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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숙 Aug 30. 2022

더 랍스터, 2015

올라 OLLA 6호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 라는 올라의 모토와 딱(?) 맞는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더 랍스터’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아내와 헤어지고 새로운 짝을 찾기 위해 일명 ‘짝 찾기 전문시설’에 체크인 한다. 외톨이들은 모두 그와 같은 목적으로 이곳에 입소한다. 이들은 모두 일정기간 내에 사랑하는 상대를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게 된다. 그야말로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시설 매니저는 처음 입소한 데이비드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다. 그런데 매니저가 건네는 질문이 다소 난해하다.  


- M 이성애자인가요, 동성애자인가요?

- D “양성애자라고 써도 되나요?”

- M 운영상 문제 때문에 작년 여름부터 금지됐어요.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지금 결정하셔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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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신발 크기는요?

- D “44반.”

- M 44반은 없어요. 44나 45?

  

 질문에서 보이는 것처럼 시설은 입소자의 다양성을 과격하게 제한한다. 그들은 매번 중간 정도에 속하는 데이비드에게 이분법적인 사고를 들이민다. 그리고 답이 정해진 선택을 강요한다. 이들의 난행은 점점 수위가 높아진다. 짝이 없는 외톨이의 어려움을 알아야 한다며 입소자의 한 쪽 손을 묶어 행동을 제약하고 교육을 통해 생각을 제한한다. 교육은 ‘남성이 혼자 밥을 먹을 때’, ‘여성이 혼자 길을 걸을 때’와 같은 일상적 상황의 위험성을 과장해서 표현하며 입소자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들의 명제는 단순하다. 사랑은 좋은 것이고, 외톨이는 나쁜 거예요. 사랑을 권장한다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시설에서 입소자들의 모습을 하나로 제한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데이비드는 시설에서 생활하며 자아를 잃는다. 두려움을 이유로 상대에게 모든 것을 맞추던 그는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죄로 많은 것을 잃는다.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외톨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꾸며낸 데이비드는 결국 시설을 떠난다.


 시설에서 도망쳐나온 그는 외톨이 집단에 합류한다. 하지만 그곳 역시 감정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했다. 외톨이 집단에서는 어느 누구도 사랑해서는 안 된다. 대화를 하다가 실수로 유혹을 하는 것도 금기시된다. 춤도 혼자서만 춰야 하기 때문에 감정이 생길 만한 잔잔한 재즈나 블루스는 듣지 않는다. 이와 같은 규칙을 어기면 커다란 벌을 받는다. 사랑하지 않으면 동물로 변한다는 시설의 운영방침이 떠오른다. 이처럼 시설과 외톨이 집단 모두 데이비드에게 사랑의 획일화된 모습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데이비드는 시설에서 겪은 일련의 상황들로 ‘감정이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감추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했다. 만들어진 감정에 지친 그가 이제는 감정을 감추는 데 이르렀다. 데이비드는 외톨이 집단에서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둘은 ‘근시’라는 공통점을 발견해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든다. 시설에서는 상황을 위해 사랑을 꾸며내던 그가, 바깥에서는 사랑을 위해 상황을 꾸며낸다. 사랑에게 모든 통제권을 내어준 그는 비밀 수신호를 만들어 그녀와 대화하고, 각자 동시에 재생 버튼을 누르고 함께 춤을 추는 방식으로 사랑을 키워나간다.


 

데이비드와 그녀가 속한 외톨이 집단은 시설에 침입해 그들의 사랑을 검증하는 식으로 복수한다. 부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사랑을 시험하고, 그것의 부조리와 모순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집단은 외로움의 승리를 확신한다. 하지만 그 어떤 집단도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다. 어느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던 데이비드의 존재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 만들어진 사랑과 만들어진 외로움의 실패, 인간의 작위성에 대한 징벌이다.





*주의: 해당 문단은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면 마지막 문단으로 넘어가주세요.


 사랑이 금지된 외톨이 집단에서 금단의 사랑을 한 데이비드와 근시 여인은 벌을 받는다. 두목은 시설 사람들에게 복수했던 것처럼 둘을 벌한다. 사랑이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상황을 연출하여 그들을 시험하는 것이다. 집단의 두목은 근시 여인을 안과에 데려가 실명시킨다. 그녀는 자신의 눈이 멀어버린 것을 알고 “왜 내 눈을 멀게 한 거야? 그를 멀게 할 수도 있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데이비드에게 내려진 벌은 상황 그 자체이다. 함께 한 사랑으로 인해 커다란 벌을 받은 이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죽을 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운 마음.


 가까스로 외톨이 집단을 떠난 둘은 도시로 간다. 도시의 한 레스토랑에서 데이비드는 스테이크용 칼을 들고 화장실에 간다. 그리고 입에 휴지를 욱여넣고 칼을 눈알에 갖다댄다. 그가 자신의 눈을 찔렀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그들의 사랑을 의심할 수 없다. 전자는 사랑이고 후자는 사랑이 아닐까? 전혀 아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은 영화가 경계하고자 하였던 이분법적 사고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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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면서 사람 전반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작위적인 모습을 선보이며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설명한다. 시설과 집단의 규칙처럼 메뉴얼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사랑. 자꾸만 엇나가는 가장 인간적인 인간을 보다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감정이라는 것을 과연 규칙 안에 가둘 수 있을까? 과연 어떤 행동들이 사랑의 범주에 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면 어느새 영화는 끝나있다. 더 랍스터는 사람과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봄직한 영화이다. 당신은 사랑하지 못하면 어떤 동물이 되고 싶은가? 아니,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애초에 사랑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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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에 가장 가까이, 매주 가볍게 즐기는 문화예술 매거진'

OLLA(Only Lovers Left Alive) 올라 6호에 실린 글을 브런치에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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