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을 멈추게 하는 그것이 당신을 나아가게 한다
[유희적 투쟁] 6화
저항이라는 이름의 연료
--- 당신을 멈추게 하는 그것이 당신을 나아가게 한다
5화까지 우리가 온 길을 짧게 정리해보자.
세계는 구조적으로 갈등을 내장하고 있다 (3화). 구원자는 오지 않는다 (4화). 무결하게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5화).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는가.
세상은 당신의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성실하게 쌓아 올린 것이 무너지고, 결백을 증명하려 할수록 오해는 깊어지고, 부당한 압력이 사방에서 온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 마찰 앞에서 둘 중 하나를 한다. 멈추거나, 벽을 저주하며 에너지를 소진하거나.
그런데 유희적 투쟁가는 벽을 만났을 때 비로소 미소 짓는다.
왜인지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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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
자동차 타이어는 왜 도로 위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지면과의 마찰 때문이다.
마찰이 전혀 없는 완벽한 빙판 위에서 타이어를 돌려보라. 아무리 엔진을 최대로 돌려도 바퀴는 제자리에서 헛돌 뿐이다.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열만 내다 멈춘다. 마찰이야말로 전진의 조건이다.
당신을 괴롭히는 그 문제, 당신을 가해자로 몰아세우는 그 시스템, 당신의 진심을 왜곡하는 그 관계 — 이것들은 당신을 멈추게 하는 장애물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라는 주체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시험하는 마찰이다. 그리고 그 마찰이 있어야만 당신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마찰의 유무가 아니다. 그 마찰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다.
날카로운 비난은 당신의 논리를 벼리는 숫돌로 삼아라. 부당한 압력은 당신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스프링으로 변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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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회계 처리하는 법
비극적인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반응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것이 내 잘못인가." "이 억울함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모두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머문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안에 있는 동안 에너지는 소진되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유희적 투쟁가는 질문을 다르게 던진다.
"이 파괴적인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 것인가?"
이것이 도구적 긍정성이다. 긍정성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분노도 억울함도 슬픔도 실재한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의 방향을 의지적으로 조율하는 것이다.
프로 권투선수가 경기 전날 분노를 느끼면 그 분노를 억누르지 않는다. 내일 링 위에서 쓸 연료로 저장한다. 당신의 억울함도 마찬가지다. 억울함 자체는 강력한 에너지다. 그것이 어디로 흘러가느냐가 문제다. 원망으로 흘러가면 당신을 소진시키고, 제작으로 흘러가면 당신을 전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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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을 선택하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모든 마찰을 연료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을 그릇을 키우는 마찰이 있고, 당신을 소진시키기만 하는 마찰이 있다.
나는 이것을 에세이집에서 확장통(擴張痛)과 붕괴통(崩壞痛)으로 구분했다.
확장통은 당신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고통이다. 불편하고 버겁지만 그것을 통과하고 나면 이전보다 큰 사람이 되어 있다. 붕괴통은 당신을 단순히 소진시키고 무너뜨리기만 하는 고통이다. 통과해도 성장이 없고 남는 것이 없다.
유희적 투쟁가는 이 둘을 구분한다. 확장통은 기꺼이 섭취한다. 붕괴통에서는 단호히 철수한다.
나를 소모시키기만 하는 무의미한 감정 싸움, 내 존재를 증명해도 달라지지 않는 관계, 에너지를 투입해도 구조가 바뀌지 않는 시스템 — 여기서는 과감히 철수하는 것이 전략이다. 철수는 도피가 아니다. 진짜 전장을 위한 에너지 보존이다.
당신의 존재 증명이 걸린 핵심적인 전장에서, 저항의 벽에 당신만의 문양을 새겨 넣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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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이 피를 흘리면서도 출항한 이유
1화의 선장을 기억하는가.
그는 건달패에게 칼을 맞았다. 치료하지 않았다. 구해준 여인이 도망갔다.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출항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 상처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그것들을 연료로 전환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칼에 찔린 것이 억울하다는 것을, 여인이 도망간 것이 슬프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알았다. 그러나 그 에너지를 원망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출항의 연료로 저장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떠난 배에 침을 뱉어봤자, 바닷물만 오염시킬 뿐이야."
이것은 체념이 아니다. 에너지 관리다. 떠난 배에 침을 뱉는 것은 붕괴통이다. 거기에 쏟을 에너지를 로맨토피아를 향한 출항에 쓰는 것이 확장통이다. 선장은 그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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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 앞에 있는 마찰은 무엇인가
오늘 당신 앞에 놓인 가장 큰 저항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라.
그것이 관계의 마찰인가. 직장의 마찰인가. 사회 시스템의 마찰인가. 또는 자기 자신 내부의 마찰인가.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
"이것은 확장통인가, 붕괴통인가."
확장통이라면 — 그것을 통과하라. 불편하고 버겁더라도. 그 마찰이 당신을 벼리고 있다.
붕괴통이라면 — 철수하라. 미련 없이. 그 에너지를 진짜 전장을 위해 아껴라.
이 구분을 매일 하는 사람과 하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는 5년 후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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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예고
7화 --- 당신만의 왕국을 선포하라
마찰을 연료로 쓰는 법을 알았다. 이제 그 연료로 무엇을 짓는가.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세계는 당신에게 무결하거나 친절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구원자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의 손에는 흙이 묻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마찰이야말로 전진의 조건이라는 것을.
이 모든 것을 알고 난 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선언이 있다.
� 이 연재의 내용을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면 → 에세이집 《유희적 투쟁: 이중성의 존재론》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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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