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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숙 Nov 02. 2021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 2017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는 플로리다 디즈니랜드 건너편에 위치한 모텔 '매직캐슬'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모두의 꿈과 환상으로 표현되는 디즈니랜드와 그 건너편 매직캐슬의 삭막한 현실은 빛과 그림자처럼 대비가 된다. 이상과 현실의 대비, 하지만 핼리와 무니에게는 이상으로 여겨질 만한 디즈니랜드의 삶도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현실이라는 아이러니함이 두드러진다.


 영화는 그들의 삭막한 현실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그려내지만은 않는다. 우선, 그들이 살고 있는 모텔 이름마저 '매직캐슬'이다. 매직캐슬이라는 단어를 듣고 우중충하고 삭막한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그들이 살고 있는 당장의 현실은 우울할지 몰라도, 일단 매직캐슬은 예쁜 연보라색을 띤  누군가의 소중한 보금자리인 것이다. 아이들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매직캐슬 내부의 계단을 빙글빙글 뛰어오르며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놀곤 한다.


 하지만 디즈니월드의 건너편,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지만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모텔과 탁 트인 자연, 아름다운 조경은 이상을 흉내 내보려는 발버둥처럼 느껴져 어쩐지 씁쓸해진다.



“퓨처랜드 모텔에 새 차가 들어왔어”


 영화는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 놓여도 그 안에서 스스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퓨처랜드 모텔에 새로운 차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무니, 스쿠티, 디키는 차에 침을 뱉으며 차주에게 욕을 퍼부으며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스테이시 할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잘못에 대한 벌로 차체를 청소하게 됐을 때도 즐거움을 느낀다. 나아가 아이들은 더러운 차 내부까지 청소해야겠다고 말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 그들이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학대를 받는 게 아닌 이상 언제나 행복해할 수 있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어른들이 부적절한 행동을 방관했을 때도 행복해하고, 올바른 행동을 가르쳤을 때도 행복해한다. 심지어 더러운 차 내부까지 청소해야겠다는 순수함까지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영화는 아이들이 올바른 행동을 하며 행복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어른의 역할임을 나타낸다.


 매직캐슬에 사는 무니가 학대 경험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핼리는 무니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결론적으로 무니는 핼리 곁을 떠나 아동국 직원의 손에 넘겨지기 때문이다. 이는 무니를 아동 학대 피해자로 특정해, 인도적 차원에서 핼리의 양육방식과 양육환경 및 조건이 무니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니는 핼리 곁에서 행복했다. 리조트 앞에서 불법 호객행위를 하고, 따뜻한 시럽을 추가한 와플을 잔뜩 먹고 트림 크게 하기 대회를 하기도 하며, 사기를 쳐서 번 돈으로 디즈니월드 기념품 상점에서 원하는 것을 잔뜩 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걸 다 떠나서 핼리에게는 무니가 올바른 행동을 하며 행복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할 양육자의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내 새끼 빼앗아가게 도와달라고? 미쳤어?"


  영화는 핼리와 무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핼리는 22살 어린 나이에 6살 난 딸 무니를 키우고 있는 미혼모이다. 핼리와 무니는 성격이 많이 닮았다. 모녀가 밥을 먹다 말고 나란히 헬리콥터에 욕을 하는가 하면, 무니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손님들에게 잔돈을 구걸하는 모습은 핼리가 리조트 앞에서 불법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과 겹쳐진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동국 직원에게 고성을 지르고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핼리와 무니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핼리와 무니가 여간 닮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부모, 혹은 보호자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보호자와 보호자가 만들어놓은 세상이 전부이다. 무니는 '애슐리가 메이플 시럽을 넣어주지 않았다'라고 칭얼댄다. 이에 핼리는 "정말? 다음에 더 넣어달라고 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무니가 방귀를 너무 뀌어대는 탓에 핼리가 애슐리에게 메이플 시럽을 넣어주지 말라고 부탁한 것이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그렇게 보호자가 만들어놓은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것이다.


