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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숙 Aug 30. 2022

[상념1] 작은 강아지와 나

여행하는 자


 출처가 불분명한 불안을 껴묻거리 삼아 관짝같은 침대에 몸을 뉘인다. 도피의 성질이 짙은 꿈 속으로 여행을 떠나면 나는 습관적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을 찾는다. 여행하는 자. 불안을 유영하다가 발버둥을 멈추고 폐부가 찌릿해질 때까지 숨을 멈춘다. 이 고통스러운 짓을 몇 번이고 거듭해도 절대 죽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제는 아주 잘 안다.



 이제 나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고 자꾸만 무언가를 참는데, 그것마저 모두에게 들통나버린 듯하다. 아무데도 기댈 곳이 없다. 가장 길게 자란 발톱에서부터 끈적한 불안이 차들어 있다. 비대해진 몸을 뒤뚱이며 좁아진 침대를 반바퀴 돌아 가로로 몸을 웅크린다. 그런 모습으로 스스로를 관짝 속에 가두어 둔다. 나는 더이상 비참하고 싶지 않아서 거룩한 것들을 내다버렸는데, 거룩한 것을 포기한 게 가장 비참한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어떤 종류의 깨달음은 아는 것도 모르는 것으로 만든다.




 바라보는 시선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있어,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애정과 비례해서. 하염없이 바라보았더니 닳고 바래져 아스라이 바스라진 것이 아니었나. 애정이 담긴 눈길이 버거워 그 아이는 허물을 벗었나. 나는 허물을 사랑했나?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새벽 5시가 다 되어간다. 잠 못 드는 밤은 불면증 환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에게 불면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처박힌 지난 사랑을 다시금 떠올리느라 눈꺼풀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의 약속이 떠오른다.



 네가 네 삶의 끝을 향해 걸어갈 때 말이야,
내가 발 맞추어 함께 걸어줄게.

너의 끝은 어떤 나의 끝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그곳에 머물게 되겠지.

너와 단둘이 도착한 끝의 둘레를 빙빙 돌며
나는 또 한참동안 너를 사랑하려 해.
그곳에 어떤 나를 버리고
허물을 벗어놓고 갈게.

조금만 더 걷다가 다시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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