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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현 Jun 07. 2023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글쓰기(2) 글을 꾸준하게 적으라. 

이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저도 글쓰기에 대해서는 계속 배우는 중입니다. 저는 내세울 만한 게 없습니다. 제가 요즘 매일 적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예요. 쓰다 보니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글쓰기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처음 입학한 대학의 전공이 방사선과였습니다.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진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취업을 생각해 들어갔어요. 그리고 집을 멀리 떠나고 싶어서 멀리 갔었지요.      


입학 후, 첫 학기 화학 수업시간인 걸로 기억합니다. 방사선과는 3년에 125학점(?) 정도를 듣기 때문에 매 학기 수업이 1-6교시였어요. 고등학교를 다니는 기분이었죠. 대학에 가면 캠퍼스 낭만이라는 환상이 있는데, 벽돌 안에만 있으니, 그것도 따뜻한 봄날에요. 음... 화학 전공자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저는 문과 쪽이었나봐요. 흥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수업시간에 시를 적고, 짧은 이야기도 끄적끄적~ 했지요. 그게 재미있었어요. 문제는... 혼자만 간직하면 좋았을텐데. 친구에게 보여준 게 실수였어요. 아직 피드백을 받을만한 마음의 그릇이 아니었던 거죠. 친구의 냉철한 판단에 글쓰기에 대한 흥미가 날아가 버렸어요. 부끄러웠어요. 비록 수업시간이고, 교수님에게는 죄송한 행동이었지만, 스프링이 달린 연습장에 글을 적는 나만의 창조는 기쁨이었고, 탈출구였어요. 뭐랄까. 중학교 때 선생님 몰래 짝꿍과 오목 뜨는 스릴이라고나 할까요. 아! 그러고 보니,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소설도 읽었어요. 서랍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그 후로 글쓰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10년 동안이요.      


그 말에 동요하지 않고, 꾸준히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아내가 참 고마운데요. 가끔 제가 지난날을 회고하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내는 한결같이 “지난 일은 지나 갔으니, 지금부터 하면 된다”는 말을 해줘요. 이게 별 말이 아닌 것 같은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요. 다시 할 수 있는 힘을 줘요. 포기하지 않는 내공을 심어주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반복해서 들으니 나를 밀어주는 힘이 느껴져요.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서평과 소논문 과제가 있었는데, 1학년 때는 힘에 부쳤어요. 학부는 편입을 해서 기독교학과로 졸업을 했는데, 서평 같은 과제는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글자를 적는 건 좋아했는데, 글쓰기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았어요. 사실,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어요. 2학년 때에 교회사 수업시간이었는데, 수도원과 관련된 영상을 보고, 감상문을 적는 과제가 있었어요. 오랜만에 글을 쓰는데, 사실과 느낌들을 재미있게 적었어요. 그냥 적었어요. 지난번에 얘기한 것처럼 그냥 편안하게 쓴 거예요. 제출을 하고, 다음 수업시간이었어요. 교수님께서 5명에게 책을 선물하겠다고 하시고는 갑자기 이름을 부르시는데, 마지막쯤에 제 이름이 들리는 거예요. 책과 함께 제출한 페이퍼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잘 읽었어요”, “Good” 두 글자가 적혀 있었어요.      


그 순간, ‘나도 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요. 기분이 좋았죠.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신감이었어요. 물론 지금 다시 읽어보면 부끄럽죠. 어느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뉘앙스가 이랬습니다. 늦게 공부하는 것에도 효과가 있다는 거예요. 학창시절에는 공부하는 방법이나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결과가 흡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직장생활을 하고, 인생을 살면서 연륜, 경륜이 쌓이면서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것에서 이전(학생 때)과 다른 이해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뭐 그런 뉘앙스였던 것 같아요. 음... 혹시 다른 이유면 어쩌죠. 제가 그 책을 확인하고 적은 게 아니어서요. 중요한 건 늦게라도 공부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10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일기도 적지 않았죠. 지금은 아이들에게 일기를 적도록 권하고 있어요. 첫째는 일기를 몇 줄만 적어요. 주변에 초등학교 1학년만 되어도 일기를 꽤 길게 쓰는 걸 봤습니다. 첫째가 적어오면 저는 질문을 해서 몇 자 더 적도록 유도를 해요. 물론, 강제적으로는 하고 싶지 않아서 유도만 해요. 그저 아이가 일기에 재미 붙기를 바라죠. 가끔 저녁에 일기를 같이 쓰자고 할 때가 있어요. “아빠! 지금 일기 적을 건데 같이 적을래!” 해요.      


그 날 이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잘 지켜지지 않았어요. 서평은 여전히 어려웠죠. 그러다가 신대원 3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서평도 재미있는 거예요. 부족하고 엉망이었어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냥 쓰는 게 재미있는 거예요. 신대원을 졸업하고, 도서관에서 가서 글쓰기에 관한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어요. 약 15권 정도 읽은 것 같은데, 책마다 비슷하게 말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지금도 계속 글쓰기에 관한 책은 구입하고 있어요. 읽어야 하는데.        


10년의 공백. 그때 계속 글쓰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아쉬웠죠. 그렇지만 감사하기로 했어요. 지금이라도 글쓰기의 매력을 알고, 이렇게 적고 있으니까요. 저는 글쓰기가 저를 치유한 경험이 있습니다. 나만 보기로 하고, 처음엔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스트레스가 조금 풀리는 것 같았지만, 곧 제 자신에게 이런 무서운 모습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글로 써 내려가기 전에는 나만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내가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지 못했구나.” “사랑할 마음이 없었구나.” “나에게도 잘못이 있구나.” 그 발견이 회개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러니 글쓰기가 저를 살린 거죠. 뭐든 쓰는 게 중요해요.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알지 못한 ‘나’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난 이런 성품과 성격, 이런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어. 그래서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이쯤에서 기억할 게 하나 있어요. 우리는 자신의 일부분만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일부분만 보도록 세팅되어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 일부분을 보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일부분만 보는 눈으로 타인을 만나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사는 겁니다. 나의 일부분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사는 거죠.      


그 일부분이 나의 삶을 만들어 갑니다. 그 일부분이 기쁨과 감사를 줘요. 또 그 일부분이 슬픔과 고통도 줍니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한 나의 다른 부분들(내가 보지 못한 나)도 기쁨, 감사, 슬픔,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다른 부분(내가 보지 못한 나)에 의해서 찾아올 때는 깜짝 놀라지요.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좋은 일에는 똑같이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지만, 위기나 고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할 때는 멘탈이 붕괴되고, 마음을 잡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물론 나의 일부분이 이것을 만들어낼 때에도 이런 충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이든, 내가 알지 못한 나의 모습이든, 삶을 균형있게 하고, 삶을 재정립하는 건, 그리고 위기와 고난, 무너짐과 회복 불가능한 삶에서 일상을 다시 살게 하는 힘은 글쓰기에도 있습니다. 글쓰기가 전부는 아니기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런데요. 글쓰기가 나의 일부분을 발견하게 해 주고,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해 준다면, 글쓰기만큼 위대한 인생의 동반자가 또 어디 있을까요?   

   

꾸준히 써 보세요. 지난번에 이어서 ‘그냥 편안하게 꾸준히’ 써 보세요. 꾸준히 쓰다 보면 글쓰기의 실력도 늘겠지만, 삶을 마주하는 태도, 삶을 해석하는 식견, 글을 쭉 쓰듯이, 삶도 포기하지 않고 쭉 밀고 가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다음 시간에 만날 때까지 쭉 써 보시길... 이만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짧게 적으려다 너무 길어졌습니다. 다음에는 언제 만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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