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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승희 Apr 19. 2020

'꼰범' 대신 꼰대가 되자

[젊꼰주의 관리자 일기] 


"꼰대 대신 꼰대 범죄자를 박멸해야 한다. 결과를 내기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폭언·폭행을 정당화하거나, 쓸데없는 회식·야근으로 충성도를 시험하던 방식,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다는 이분법적 관점과 업무 평가를 빙자한 모독은 박물관 전시실로 고이 보내드려야 한다. 이는 꼰대질이 아니라 꼰대 범죄다. ‘꼰범'들 때문에 선량한 꼰대들이 말 한마디마다 자기검열을 한다.



꼰대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을 설명하는 힘이다. 욕먹을 걱정 대신 밀레니얼의 눈높이에서 조직의 시스템과 문화를 설명할 역량을 길러야 한다. 그들을 설득하고 감동시켜서 따르게 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원칙이라도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겐 광물 원석일 뿐이다. 꼰대의 지시에 담긴 맥락과 기대효과를 빠르게 파악할 신입사원은 많지 않다. 게다가 ‘나 때는’ 선배나 상사가 맥락 설명 없이 지시해도 다 큰 뜻이 있겠거니 하고 따랐지만, 밀레니얼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해가 안 가면 물어본다. 좋다. 이 과정으로 꼰대는 신규 구성원의 조직 안착을 도울 수 있다. 혹은 꼰대는 새로운 자극을 받으며 원칙을 바꾸는 여지도 만들 수 있다."


<누가 꼰대를 나쁘다 낙인찍는가 (2020.4.12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493237)>



원칙. 요즘 가장 많이 떠올리는 단어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자신만의 원칙이 필요합니다. 흔들릴 수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칙이 없다면 누군가의 혹은 제도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혹은 주인인척 하지만, 가슴 밑바닥에선 노예 근성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며 살지도요. 




2년 전, 2018.6 지방선거가 끝난 후 그렇게 힘들어했던 이유가 그랬습니다. 내 원칙에 따라달라고 사람들을 설득할 힘이 적은 채로, 심지어 아직 내 원칙이 무엇인지 미발달한 상태로, 더 심각한 것은 나 자신과 가족을 돌볼 에너지와 생산수단/저축액의 여유 분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누군가를 설득하러 나섰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저는 선거가 끝난 후 쭉정이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주인/노예의 상태를 왔다갔다하기는 커녕,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살 길을 찾아 춤을 추고, 돈을 벌고, 에너지를 모으고, 가족을 돌보고, 매일매일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지기 해 노력합니다. 더 채워져서, 나 스스로는 물론 내가 속한 곳 어디에서든 이바지하도록 분투 중입니다. 제가 받은 도움을 값어치있게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사, 조직 관리, 사업 전략 방법 등을 여기저기서 찾아 읽습니다. 언젠간 아카데미에서 제대로 공부만 하고 싶습니다. 




성찰은 여전히 일상입니다. 제 맘 속 좋은 모델로 남은 리더/동료를 떠올리며,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점에 미안합니다. 이번 글을 쓰며 특히 그랬습니다. 더 주도적으로, 더 넓게 보면서 일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내가 지금 깨닫는 것을 그때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럼 우린  더 많은 일을 더 멋지게 성사시킬 수 있었을텐데. 




이제라도 원칙을 지키며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다짐합니다. 그리고 원칙을 지키는 동시에 자신과 조직을 지키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물론 꼰범의 경계선을 넘어가시면 안되겠지만) 




<누가 꼰대를 나쁘다 낙인찍는가>


꼰대는 요즘 것들과 함께 일하는 모든 회사원에게 공포스러운 단어가 아닐까. 내 또래 혹은 주변 관리자들과 이야기 나눌 때나 관리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볼 때 ‘꼰대'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이렇게 하는 걸 보며 나도 꼰대가 됐구나 싶어요, 이건 아닌 것 같은데 꼰대라고 불릴까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싫은 소리 할 사람은 항상 필요하니까 제가 그냥 꼰대 하고 말죠(눈물), 뭐만 하면 다 꼰대래요’ 등등 반응은 다양하다. 그 기저에 억울함과 걱정이 공존한다. ‘내 위치에선 당연한 일을 한 건데 나를 왜 이렇게 바라보느냐' 싶다가도, ‘꼰대로 낙인찍혀 직원들의 신뢰를 잃을까' 입단속한다. 꼰대 꼬리표에서 도망가다 보니 헷갈린다. 꼰대가 정말 나쁜 것인가.



꼰대는 ‘권력 차이가 존재하는 관계에서 아랫사람에게 자기 경험을 일반화한 결과물을 강요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직급 차이와 그에 따른 권한, 책임이 나뉘는 조직에서 꼰대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다. 업무 경력에서 얻은 경험을 조직 운영 시스템에 더하고, 세부 규칙을 따르도록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 지시하는 이가 꼰대다. 그런데 가끔 이 강요를 거부하는 신입사원이 등장한다. 그럴 때 꼰대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원칙의 중요성을 신입사원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할 수 있는 꼰대인가? 아니면 설명하는 대신 인격모욕 혹은 비효율적 방법을 택하는 꼰대 범죄자인가?



꼰대 대신 꼰대 범죄자를 박멸해야 한다. 결과를 내기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폭언·폭행을 정당화하거나, 쓸데없는 회식·야근으로 충성도를 시험하던 방식, 남자는 어떻고 여자는 어떻다는 이분법적 관점과 업무 평가를 빙자한 모독은 박물관 전시실로 고이 보내드려야 한다. 이는 꼰대질이 아니라 꼰대 범죄다. ‘꼰범'들 때문에 선량한 꼰대들이 말 한마디마다 자기검열을 한다.꼰대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을 설명하는 힘이다. 욕먹을 걱정 대신 밀레니얼의 눈높이에서 조직의 시스템과 문화를 설명할 역량을 길러야 한다. 그들을 설득하고 감동시켜서 따르게 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원칙이라도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겐 광물 원석일 뿐이다. 꼰대의 지시에 담긴 맥락과 기대효과를 빠르게 파악할 신입사원은 많지 않다. 게다가 ‘나 때는’ 선배나 상사가 맥락 설명 없이 지시해도 다 큰 뜻이 있겠거니 하고 따랐지만, 밀레니얼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해가 안 가면 물어본다. 좋다. 이 과정으로 꼰대는 신규 구성원의 조직 안착을 도울 수 있다. 혹은 꼰대는 새로운 자극을 받으며 원칙을 바꾸는 여지도 만들 수 있다.



밀레니얼도 꼰대를 선배로 인정할 수 있다. 밀레니얼이 싫어하는 것은 꼰대 범죄자이지 원칙론자가 아니다. 진흙 묻은 광물 원석을 다이아몬드로 씻어주고, 보석을 활용하여 조직 내 성장을 지원하는 꼰대를 누가 싫어하겠는가. 물론 꼰대는 이 활용법을 업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구체적으로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밀레니얼 직장인과 소통하는 법을 자체 교육하는 글로벌 기업의 제안이다.


선량한 꼰대여, 자신감을 갖자. 꼰대가 없다면 시스템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자리를 걸고 실무자와 신입사원이 노를 젓는 방향이 제대로 되는지 책임지는 사람이 꼰대다.욕먹을 걱정 할 시간에 꼰대짓을 잘하도록 노력하자. 힘들지만 조직의 꿈나무를 키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친절한 꼰대의 신입사원 밀착관리가 조직과 세상을 바꿀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36690.html#csidxe4d84e1471080ba8bb96373c906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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