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뛰게 하는
이 연극은 프랑스 작가 메릴리스 드 케랑갈의 동명 소설을 1인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장기 이식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의외로 극의 흐름은 경쾌하다.
한 명의 배우가 무려 열아홉 개의 인물을 숨 가쁘게 오가며 연기한다는 점,
바로 그 연극적 매력이 이 작품을 보러 가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였다.
연출_민새롬
연기_윤나무(손상규 김신록 김지현)
공연_국립정동극장
2026.1.13-3.8
이야기의 큰 줄기는 단순하다.
서핑을 즐기던 한 청년, 시몽 랭브르가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는다.
장기 이식 센터는 그의 부모에게 장기 기증을 요청하고,
부모는 깊은 고뇌 끝에 결정을 내린다.
그렇게 청년의 심장은 어느 오십 대 여성의 몸으로 옮겨지고,
잠시 멈췄던 박동은 다시 다른 삶 속에서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서사는 단선적이지만, 무대 위에는 무려 열아홉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화자, 청년, 어머니와 아버지, 연인, 응급실 의사, 장기 이식 센터장과 코디네이터,
그리고 장기를 이식받는 사람까지.
무대도 단순하다.
직사각형 탁자 하나, 의자 하나.
그 대신 무대 뒤를 채우는 감각적인 영상과 웅장한 음향이
공간과 시간을 확장시킨다.
이 작품은 결국, 오롯이 배우 한 사람의 무대가 된다.
윤나무는 이 작품의 초연이었던 2019년부터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다.
그래서일까. 이 넓은 극장이 그에게는 조금도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무대를 채우기에 충분히 여유롭고, 또 단단하다.
열아홉 개의 인물을 백 분 동안 연기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텐데,
그는 역할과 역할 사이를 능숙하게 구분해 낸다.
다만 너무 능숙해서, 때로는 배역보다 ‘윤나무’라는 배우에게 시선이 옮겨지곤 했다.
녹음된 목소리로 처리된 시몽 랭브르의 부모 음성은 다소 거슬렸다.
아버지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젊고,
어머니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어딘가 어색했다.
그런데도, 윤나무가 직접 시몽의 어머니가 되어 무대 위에서 오열하며 갈등하던 순간.
그 몰입은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심장을
한순간에 멎게 할 만큼 강렬했다.
그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심장.
어쩌면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상징은 바로 이 단어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 심장이 뛰는가.
심장이 뛴다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한 사람의 심장이 다른 누군가의 몸으로 옮겨졌다면,
그 심장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극 중에서 이런 대사를 들었던 것 같다.
“장기 이식은, 몸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행위입니다.”
연기.
한때 내 심장을 가장 크게 뛰게 했던 이 단어가
이 작품을 보러 오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배우들과 작품을 만들고,
일반인들에게 연기 수업을 하며 살아가는 지금도
연기는 여전히 내 심장을 박동하게 한다.
배우가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몸이 되어 연기할 때,
그 배우의 심장도 잠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심장이 되어 함께 뛰는 걸까.
아마도 그럴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사람의 심장 안에는 이미
우주 같은 열정이 담겨 있을 테니.
공연을 보고 나와 덕수궁길을 걷는다. 문득, 초등학생 시절 뛰놀던 정동의 덕수궁 돌담길이 떠오른다. 그때의 나를 뛰게 하던 심장 박동과 지금의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심장 박동 사이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내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
극단[무유]*[서로이음] 프로젝트
나를 찾아가는 독백-2인극 연기수업 신청
3월 9일~4월 27일(매주 월, 8회)
https://forms.gle/LbxcNQwUtuqW4H9c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