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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승희 May 07. 2017

절대적 사랑의 조건, 불통

 <Littor릿터> 독자 공모 '나의 반려동물'

고양이 혀가 벽지와 마찰하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대략 오전 4시, 5시 사이다샥샥, 셱셱. 웅미(2년 11개월)가 벽지를 핥아 내는 소리는 성대를 울린 것보다 효과적인 기상벨이다.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웅미의 건강은 최우선 고려 사항인데,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벽지를 핥는다고? 안 될 말이다. 

  

샥샥, 셱셱 소리는 자해 공갈묘의 협박 같기도 하다. 자리에서 일어서면 웅미는 핥기를 멈추고 앞장선다. 사료 그릇 앞에서 멈춘다. 벽지 핥기를 막으려면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 


자동 급식기에 저장된 1차 급식 시간을 현재 시간으로 바꾸니, 기계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갈색 사료 5g이 나온다. 기계가 그릇에 사료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쉬이잉 그리고 먹는 소리가 까드득꺄드둑.

급식기 앞에서 대기 중인 웅미

웅미는 여러 소리를 낸다. 수다쟁이는 아니다. 다만 내가 을 걸 때(잘 잤어? 사랑해. 안돼! 우리 웅미, 무서워요? 조금만 참으면 꺼내줄게요... 심심해요? 간식~)마다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끄응, 끙, 께엥, 으아앙, 으어엉, 
낑, 엉, 으잉, 으앙, 앙, 크으엉! 이양
...(무시하며 침묵)


벽지를 핥을 때처럼 의도가 파악되는 소리와 행동도 있지만대부분 이해불가다. 의도를 추측할 순 있으나 설득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토론을 할 수 없어 다행이다. 아니었다면 '왜 네가 벽지를 핥으면 안 되는지, 스티로폼과 고무 장판이 고양이의 장 속에서 왜 소화가 안 되는지, 왜 사료와 간식을 네가 원할 때마다 줄 수 없는지, 네가 케이지 안에 들어가 차를 타고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야 하는지' 등등을 설득하느라 웅미와 나의 시간을 다 썼을 것이다.  


말로 하는 소통이 원천봉쇄된 존재와 함께 사는 방법은 지켜보는 것뿐이다. 달이 들어찬 것 같은 금색 눈. 뛰어 놀 때면 핫핑크로 물드는 연분홍색 코와 귀. 따뜻하고 부드러운 몸. 내 손바닥을 베고 자는 작은 얼굴. 캣타워 꼭대기 층에 등을 비비며 춤이라도 추듯 버둥거리는 몸. 이 생명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정식 입양으로 함께 산지 1년 5개월, 지인의 반려 동물로서 처음 본지 1년 6개월이나 지났지만 볼 때마다 감탄한다. 아름다워서. 


정신은 거죽만큼이나 매력적이다. 매우 독립적이다.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반려인들이 집에 들어오면 꼬리를 비비며 환영한다. 쓰다듬는 손길을 받다가도 훽 외면한다. 붙잡으려 하면 앙증맞은 연분홍색 발바닥을 스르륵 밀며 자리를 피한다. 이름을 불러도 쳐다만 볼 뿐이다. 오지 않는다. 자신이 원할 때 이동한다. 솔직하지 못한 인간이라면 고양이를 부러워할지 모른다. 

웅미의 눈은 금색 우주다

이런 존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너를 지켜 봐주는 것. 너를 인정하는 것. 네가 계속 너로 존재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


운동과 사료와 간식 시간을 적절히 배분(사료 그릇 앞에 앉아서 나를 보는 아름다운 고양이에게 “3시간 후에 밥 나올 테니 기다려요.”라고 말하기란설사 고양이의 배가 뽈록 나왔다 한들매우 어려운 일이다)한다. 식탁 의자에 올라가 앉은 웅미에게 내려가라 말하는 대신 다른 의자를 찾아 앉아 밥을 먹는다. 


털과 뱃살을 하루 온종일 쓰다듬고 싶지만 자제한다. 대신 쓰다듬어 달라고 다리에 얼굴을 비빌 때는 손을 아끼지 않는다. 고양이 전용 화장실 두 곳에 모래를, 자동 급식기에 사료를, 정수기에 생수를 꼬박꼬박 교체하며 청결을 유지한다.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면, 이렇게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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