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4~5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베드로후서 1:20-21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바울이 말한 메시지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혼란스러운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사실 이 구절을 전한다는 것이 매우 두렵고 떨리며 베드로가 말한 대로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갈 수 있기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사사로이 혼자 해석하기보다는 말씀이 있는 교제 속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함께 나누며 배우며 지혜를 간구해야겠습니다.
성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공통점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가 부르심입니다.
현대 교회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은 회개입니다. 나의 죄를 깨닫고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이 만나주실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쓰신 인물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모두 가만히 있었고 일상을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만나주셨다는 사실의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고 있는 바울은 회개는커녕 자신이 하는 일도 알지 못하고 예수를 핍박하다가 만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9장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혹시 성경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선지자, 예수님의 제자, 수가성 여인, 삭개오, 나사로, 바울, 나귀 모두 하나님이 직접 찾아가 주가 쓰시겠다 말씀하시고 부르심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들은 따로 회개의 시간이 없었으며 오히려 일상을 엉망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예수님을 직접 찾아간 잘 살고 있던 니고데모나 부자 청년, 그리고 예수님을 기적을 보기 위해 따랐던 수많은 무리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자 그대로 떠난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2:23-24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우리는 가만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난 나의 믿음과 자유 의지를 가지고 회개하여 주님 앞에 서야 된다고 알았으나 주님이 먼저 부르셨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이 없이 믿는다고 고백한 자들에게는 그의 몸(성전)을 맡기시지 않으셨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지성을 기지고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임의대로 선택해 놓으셨다면 우리의 삶과 선택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냐고 따지며 물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마음대로 살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전에 하나님의 속성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장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알려주기를 한글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되어 있으며 영어로는 I am who(that) I am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알려주신 이름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의미 없는 분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I am이라는 단어를 과거에도 I am, 지금도 I am, 미래도 I am이라고 말하려면 모든 순간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지금과 동일하게 보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리고 나의 아들과 아직은 보지 못한 손자의 하나님 되신 분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2:9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님이 일을 시작했을 때 첫 번째 하신 일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포도주는 아주 까다로운 공간에서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좋은 포도주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시공간을 초월한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 미래의 모든 사람의 삶을 보셨고 창세 전에 부르시고 선택하셨다면 바울의 말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이 땅에 어떠한 생명도 하나님의 부르심 없이 태어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에 반응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말할 수 없는 아주 미세한 신음 소리와 도저히 움직일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찾아오셨고 창세 전에 신중하게 선택하셨으며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6: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로마서 8:25-28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감히 겁도 없이 하나님 말씀의 해석하는 것이 두렵고 떨리지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이 태어난 생명은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주가 쓰시겠다 부르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순종하는 사람과 불순종하는 사람을 창세 전에 아셨으니 부르심의 순종한 사람을 예정하셨습니다. 그때를 우리는 알 수 없기에 공평한 것 같지 않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28
28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누가복음 19:30-31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