 핼리는 무니를 무척이나 사랑했으나, 좋은 감정과 행복한 기억만 공유하려는 강박이 있었다. 핼리와 무니는 서로에게 디즈니월드 같은 존재가 되어준 것이다. 핼리는 무니를 책임지기 위해 각박한 현실을 살면서도 '무니'라는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번 돈으로 애슐리가 일하는 와플가게에서 먹고 싶은 걸 다 먹게 해 준다거나, 기념품 상점에서 원하는 것을 마음껏 고를 수 있게 해 준다. 리조트에서 불량 향수를 파는 불법 호객행위를 하다가 걸려서 도망칠 때도 걸음이 너무 빠르다는 무니를 아무 말 없이 번쩍 업어 들고 걷는다. 마지막으로, 매직캐슬에 찾아온 아동국 직원이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 같은 것을 챙겨달라'라고 했을 때, 핼리는 망설임 없이 무니가 좋아하던 장난감을 골라 가방에 넣는다.


 하지만 무니의 리조트 방화사건에서 핼리가 무니의 불편한 감정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무니는 자신의 실수로 불을 질러버린 오래된 리조트 앞에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의 잘못이 들통날 것을 예상한 듯 불안해 보이고, 초조해 보인다. 하지만 핼리는 그런 무니의 표정이 안중에도 없는지 활활 타고 있는 리조트 앞에 무니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는다. 이때 핼리와 핼리 시점에서 보이는 무니가 나타난다. 무니의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운 몸짓과 굳은 표정이 잘 보인다. 핼리는 분명 그런 무니의 어색한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의 관심은 무니의 불편한 감정보다 불에 타고 있는 리조트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사랑하는 딸을 위해 가혹한 현실을 살기 때문에, 그가 느낄 수 있는 부정적 감정을 애써 누르고 무시하면서까지 '조그마한 또 다른 나'에게 행복과 자유만을 선물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넌 내 단짝인데 다신 못 볼지도 몰라"


 늘 씩씩하고 당차던 무니가 처음으로 아이처럼 눈물을 흘린 장면이다. 무니의 쾌활하고 밝은 성격은 그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악행에 비해 '귀여운 꼬마 악동'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어쩐지 아이가 아이답지 않게 느껴져 이질감을 느끼거나, 지나치게 어른스러워 보이는 탓에 자칫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발달과정에서 차근차근 배워야 할 감정의 단계를 미처 배우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 어쩌면 관객은 무니가 아이다운 순수함이 없고 너무 약아빠졌다고 마음속으로 흉을 봤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젠시를 찾아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아이답게' 우는 모습을 보인다. 화면에 꽉 찬 무니의 우는 얼굴은 두렵고 슬픈 감정을 극대화한다. 아동국 직원의 손에 이끌려 '더 좋은 환경'인 낯선 장소로 가게 되는 것, 이로 인해 단짝 친구인 젠시와 사랑하는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될 것임을 직감한 무니는 어린 나이에 커다란 혼란과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무니는 아동국 직원과 함께 현실을 마주한 순간, 진짜 자기 나이를 찾은 것이다. 현실을 마주하고서 비로소 6살이라는 본인 나이에 맞게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무니는 무법지대인 매직캐슬 안에서 지나치게 환상적으로 살았다.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선과 악을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 삶은 활활 타오르는 화마와 같아 차가운 현실을 피해 도망칠 수 있는 따뜻한 도피처가 되었을 수 있으나 언젠가는 무니를 한 입에 집어삼킬 위험이 있었다. 앞으로 무니가 잔잔하고도 약간은 차가울 수 있는 현실을 살면서, 그럼에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이 나무를 왜 좋아하는지 알아? 쓰러졌는데도 자라나서"


 무니는 젠시와 대화를 하며 '쓰러졌는데도 자라나는 나무'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쓰러진 나무는 매직캐슬 안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쓰러진 채 자라날 아이들이 마음 아프면서도, 또 아이들이 쓰러졌을 때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바로 서서 다시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도 어른의 몫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의 끊임없는 관심과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디즈니랜드는 플로리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매직캐슬 또한 플로리다 디즈니랜드 건너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또 다른 '디즈니랜드'와 '매직캐슬'이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나라가 사회적 취약 계층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으로 저마다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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