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만나는 자리

성탄을 기다리며

by 강석효

나는 하루에 한 번은 예수를 만난다고 생각한다.

그 만남이 늘 예배당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꼭 같은 얼굴로 오지도 않는다. 어떤 날은 아주 낯선 모습으로, 또 어떤 날은 너무 평범해서 그냥 지나칠 뻔한 얼굴로 우리 곁에 선다. 그렇게 다양하고 다른 모습으로, 예수는 오늘도 우리를 찾아온다.


성경은 말한다. “볼품도 없었다.”

그 문장은 꾸밈이 없다. 메마른 땅에 겨우 뿌리를 내린 햇순처럼, 가까이 가야만 보이는 존재였다고. 멀리서 보면 눈길을 붙잡아 둘 힘도 없는 모습이었다고.


그래서 예수는 늘 그런 자리에서 만난다.

사람들이 발길을 피하던 곳,

나병환자들이 웅크리고 있던 그늘에서.

서른여덟 해를 병에 묶여 지낸 사람의 지친 숨결 옆에서.

피가 멎지 않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야 했던 여인의 떨리는 손끝에서.

이미 썩는 냄새가 배어 있던 무덤 앞에서.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어부들의 비린내 나는 옷자락 곁에서.


그곳으로 오는 이는 화려할 수가 없다.

빛나는 옷을 입고, 성공의 냄새를 풍기며 다가왔다면, 그들은 그를 보기 전에 이미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예수는 그렇게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곁에 설 수 있었다. 그래서 숨지 않아도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우리가 부러워하는 나라와 닮지 않았다.

더 많이 가진 나라, 더 높이 오른 나라와는 다른 곳이다.

아무도 자신의 가난과 상처를 감추지 않아도 되는 곳, 가진 것이 없어도 서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곳이다.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그래서 더 평화로운 들판 같은 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푸른 눈에 긴 머리칼을 가진, 훤칠한 서양 배우의 얼굴로 예수를 그려 놓고, 그를 예수라 부른다.

그러다 정말 볼품없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예수를 만나면, 알아보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볼품도 없었다.”


이 말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예수에게서 조금 멀어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문장 속에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다.


하루에 한 번쯤, 초라한 얼굴로 우리 곁에 서 있는 그분을 알아보는 일. 그 만남이야말로, 오늘을 살아내게 하는 조용한 은혜일 것이다.

이전 15화나는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