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예의를 지킨다는 것

by 강석효

사람 사이에도 예의가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는 어떠해야 할까.

이 질문은 신앙의 깊은 곳을 조용히 건드립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재산을 잃고, 자식을 잃고, 몸의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늘을 향해 소리칠 만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신 자기의 출생을 저주했습니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차라리 숨을 거두었더라면 낫지 않았겠느냐고 말합니다.


이 장면을 두고 우리는 흔히 욥의 연약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모습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단정한 슬픔에 가깝습니다.

욥은 고통 앞에서 무너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무례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설명의 대상으로 끌어내리지 않고, 심판의 자리로 앉히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끝내 놓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는 고통을 참아내는 법보다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는 법에 더 익숙합니다.

기도도 어느새 요청서가 되었고, 신앙은 결과가 있어야 유지되는 거래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께 무례해집니다.


욥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울었지만 선을 넘지 않았고, 절규했지만 하나님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 절제는 냉정함이 아니라 존엄이었습니다.


중보기도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무언가를 설득하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조용히 서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아픈 이들을 위해,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이 나라를 위해,

그리고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해 말을 고르며 기도하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기도는 세상을 움직이기 전에 먼저 우리를 단정하게 만듭니다.

고통을 없애 달라는 외침보다,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겠다는

작은 결심이 먼저 자라게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지만,

끝내 “나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 마지막까지 지켜낸 부름 속에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예의가 담겨 있었습니다.


신앙은 고난이 없음을 증명하는 일이 아닙니다.

신앙은 고난 속에서도 태도를 잃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그 예의 하나로 오늘을 살아내는 일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한 믿음을 가지기를 기다리시기보다,

고통 속에서도 무례해지지 않는 그 한 걸음의 신앙을 오래 바라보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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