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어쩌면 흔히 일어나고 있는 억울하고 복잡한 사연들을 살펴보고 어떤 마음이 성경적인지 것일까?공부해 보고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Q1. 음주 운전을 하여 사람을 치게 되었고 그 사람은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당시 가해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정신이 깨면서 떨리고 두려워 도망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도망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결국 잡힐 것을 알지만 의지로는 자백할 수 없는 탄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피해자의 가족들은 한순간에 삶이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하필 뉴스를 보면 가해자는 좋은 직업, 좋은 차를 가졌고 피해자는 가난한 형편에 가족을 돌보기 위해 길을 나서고 일하는 중에 사고를 당합니다.
우연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어쩔 수 없는 세상에 이치일까요?
당연히 잘 살고 있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할 가능성이 높고 가난한 사람이 길에 돌아다닐 가능성이 높으니 세상에 이치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놓인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들의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까요?
먼저 사람은 구원을 바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바라보는 구원과 하나님의 구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사람이 바라는 구원은 육신으로 살아내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삶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 구원할 방법이 없다고 느끼게되어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작은 희망의 끈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어야만 그 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은 나와 함께 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귀로는 들리지 않는 미세한 소리로 마음에 "내가 전능하다는 것을 믿지 못하느냐고?"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그럼 하나님과 함께 살려면 붙들고 있는 끈을 무조건 놓아야 하는 건가요?라고 물으신다면 저의 대답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어렵게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지만 살려주셨고,
야곱과 아내 라헬이 집을 떠날 때 우상 하나를 숨겨 놓은것을아셨지만 막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끈을 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이며 마음을 확인하면 완전히 빼앗아가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와 가해자의 가족들,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너희와 함께 살고 싶다"는 선하신 뜻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애굽기 6: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중에 누가 더 하나님을 찾을 것 같으신가요? 제 생각은 일반적으로는 가해자가 하나님을 찾게 되고 피해자는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 인 것 같습니다. 가해자는 구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억울한 피해자는 정신적 보상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기에 그렇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적 개념없이 사람에게 들은 것으로만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받아들이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성경을 읽고 들은 후에는 이것만큼 오만하고 교만한 생각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가해자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믿는 것이 입으로 시인한다고 하여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과 의심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말씀에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지만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셨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장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마태복음 7장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세상이 마치 내 것이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았던 가해자가 하나님이 하나님됨을 알려면 세상의 무서움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지 착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선한 것은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며 그 길을 인도할 자는 하나님 한 분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는 모든일이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내버려두십니다.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을 가르쳤다면 성경에 대부분이 저주로 가득한 이유는 무엇으로 설명하시겠습니까?
로마서 1:28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마태복음 21:18~19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가해자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알아야만 말씀이 들려올 것입니다. 만약 피해자의 아픔은 뒤로 하고 구제만 바라고 있다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구제를 바라는 나의 마음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동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을 죽게 만들어놓고 피해자의 아픔을 모른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마음에 말씀이 있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도 순간적으로 두려워 도망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능력의 말씀에 이끌려 예수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가족들 앞에 용서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피해자들에 용서와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10~11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욥기 42:7~8
7 여호와께서 ...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8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다소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세상의 이치와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말씀을 통해 알아가려고 합니다.
욥기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의 고백처럼 감히 무지한 생각과 말들로 알지도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들을 제가 말하고 있을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 앞에 옳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직접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앞에가서 하나님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어제보다 오늘 하나님과 예수님(말씀)을 진리의 성령님의 가르침에 따라 알아가고 싶고 이것이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유일한 방법인 줄 믿기 때문입니다.
먼저 가해자의 입장에서 말씀으로 문제를 풀어보았습니다.
다음은 피해자의 입장을 말씀으로 문제를 풀어볼텐데 기도하며 성령님의 도움을 의지하며 준비할 것이며 이 글을 읽는 분중에 믿음이 있는 자라면 함께 기도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