생활을 예견하는 듯 합니다. 자신으로 인해 부모의 갈등이 유발되고, 아버지의 어머니를 향한 역정과 또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한맺힌 매질, 그런 날이면 자신을 붙들고 한없이 우시는 어머니! 그럼에도 저자의 부모님은 한평생 정직과 성실로 가정을 든든히 세워가셨고, 특별히 교육에 대한 열의가 깊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국민학교 6년의 어머니의 등은 유일한 교통 수단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등에 업힌다는 건 행복 자체여야 할텐데, 저자에게는 손가락질과 조롱을 받는 시험대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성적이 매우 우수했지만, 장애에 대한 편견은 중학교와 대학교 입학에 큰 좌절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하나님은 저자를 교회로 불러주셨고(국민학교), 교회로부터 ‘사랑’과 ‘보살핌’을 받게 하셨습니다. 목회자로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배필을 만납니다. 목회 사역의 현장에서도 감사의 열매를 보게 하셨는데, 때로는 교회와 목회자로부터 몸서리치는 수치와 자괴감과 분노의 아픔을 얻기도 했습니다.
미국 유학길에 오른 저자는 많은 도움의 손길로 학위를 마칩니다. 저자를 돕고 격려하는 교수님과 동료들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희생과 헌신이 녹여져 있었는데, 정작 본인들은 그것을 희생이나 헌신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저자의 표현에서 그들의 깊은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목회에 대한 배움과 지혜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가 이민 목회에서 겪은 실수와 실패,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교수 사역을 하면서 섬기게 된 협동 목사의 자리에서 보인 연약함, 그럼에도 끝까지 저자를 존중하며 신뢰하는 담임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는 저에게 지혜와 귀감에 되어 주었습니다. 은퇴 후, 설교 목사로 살아온 이야기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장충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이 공석일 때, 설교 목사로 섬기던 일화가 인상 깊었습니다. 당시 33년간 목회하시고 은퇴하신 고 이규일 목사님과 점심 식사를 하며 나눈 대화입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33년을 한 교회에서 목회하시고 은퇴하셨는데요. 이렇게 한 곳에서 30년 넘게 목회하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여쭸더니, 수저를 드시고 창 넘어 남산을 한참 보시다가 ‘인내야, 인내!”라고 하는 짧은 말씀을 주시고는 식사를 계속하셨다.”(p.283)
저자의 마지막 ‘자원 봉사’ 이야기도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은퇴자만이 느끼는 마음을 엿볼 수 있고, 특히 봉사하는 병원에서 발간하는 잡지가 있는데 거기에 실린 글이 참 좋았습니다. 저자는 봉사를 통해 순수함과 소박함, 자유로움에 깃듯 기쁨과 감사를 경험하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을 깨닫는 은혜도 누립니다(312).
저자는 “하늘은 괜찮다고 하는데, 세상은 아니라고(81)”하는 현실을 살았습니다. 갖은 수모와 억울함이 저자를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할 수도 있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고 오신 인생 여정이었습니다. 저자의 삶은 많은 영혼을 살리고 회복하게 하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되어 줍니다. 이 이야기가 많은 분들의 삶에 치유책이자, 영양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