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충동

일본 추리 소설 원작 3인극

by 수형

하얀 충동

원작 오승호(고가쓰히로) / 제일교포 3세

연출 이준우

출연 강해진 이강욱 이호철

2025.12.23-28 / 연우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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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소극장.
한때는 극장의 이름만으로도 믿고 보던 공연장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극장은 여전히 묵은 냄새를 품고 있었고, 그 냄새가 친숙하게 다가왔다.


공연 시작 10분 전인데, 객석에는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잠시 불안했는데, 공연 시작 5분 전, 관객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며 좌석이 빠르게 채워졌다.
연극을 공부하는 학생들처럼 보이는 관객들이 많았다.
괜히 작품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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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하얀 충동>은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팸플릿을 넘기다 보니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적혀 있다.
일단 이야기는 재밌을 듯.


무대에는 세 명의 배우가 오른다.
1인 다역을 소화하지만, 각자 중심이 되는 역할이 있다.

학교 상담교사 지하야,
살인 충동에 괴로워하는 고등학생 아키나리,
그리고 15년 전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출소한 이리이치.


무대는 단조롭다.
하지만 그 단조로움 위에서 이야기는 단단하게 쌓여간다.
소설을 읽듯 낭독하다가, 어느 순간 연극적인 대사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장면은 바쁘게 움직이지만 흐름은 어지럽지 않다.

밀도 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연출력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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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진, 이호철 두 배우의 연기도 안정적이었지만
살인 충동에 고뇌하는 고등학생 아키나리를 연기한 이강욱의 연기가 특히 인상 깊었다.
극단적인 설정 속에서도 감정을 과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불안과 혼란, 자기혐오를 차분히 쌓아 올린다.
그 덕분에 문제적 인물 아키나리의 이해할 수 없는 충동마저 연민으로 다가온다.


살인 충동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 충동을 직면하는 것도 힘들고,
그 이후 가족이 감당해야 할 고통을 떠올리는 것도 버겁다.
그래서 동물을 해치거나,
‘죽어 마땅한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아키나리의 선택은,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한 인간의

고통으로 다가온다.


인생을 이해하며 사는 이는, 또 몇이나 될까.


이 연극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충동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크기의 충동을 품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사회는, 그리고 나는
그 다양한 충동을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타인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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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보고 나오니
사람과 사회가 전보다 더 복잡하게 보인다.
동시에, 그만큼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낯선 충동에서

내 안에 하얀 충동을 본다.





*

극 중 마을사람들이 잔혹한 범죄자 이리이치를 추방할지 논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세 배우가 연기했던 마을 사람 역할이 가장 낯설고 어색했다.

직접적인 연기보다는 소설적 해설 문장과 간접 연기로 표현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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