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차 붕붕이
마을 공기에는 왠지 모를 잔잔한 기쁨이 떠다녔다. 노랗게 반짝이는 새 차 한 대가 아동센터 마당에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자, 아이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그 이름도 정겹게 ‘붕붕이’. 아이들이 서로 양보하듯, 또 은근히 경쟁하듯 지어낸 이름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묘해서, 그저 쇳덩이 한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 아이들의 손끝에서 이렇게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목사님, 오늘은 우리가 붕붕이 타요?”
하고 묻는 아이들의 눈빛은, 마치 내일의 소풍을 기다리는 순진한 기대로 반짝였다.
교회에서 운영해 온 선한 이웃지역아동센터에 새 차량을 지원받았다는 소식은 오랜 시간 묵묵히 수고해 온 이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한국 마사회 사회공헌재단에서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을 품어온 손길을 귀하게 여겨 기부해 준 것이라 하니,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짐이 더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차량은 기부받았으나 취득세며 등록세며 예상치 못한 지출이 한꺼번에 밀려와 마음 한쪽이 살짝 시큰했지만, 참 사람 살이란 게 늘 이런 식이다. 반가운 소식이 들리면 기쁨의 꼬리에 걱정 하나씩은 꼭 달려오는 법이니까. 그래도 용기를 내어 SNS에 조심스레 후원 글을 올렸다. 아이들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올린 글이었는데, 놀랍게도 올린 지 채 30분이 되기도 전에 필요한 목표 금액을 훌쩍 넘어버렸다.
마치 누군가 뒤에서 조용히 등을 떠밀어주는 듯한 순간이었다. 긴 세월 살아오며 ‘적시에 도착하는 도움’이라는 게 얼마나 드문지를 잘 아는데, 그 드문 일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이렇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누군가는 환자 진료를 기다리다가, 누군가는 점심밥을 짓다가, 또 누군가는 커피 한 잔 들고 스크롤을 내리다 잠깐 멈춰 마음을 건넨 것이다. 그 작은 손길들이 모여 큰 강물이 되듯 금액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기쁨보다 더 깊은 벅참을 느꼈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도 누군가의 필요를 알아보고 발 벗고 달려오는 마음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 그 마음들 위에 우리 아이들이 서서 자라난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고 든든했다.
그렇게 모이고 모여, 문제는 어느새 자연스레 해결됐다. 참 이상한 일이다. 혼자였으면 눈앞이 캄캄했을 일인데, 함께하니 별일 아니었던 것처럼 가볍게 넘어가 버린다. 나이 들수록 깨닫는다.
은혜란 이런 것이다. 혼자 감당하기엔 무거운 짐이 여러 사람의 손에서 나눠지고 가벼워지는 기적.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깨끗하고 따뜻한 새 차를 타면, 그동안 낡은 차에서 서로 비좁게 다리를 맞부딪치던 일이 더는 없다. 등받이가 폭신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창도 훨씬 넓어지고 들어오는 바람도 더욱 시원해지고 창밖 풍경 또한 더욱 커다랗게 들어온다.
“목사님, 붕붕이는 듬직해요.”
그 말 한마디에 저마다의 마음속에도 싱그러운 바람 한 줄기가 스며드는 듯했다. 매일 학교에서 센터로, 센터에서 집으로 아이들이 안전하게 오가고, 방학중에는 체험학습으로 향할 길이 더욱 밝아질 것이다.
문득 생각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붕붕이 같은 은혜의 운전석에 올라타는 일’이 아닐까?.
내 힘과 능력은 늘 턱없이 부족하고, 때로는 지치고 외롭지만,
하나님은 묵묵히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가 걱정할 겨를이 생기기도 전에 삶의 빈틈을 채워주신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작은 손을 얹고 말하는 것이다.
“주님,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 위에서,
우리 아이들은 웃음으로 자라고,
어른들은 서로의 짐을 나누며 더욱 단단해지고,
교회는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조용히 빛나는 등불이 된다.
새 노란 차 붕붕이가 마당에 선 그날,
우리는 다시 한번 배웠다.
은혜는 멀리 있지 않다.
사랑은 늘 우리 곁에 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길을 미리 준비해 두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