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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 Oct 07. 2023

퐁네프의 연인들

짧은 소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이 하얗다’고 해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난 ‘구름이 검다’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거야.” 영화에서 직접 말할 용기가 없는 알렉스가 잠든 미셸에게 남긴 편지다. 

 

 



영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멀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남녀가 다리 위에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었고, 카메라는 두 사람을 쫒아다니며 빙빙 돌았다. 남자와 여자가 뛰고 카메라가 쫒아다니는 통에 그녀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화면이 흔들리고 돌면 그녀는 자신이 도는 건지 화면이 도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영화고 뭐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뜻도 알 수 없는 언어의 홍수 속에 빠져들어갔다.

 

영화가 끝이 나고 어두컴컴한 상영관 계단을 걸어 나올 때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어지러웠다. 속이 뒤틀리고, 빙빙 도는 세상 때문에 금세라도 쓰러질것만 같았다. 취한 사람처럼 열사병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선배 잠시만 쉬었다가요.”

영화관 로비 의자에 앉으며 그녀는 말했다.

“왜 그래. 어디가 안 좋니?”

“조금 어지러워 그래요. 잠시 앉아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영화가 끝이 나고 상영관에서 밀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화장실을 오고가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니 공간은 텅 비었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 웃음소리, 팝콘 냄새가 사라진 공간은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영화 상영관의 묵직한 문들을 보니 그녀의 가슴 아래쪽 어느 부분이 묵직해지는 것 같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무슨 생각해요?”

“무슨 생각하냐고? 음 영화에서 말야 ...”

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말 대신 적당히 수긍했고, 적당히 둘러댔다. 

“선배 이제 나가요. 집에 가야하는데 저 때문에 시간이 ...”

“괜찮겠어? 얼굴이 아직도 창백한데.”

“많이 좋아졌어요. 나가요. 집에 가야죠.”

 






 

“하늘이 하얗다.” 영화관에서 나올 때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본 후 말했다. 그녀의 하늘은 노랬다. 잠시 쉬었지만 여전히 어지러웠다. 그녀는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발과 그의 발을 바라보았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졌다. 하늘이 하얗다니 캄캄한데 어떤 말을 해야 하나 그녀는 고민했다.

 

“가자. 집에 바래다 줄게.”

“아니에요. 선배. 저 저기서 버스 타면 되요. 선배 집 반대편으로 가잖아요.”

“그래도 오늘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 날도 어둡고 ”

“저 진짜 괜찮아요. 선배 버스 끊어지면 집에 가기 힘들잖아요. 걱정 마세요. 버스정류장에 저의 집에 가는 버스 많아요.” 

그의 얼굴 표정이 바뀌었지만,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도시의 서쪽 끝과 남쪽 끝에 위치해 있는 그녀의 집과 그의 집. 

‘우리집에 갔다가 그는 어떻게 집으로 가야하지?’ 생각이 들자 그녀는 그에게 의기 양양하게 말했다. “제가 뭐 앤가요? 대학생인데요.. 선배 걱정 마세요.”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보였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팔을 들어 손을 흔들었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해 걸었다. 

버스 정류장 의자에 그녀는 앉아 있었다. 어지럼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기에 버스를 타면 다시 멀미를 할 것만 같았다. 건너편을 보았다. 

길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 그가 서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웃음을 머금고 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반대편에서 그의 집으로 가는 막차 버스가 오고 있었다. 그는 파란색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올라탄 그가 혹시 창문으로 손을 흔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파란색 버스가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버스를 보고 있었다. 

 

한동안 그를 볼 수 없었다. 동아리 방을 가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전엔 그녀의 눈 끝자락엔 어김없이 그가 있었기에 힘들지 않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마치 관객이 모두 나가버린 텅 빈 영화관처럼...그가 없다. 다른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좀 전에 있었는데 수업 들어갔나보다, 일이 있어 먼저 간다더라, 모르겠다 라는 답을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보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는 그가 자신을 피하는 건 아닐까? 데려다 준다는 걸 거절한 일이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걸까? 그날의 일을 여러번 상기해보며 그녀는 그를 만나면 지난 번 일에 대해 사과를 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도서관 자리를 잡기 위해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고, 자리가 없으면 메뚜기가 되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녔다. 두툼한 책을 가슴에 끌어 안고 모든 내용을 집어 삼켜버리리라 마음 먹은 사람처럼 첫 시험을 치뤘다. 시험이 끝이 나고 학교는 축제로 들썩였다. 그녀는 우연히라도 그를 마주치고 싶었으나 어째서인지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축제기간이라 학교는 들썩였다. 처음 참여하는 축제에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았다. 술 냄새와 고성과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캠퍼스의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그녀의 과에서 주막을 열었다. 과 선배들은 그녀를 포함한 몇 명의 새내기들에게 부침개를 하라고 시켰다. 그녀는 과천막 아래에서 기름을 두르고 부침개를 부치고 있었다. 

 

멀리 익숙한 형상이 보였다. 대번에 그라는 걸 알았다. 함께 부침개를 부치는 친구에게 아는 사람이 있어 잠깐 다녀오겠다며 부탁을 하고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벗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있었다. 그녀는 멈칫했다. 그가 어떤 여자와 손깍지를 끼고 있었다. 발이 바닥에 얼어붙은 듯 했다. “아는 사람이 있다며? 안가?” 친구의 말이 멀리서 들렸다.

“아냐. 잘못 봤나 봐.” 그녀는 얼른 고개와 몸을 돌렸다. 친구에게 맡긴 앞치마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앞치마를 다시 입으며 그들이 자신의 앞을 지나지 않길 바랬다. 불행히도 그들은 그녀의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 아래쪽에 주저 앉았다. 테이블 아래쪽엔 밀가루 반죽, 야채, 술, 물 등등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와 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숨어 있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워 보였다. 그럼에도 그에게 다가가 이전처럼 인사를 할 수 없었다. 쪼그리고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녀는천천히 일어섰다. 손 깍지를 끼고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긴 머리에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의 뒷모습과 그의 뒷모습이 잘 어울렸다. 




그들은 점점 멀어져갔다. 먼 하늘에 해가 지고 있었다. 세상은 온통 붉은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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