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마 같은 교회에서 피어나는 은혜
진흙이 불을 견뎌야 도자기가 되듯 사람도 삶의 열기와 부대낌을 지나야
조금은 단단한 모양을 갖추게 된다는 말을 살아갈수록 깊이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이 불러 모은 제자들만 봐도 그렇지요.
누군가는 거친 손으로 고기 잡던 사람이었고, 누군가는 계산이 빠른 세리였고,
또 누군가는 가슴에 늘 뜨거운 분노를 품고 살던 열심당원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닮은 데 하나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르심 하나에 이끌려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한숨도, 기쁨도 나누며 살아갔습니다.
그 모습이 늘 신비롭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평생 서로 스칠 일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주일마다 한 공간에 모여 앉습니다.
고된 일로 굳은 손을 가진 사람, 거친 환경에 오래 살다 와 말투가 딱딱한 사람,
웃음이 많은 사람, 눈빛이 자꾸 흔들려 마음이 걱정되는 사람까지…
그렇다고 이들이 서로를 곧바로 이해하는 건 아니지요.
혹은 오래된 오해가 스멀스멀 얼굴을 내밀 때도 있고, 어디선가 단단한 자존심끼리 마찰음이 나며 예배당이 마치 불가마처럼 뜨거워질 때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차라리 교회를 벗어나면 내 마음이 더 조용해지지 않을까”
하고 흔들릴 때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 마음을 부정하지 못할 만큼 사람 사이의 열기는 때로 너무 뜨겁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님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가 서로를 긁고 다듬으며 결국은 더 깊은 사람으로,
더 넓은 마음으로 성숙해지도록 하시려는 듯합니다.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이
나를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아채곤 하지요.
이는 마치 도자기가 불을 지나야 빛을 갖는 것처럼
우리도 교회의 불가마를 통해 자신도 몰랐던 결을 드러냅니다.
한 번 금 간 마음도 다시 이어 붙여지고, 딱딱해진 성격도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사람이 사람에게서만 배울 수 있는 온기를 또 한 번 새로이 배워갑니다.
결국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완전함을 이루는 곳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느껴가는 자리입니다.
그렇기에 불가마처럼 뜨거운 날이 있어도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구워져
서로를 더 이해하는 그릇, 조금은 더 사랑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그 과정이 결국 희망이라고 믿습니다.
불이 지나간 자리마다 금이 아니라
새로운 빛깔이 나타나듯, 우리의 믿음도 관계도 이 뜨거운 과정을 지나 더 견고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불 속에 던지시는 분이 아니라 불을 통과하도록 손잡아 주시는 분임을 조용히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그 믿음 붙잡고, 희망의 숨을 길게 내쉬어봅니다.
언젠가 이 뜨거움도 하나님이 주신 빛으로 반짝이리라 믿으면서.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불에서 택하였노라.”
— 이사야 4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