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더 드레서>

무명 예술가의 소리 없는 외침

by 수형

작_로널드 하우드

연출_장유정

출연_박근형 송승환 정재은 유병훈 이주원 한기장

극장_국립극장 달오름

2025.12.27-2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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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작가 로널드 하우드가 영국의 거물급 배우 밑에서 실제 '드레서(의상 담당 개인 비서)'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그래서일까. 극의 조명은 화려한 무대 위 주인공이 아닌, 무대 뒤의 그림자 같은 존재 '노먼'을 집요하게 비춘다.


1942년,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막은 올라야 한다. 극단주이자 노배우인 '선생님'은 노령과 병마로 정신이 혼미하다. 당장 공연을 앞두고도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처참한 상태. 하지만 그의 드레서 노먼은 포기하지 않는다. 달래고, 부축하고, 때로는 몰아붙이며 그를 기어코 무대 위로 밀어 올린다. 그렇게 그의 227번째 <리어왕> 공연은 시작된다.


무대 위 선생님은 쇠락한 리어왕 그 자체다. 남은 것이라곤 옹졸한 자의식과 낡은 허영뿐인 노배우지만,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노먼은 온몸을 던져 공연을 완성한다. 관객은 환호하며 무대 위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그 무대를 가능케 한 노먼의 존재는 누구도 보지 못한다. 아니, 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노먼 역시 그것을 잘 알기에, 오직 소명 하나로 일할 뿐이다.


그러나 평생을 바친 노먼을 끝내 무너뜨린 것은 전쟁의 포탄이 아닌, 자신이 그토록 존경했던 선생님이 남긴 마지막 '기록'이었다. 고마운 이들의 이름을 빼곡히 적은 회고록 서문에서 노먼은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한다. 16년의 헌신이 단 한 줄의 글로도 보상받지 못하는 순간, 그는 깨닫는다. 이 예술 세계에서 자신의 초라한 존재를.


선생님이 사망한 차가운 분장실에서 분노와 허무 사이를 오가며 울음을 터뜨리는 노먼을 보며, 나는 우리 곁의 수많은 무명 예술가들을 떠올렸다. 그들 없이는 무대도, 작품도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은 유명한 예술가, 천재 예술가에게만 열광하고 그들 이름만 기억할 뿐이다. 비단 예술계뿐일까.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는 더더욱 냉혹하다. 성과와 이름이 숫자로 치환되는 세상에서, 기록되지 못한 노동은 금세 잊히고 만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타인의 인정보다 단단한 '자의식'이 필요하다. 타인을 위해서도, 심지어 대단한 예술 그 자체를 위해서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소명과 기쁨.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더라도, 내가 보낸 시간의 가치를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자존의 근육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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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드레서>를 보고 나오며, 노먼의 얼굴 위로 겹쳐지는 수많은 이름 없는 동료들을 생각한다. 기록되지 않았으나 분명히 존재했던 그들의 고군분투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건투를 빈다. 그리고 나 역시.





예술이란 무얼까.

연기란 무얼까.

어떤 힘이 작품을 찾고, 무대에 오르게 하는가.




[나를 찾아가는 독백/2인극 연기수업]


[일시]

3월 9일~4월 27일(매주 월)


[대상]

연기 수업을 통해 자아찾기에 관심 있는 분

소통과 표현에 관심 있는 분

배우 연기 경험에 도전할 분, 누구나 (15세 이상)


[장소]

마포구 서강로 9길 52 이세빌딩 B1(서로이음)


[문의/신청]

https://forms.gle/LbxcNQwUtuqW4H9c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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