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고 깊이 있는 연출과 담백한 연기가 즐거웠던
피곤한 몸에 170분짜리 연극이라니.
(중간 15분 휴식 포함)
게다가 봄날답지 않게,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쏟아지는 빗줄기.
내 몸도, 공연도, 장마 같은 봄비도 내가 어찌할 수 없으니
일단 극장 앞으로.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니,
눈앞 무대에는 또 하나의 객석이 나를 바라본다.
디지털 영화관이 일상이 된 시대,
무대 공간은 35mm 필름 영화관의 객석으로 되살아난다.
이곳에서 일하는 세 명의 젊은이.
빠르게 바뀌는 세상 속,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지만
그 일상을 깊이 들여다보면
고립감, 좌절, 우울, 혼란의 감정이 눈에 띈다.
나는 웬만한 연극은 한두 번쯤 졸다 깨며 보곤 하는데,
이번엔 17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굳이 몰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가졌고,
의외로 집중하며 편하고 재미있게 봤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았다.
공연이 끝난 후, 배우 이름과 이력이 궁금해 팸플릿을 샀다.
샘 역의 김태성, 로즈 역의 김민지, 에이버리 역의 사무엘.
그리고 김혜리 연출이 만들어낸 절제된 무대와 밀도 있는 연기 연출.
공연 내내 즐거웠다.
극단 ETS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진다.
우리는 대부분 평범한 인생을 산다.
겉으로 보기엔 소소하고 단조로워 보여도,
그 안에는 우주처럼 깊은 고뇌와 고독이 깃들어 있다.
동시에, 무수한 별처럼
기쁨과 보람, 멋과 설렘도 공존한다.
오늘 공연을 보며,
내 안에도 그 무거운 우주와 별 같은 설렘이
함께 존재함을 느꼈다.
*이번 공연이 한국 초연이라고 하니, 다음에 기회가 꼭 한 번 보시길...
*누군가에게는 별다른 무대 변화도 없는 지루한?
*젊은 배우들이 참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