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체된 세계 위에서 춤추는 건축가의 선언
[유희적 투쟁] 7화
당신만의 왕국을 선포하라
--- 해체된 세계 위에서 춤추는 건축가의 선언
3화부터 7화까지의 흐름을 한 번 돌아보자.
세계는 구조적으로 갈등을 내장하고 있다 (3화). 구원자는 오지 않는다 (4화). 무결하게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고, 흠결이 건축 자재가 된다 (5화). 마찰이야말로 전진의 조건이다 (6화).
이것들은 각각 독립된 교훈이 아니다. 하나의 선언을 향해 모이는 조각들이다.
이제 그 선언을 해야 할 시간이다.
당신만의 왕국을 선포하라.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네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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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선언 : 당신은 의미의 최종 편집권자다
세상이 당신에게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으려 할 때가 있다. "가해자"라는 낙인을 찍으려 할 때가 있다. "무능한 사람", "위험한 사람", "문제 있는 사람"이라는 판결문을 들이밀 때가 있다.
당신은 그 판결문을 찢어버릴 권한이 있다.
사건의 물리적 사실은 바꿀 수 없다.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 그 말을 했다는 사실, 그 선택을 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건이 당신의 서사 안에서 어떤 의미를 수행할지는 오직 당신이 결정한다.
실패가 종착지인 사람과, 실패를 다음 전진의 재료로 읽는 사람이 있다. 같은 사건이 한 사람에게는 증거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연료가 된다. 그 차이는 사건의 크기가 아니다. 그 사건의 편집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다.
당신이 편집권을 내주는 순간, 당신의 서사는 타인에 의해 쓰인다. 당신의 억울함이 타인의 서사 안에서 정의된다. 당신의 상처가 타인의 언어로 명명된다. 그것이 피해자 서사의 가장 깊은 감옥이다.
당신의 서사의 최종 편집권은 당신의 것이다. 누구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다. 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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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선언 : 고통을 선별하고 마찰을 유희하라
6화에서 이야기한 확장통과 붕괴통의 구분을 여기서 더 밀어붙인다.
맹목적으로 견디는 인내는 미덕이 아니다. 견디기만 하는 사람은 소진된다. 소진된 사람은 싸울 수 없다.
유희적 투쟁가의 방식은 다르다. 고통을 선별한다. 당신의 그릇을 넓히는 확장통은 기꺼이 섭취한다. 그것이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이 당신을 벼리는 과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당신을 소진시키기만 하는 붕괴통은 단호히 베어낸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투쟁을 유희한다.
투쟁은 고통스러운 생존 노동이 아니다. 저항을 재료로 형태를 만드는 제작 행위다. 그리고 제작은 즐거울 수 있다.
장인이 단단한 나무를 깎는 것을 보라. 나무가 저항한다. 결이 있고 굳기가 있다. 그 저항이 없으면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장인은 그 저항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 저항과 대화하며 형태를 찾아간다. 그것이 제작의 즐거움이다.
저항을 재료로 삼는 순간, 투쟁은 고통이 아니라 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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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선언 : 충만함으로 연대하라
이 연재를 처음 읽는 분들 중 일부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철학은 너무 개인주의적이지 않은가. 자기 자신의 왕국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타인과의 연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정반대다.
결핍에서 나오는 베풂을 생각해보라. 자신이 힘든데 참으며 돕는 것. 자신의 억울함을 삭이며 배려하는 것. 죄책감에서 나오는 연대. 이런 베풂은 장기적으로 상대와 나 모두를 병들게 한다. 베푸는 사람은 소진되고, 받는 사람은 그 소진을 감지하며 부채감을 갖는다.
태양을 생각해보라. 태양은 지구에게 빛을 주기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에너지가 너무 넘쳐서 그냥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 넘쳐흐름이 지구의 생명을 가능하게 한다.
먼저 당신의 내면을 조율하여 본래의 역량을 충만하게 채워라. 당신의 역량이 120이 될 때, 나머지 20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라. 그것이 서로를 병들게 하지 않는 연대다.
결핍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충만함이 넘쳐흘러 닿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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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선언 : AI 시대, 당신에게 남은 마지막 영토
2026년이라는 시대의 맥락에서 이 철학이 가지는 의미를 짚고 싶다.
AI가 인간의 계산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다. 글을 쓰고, 분석하고, 번역하고, 코딩하는 것 — 이것들이 이미 AI의 영역이 됐거나 빠르게 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AI는 계산(Calculation)할 수 있지만 제작(Poiesis)할 수 없다. 이중 구속의 당사자가 된 적 없는 존재는 그 마찰을 재료 삼아 의미를 직조하는 법을 모른다. 진흙탕에서 발이 빠져본 적 없는 존재는 그 진흙으로 무엇을 지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흠결을 보석으로 바꾸는 킨츠기의 기예는 먼저 깨져본 자만이 수행할 수 있다. 저항을 연료로 전환하는 유희적 투쟁의 기술은 마찰을 직접 겪어본 자만이 발휘할 수 있다.
당신의 상처, 당신의 흠결, 당신이 가해자이기도 했던 기억, 그 모든 이중성의 경험 — 이것이 AI 시대에 당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영토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영토다.
이제 진흙탕 속에서 비명을 지르기를 멈추고 고요히 미소 지어라. 당신만의 왕국을 선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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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를 마치며 — 그리고 2부로
3화부터 7화까지, 이것이 유희적 투쟁론의 철학적 기반이다.
세계의 구조를 알았다. 구원자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무결함의 강박을 내려놨다. 마찰을 연료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왕국을 선포했다.
다음 화부터는 이 철학을 실제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에 들이댄다. 586 세대는 왜 자신이 억울하다고 진심으로 믿는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왜 새로운 가해를 만들어내는가. 젠더 전쟁은 왜 끝나지 않는가.
철학이 추상으로 남지 않고 현실의 칼이 되는 구간이다.
8화 --- 586은 변절했는가? : 피해자 서사라는 도덕적 마취제
한때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던 세대가 기득권이 된 뒤에도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한다. 이것은 위선인가, 기억 오류인가, 아니면 이중성 불감증인가.
이중성의 철학이 특정 세대나 이념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작동하는 구조임을 한국 현대사의 가장 날카로운 사례로 증명한다.
다음 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행됩니다.
� 이 연재의 내용을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면 → 에세이집 《유희적 투쟁: 이중성의 존재론》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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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