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 역할 연기로 트랜스젠더를 풀어보다
연극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은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동성애와 가족의 갈등이라는 주제를 의외로 경쾌하게 풀어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캐스팅 방식이다. 한 인물을 네 명의 배우가 나누어 연기한다. 흔히 보는 1인 다역과는 반대되는 개념, 말하자면 ‘1역 다배우’라고 부를 만하다. 남녀 구분 없이 두 명의 남자 배우와 두 명의 여자 배우가 작품 속 모든 인물을 분담한다.
처음에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 설정을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특정 배역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배우가 남성인지 여성인지조차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경지에 도달한다. 이는 단순한 연출적 장치가 아니라 성별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탁월한 시도다.
연출에 따르면, 본래는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여러 배우가 나누어 연기하려던 계획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배역까지 동일한 방식으로 분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매우 영리한 연출적 선택이 되었다. 관객은 ‘남자 배우가 여자를, 여자 배우가 남자를 어떻게 표현할까’라는 호기심으로 극을 따라가지만, 곧 성별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결국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 캐릭터를 받아들이게 된다.
극은 사실적 연기와 과장된 연기를 교차시키며 진행된다. 이는 관객의 몰입보다는 작품의 리듬과 메시지에 방점을 둔 선택이었다. 덕분에 다소 무겁고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가 경쾌하게 전개된다. 무대 역시 흰색 테이프를 이용해 넓은 공간 속에 좁은 구획을 표시함으로써, 서로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가족의 밀착된 일상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동성애라는 문제 앞에서는 그 밀착이 곧 극명한 거리감으로 드러난다.
동성애 이슈는 오늘날에도 쉽지 않은 주제다. 가족 안에서도 극심한 갈등과 견해 차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이기에 끝내 포기할 수 없고,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차이를 인식하고, 끝까지 끌어안고, 함께 방법을 찾아야 할 이슈가 아닐까. 이처럼 무거운 동성애 담론을 연극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은 지나치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그러나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것이 예술의 역할일 것이다.
극 말미, 배우들이 무대 바닥의 흰 테이프를 뜯어내며 벽을 허무는 장면은, 닫힌 공간을 벗어나 진솔한 고백의 장으로 나아가는 상징적 연출로 읽힌다. 하지만 표현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자연스럽지 못했다. 또 무대 위에서 카메라로 촬영해 실시간으로 영상을 투사하는 장면이 몇 번 있었는데, 오히려 극의 집중을 흐리며 다소 산만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네 명의 배우들에게는 즐거운 작업이었을 것 같다. 1인 다역의 매력도 있지만, 하나의 역할을 여러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은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다. 하나의 배역을 서로 공부하고, 연기하고, 조율하고, 조정하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니, 배우로서 배우 흥미로운 작업이었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떤 무대로 이 작품이 발전해 갈지 기대가 된다.
제61회 2025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젊은연극상
제3회 2025 서울예술상 심사위원 특별상
2024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3
공연일자 2025.09.12 ~ 2025.09.21
공연시간 화~금요일 19:30 / 토~일요일 15:00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단체명 공놀이클럽
연출 강훈구
작가 서동민
출연 김솔지, 남재국, 류세일, 박은경
#나를 찾아가는 2인극 연기수업
#10월 13일 ~ 12월 1일 / 매주 월 저녁 8시~10시
#마포구 서강로9길 52 이세빌딩 B1(서로이음)
#연기 수업을 통해 자아 찾기 관심 있는 분
#소통과 표현에 관심 있는 분
#배우 연기 경험에 도전할 분 / 누구나(15세 이상, 선착순 8명 내외)
#신청/문의: 아래 오픈 카톡 / 회비(2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