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시르 Sep 12. 2024

평균적 공평

많은 사람들은 공평한 삶을 갈구하며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모두 어느 것이

공평한 것인지 서로에게 따져보며 선택한 것입니다.


에스겔 18장 25절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성경에 재미있는 구절이 있어서 함께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생들은 하나님에게 공평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답변은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냐고 물어봅니다.


하나님과 백성사이에서 서로 불공평한 것이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당연히 나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왜 나의 길이 불공평하고 하나님의 길이 공평하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세상을 살펴보며 따져 보려고 합니다.

저의 생각은 "세상은 불공평하다." 보다는

"세상은 불공평해 보인다."가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의 물질들은 모두 질량을 가진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 

에너지와 질량의 합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세상의 원리를 발견하였고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말만 듣고 세상을 보면 매우 일정하고 질서 있게 변하지 않는 공평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조금 더 면밀히 이야기해 보면

우리가 보고 있는 순간은 신기하게도 일정하지 않고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법칙이 유효한 이유는 에너지의 평균의 합이 일정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평균이라는 의미는 우리는 모든 순간마다 불공평 속에 살고 있지만 끝에 가서 계산하면 공평해진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계산 차이이다.

사람의 생각과 계산은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 정도 계산이 가능하다.  이유는 끝을 모르기 때문이다.

끝을 모르는 계산 결과는 계산할 때마다 에너지의 합이 달라져서 공평한 값을 찾아낼 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끝을 보시고 끝을 알고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동일하여 일정하고 공평한 값을 보고 계신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는 폐쇄 공간이라는 상수 값이 필요하다. 폐쇄계에 질량이 있는 물질의 에너지가 있고 질량 밖의 에너지 평균의 합이 일정한 것을 말한다.


또 폐쇄계에 있는 질량과 부피를 가진 물질은 깨지고 찌그러지며 변형되어도 에너지가 일정하다.

물질의 변형된 에너지의 크기만큼 물질 밖에 에너지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에너지로 구성된 질량을 가진 물질로서

우주 안에 폐쇄계에서 나의 에너지와 밖에 에너지의 합이 일정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사람의 에너지의 끝에서 계산한 평균의 합은 같다고 말할 수 있어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주 안에서 나의 길이 있고 나의  밖의 길이 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설명하면 나의 뜻과 길이 커지는 만큼 길 밖의 길은 작아진다.

또 나의 뜻과 길이 작아지는 만큼 길 밖의 길은 커지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길 밖의 길을 하나님의 나라임을 믿고 있다.

내가 원하는 뜻을 이루고 나의 길이 커진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멀어지는 길일 수밖에 없으며

나의 뜻과 나의 길이 작아지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끝에서 계산하시며

"어찌 내가 공평하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하셨고

다시 한번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냐

고 묻고 계십니다.


인간의 시선에서는 불공평한 것이 맞으며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공평한 것도 맞다.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세상을 살 것인가? 

우리는 불공평하길 원하는가? 공평하길 원하는가?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