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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승희 May 05. 2017

나중은 없다, 지금만 있다

나를 위한 글쓰기 (1)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망쳤다. 내 글을 고전 작품, 유명 문학과 비교하며 실망했다. 점점 글을 쓰지 않았다.


경험을 쌓아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믿음이 판단력을 흐렸다. 경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그저 '다 나중에 글쓰기에 도움되리라' 참고 넘겼다.


현재의 나는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생각이 자존감을 깎아내렸다. 비현실적인 롤모델을 상정하곤 나 자신의 부족한 점이 드러날까 두려워했다. '내 이야기'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욕심과 착각과 오해의 시간 동안 항상 숨이 가빴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가끔 글로 풀어내고 싶은 사건을 겪거나, 좋은 이야깃거리가 생겼지만 메모하는 데 그쳤다. 언제부턴가 글자란 산소 대신 이산화탄소로, 쓰기란 과호흡을 일으키는 대상이 됐다. 근 10년 항상 가슴에 무언가 맺혀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10년 동안 말과 글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특히 퍼블리에서 에디터로 일한 것은 행운이었다. 좋은 자극이 오가는 공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일이었다(특히 수평적인 조직 문화는 내가 지금껏 겪어온 언론사 3곳과 매우 대조적이었고, 앞으로 내 삶의 모습을 그리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다.


저자의 메시지와 근거와 통찰력이 글에 배어나도록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의식 속 질문도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올 초 폭죽이 터졌다. 저자의 문장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고민하던 중 갑자기 물음표가 떠올랐다.


내 문장은 언제 쓰지?


의문 다음 차례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남기지 못하고 죽는 게 아닐까? 살아온 시간은 30년, 어릴 적 막연히 생각한, 은퇴할 나이(60)의 반이 지났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나는 아무런 글도 남기지 못했다.


대신 주위에 글을 쓰는 사람들이 보였다.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과 어떤 게 좋은 글인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물론 전제는 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확실하다. 쓰고 싶은 게 분명한 사람들은 '지금' 쓴다.


그렇다면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문학 작품이고 경험이고 모자람이고 나발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쓰면 되지 않을까. 쓰기에 대한 열망이 최고조에 다다른 순간 에디터로서 한계도 느꼈다. 선택했다.


퍼블리엔 더 좋은 편집자가 필요하고, 저에겐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정했어요. 작년 말, 올해 초 지나면서 제가 제 글을 얼마나 쓰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지금도 쓸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퍼블리 저자들과 좋은 글을 만들기 위해 논의하는 과정이 저에겐 각성의 기간이 됐어요.

회사와 저 모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장하려면 빨리 결정해야 될 것 같아 산업도시 리포트를 발행하고 논의를 시작했고요... 

- 마지막 팀 미팅에서 읽은 고별사 중 -


언론사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퍼블리의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맛본 터라, 기존 언론사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좋은 글을 쓰려면 나는 데일리 취재 기자로는 할 수 없다. 경력을 살리며 글을 쓸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내가 벌이는 일도 있다. 비정기 온라인 잡지 <월간 퇴사>를 구상 중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퇴사자와 퇴사 시도자의 한풀이를 위한 콘텐츠다. 글은 익명(글쓴이와 회사 모두)이 전제다. 현재 4명을 섭외했다.


이밖에 그동안 구상했던 글도 준비 중이다. 직장이 금방 구해지지 않는다면 거제도나 목포에 가서 한 달정도 살아보고 싶다. 쇠락하는 조선업 도시의 현재,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의 기다림 등이 담긴 르포 기사를 쓰고 싶다. 


이밖에 엄마를 키우다-65세 엄마를 위한 30세 딸의 신문물 가이드(가제/에세이), 우치전(가제/페미니즘 웹소설), 우리 모두 나무를 키운다-자존감이 흔들리는 직딩을 위한 동화(가제/동화),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가제/에세이) 등등도 어떻게 구체적으로 발전시킬지 고민 중이다. 


마음의 빚인 심용환님(국정역사 교과서 논란 당시 반박 글을 썼던 강사님으로 인터뷰 했으나 그후 고초(?)를 겪으시고 현재는 전문 작가이자 방송인으로 활동 중)을 위해 무언가 글을 쓰고 싶다. 지금 계획은 그 분의 책을 다 읽고 멋진 서평을 쓰는 것. 이게 실제 도움이 될 진 모르겠으나 이렇게라도...


아무튼 <나를 위한 글쓰기> 1편의 결론은 하나다. 깨달았을 때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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