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D+18
육아일기 1편을 아기가 태어난 지 18일차에 쓰고 있다. 게으른 아빠인 것에 미안한 마음이다. 조리원에 퇴소하고 집에 처음 들어온 날. 이제서야 진짜 아이가 생겼음이 실감 나는 것 같다. 그러니까 1편을 쓰기 적절한 날이 아닐까.
오늘 일정은 타이트하다. 9시 전에 조리원 짐을 정리하고 9시에 조리원 퇴소. 준우의 결핵 예방접종을 위해 곧바로 소아과로 향했다. 소아과에서 예약을 받지 않아 오픈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름 첫 외출인 만큼 아내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손수건, 기저귀, 배고프면 타 먹일 분유 1병, 분유에 타 먹일 따뜻한 물 한 병, 혹시 모를 유축해 놓은 모유 한 병 까지. 초보 부모지만 이 정도면 걱정할 게 없겠다 싶었다.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준우는 나랑 같이 소아과에서 진료를 대기하고 아내는 산부인과 검진, 은행에 가서 아기 통장을 만들고 오기로 했다.
모든 것은 계산대로였다. 소아과 대기가 3시간 씩이나 길어진 것만 빼고 말이다. 준우와 둘이 앉아서 소아과 풍경도 구경시켜주고. (준우는 슬슬 새로운 것을 보면 신기하게 쳐다본다.) 다른 아기들과 인사도 하면서 차례를 기다렸다. 1시간쯤 후 밥 시간이 되어 준비해 둔 분유를 타서 먹였다. 아빠는 안정적인 수유자세를, 아들은 그에 보답하듯 원샷을 선보였다. 나름 능숙하게 트림까지 시키고 '이 정도면 둘째 아빠로 아는 거 아니야?' 같은 건방진 생각도 잠시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번째 밥 시간이 되었지만 이제는 줄 수 있는 분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준우는 참 순하다. 배만 고프지 않다면 말이다. 놀아달라거나 안아달라거나 재워달라거나 이런 것들로는 울지 않는다. 하지만 배가 고프기 시작하면 슬슬 칭얼대기 시작하고 배고픔이 극에 달하면 있는 힘껏 울어제낀다. 준우는 목청이 참 좋다. 태어나던 날 건물 전체에 준우 울음소리밖에 안 들렸을 정도이다.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져 준우는 더 이상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 보였다. 가방 속에 유축해둔 모유를 전자렌지에 데워 먹이려던 찰나,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밥 달라고 울던 준우는 밥 대신 결핵 주사를 받게 됐다. "달라는 밥은 안주고 주사를 줘?"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억울함에 치를 떨면서 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귀엽기도 했다. 준우는 그렇게 배고픔도 잊은 채 잠들어버렸다. 그리고 이 3시간의 과정을 엄마 없이 오롯이 같이 겪었던 나도 같이 녹초가 되었다.
집에 오고 나서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너무 힘들어서 1편은 여기서 마칠까 한다. 본격 육아 1일차 소감은 '힘들긴 하지만 또 못할 것도 없겠는걸?' 이다. 이 녀석 때문에 이것 저것 할 일이 너무나도 많지만 그보다 이 녀석이 주는 행복이 너무 크다.
곧 준우 밥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