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선 Dec 27. 2020

우리 술 '모월 인' 시음 후기

'모월 인'을 마시는 세 가지 방법


"이 술 얼마나 하는지 좀 알아봐 줘."


며칠 전 남편이 신문 기사를 하나 보여주며 말했다.

2020년 우리 술 품평회에 대한 기사였는데 사실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전통주를 그리 즐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우리 옆 가게 사장님이 신문에 난 기사를 보시고 대통령 상 받은 '모월 인'이 얼마나 하는지 맛은 어떨지 궁금해하셨단다. 바로 폰으로 검색해 보니 500ml 한 병에 정가 40,000원이었다. 주류는 인터넷으로 판매가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전통주라 그런지 온라인 주문이 가능했다. 글쎄... 소주와 맥주를 즐기는 우리에겐 좀 비싸게 생각되었지만 남편이 한 병주문해 보라고 다.



모월 인 : 원재료는 정제수,  국내산 쌀,  밀 누룩 세 가지이며 알코올 도수 41%, 용량 500ml의 증류식 소주이다. 산 높고 물 맑은 강원도 원주 모월 협동조합 양조장에서 빚었고 원주 치악산의 옛 이름 '모월산'을 따서 이름 지었다고 한다. 2020년 우리 술 품평회 대통령 상을 수상했다.


2020 우리 술 품평회 기사


우리가 운영하는 가게는 부산시 동구에 있는 재래시장 안에 있다. 가게를 처음 시작한 것은 큰 딸이 태어난 해인 1994년, 벌써 27년이나 되었다. 처음 장사를 시작해서 이것저것 서툰 부분이 많을 때 그 가게 사장님 옆에서 조언과 많은 도움을 주셨다. 나이 차가 많이 나긴 하지만 워낙 술과 사람을 좋아하고 소탈하셔서 우리 부부와 친구처럼 지내며 가끔씩 같이 술자리를 가지곤 했다. 올해도 송년회 겸 술자리 약속을 했었는데 코로나 상황이 점점 심해져서 송년회 계획을 취소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남편은 아무래도 섭섭했는지 그분이 얘기하신 이 술을 한 병 사서 같이 맛이나 자고 하는 거다.




따로 박스없이 술만 배달되었다.

주문하고 며칠 후 '모월 인'이 도착을 했다. 정가보다 2,000원 저렴한 사이트에서 주문했더니 케이스는 없고 술만 달랑 포장되어 왔다. 케이스 값이 2,000원인가 보다. 선물용으로 구입하려면 정가대로 판매하는 사이트에서 구입해야겠다.



도착한 날 남편은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기 위해 안주로 쥐치 살을 다져서 수제 어묵을 만들어주었다. 보통 쥐포의 재료가 되는 쥐치는 흰 살 생선의 일종인데 회로 먹어도 깨끗하고 고소한 맛을 내는 고급 어종이다. 생선 살을 다진 반죽에 매운 고춧가루와 땡초를 같이 넣어 매콤한 맛을 내는 수제 어묵이 탄생했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튀기듯 바삭하게 익혀 생선가스 같기도 한 어묵은 마요네즈와 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고소하고 매콤한 맛이 술안주로 안성맞춤이었다.

남편의 술안주 실력은 나날이 발전해 가는 것 같다.



우리는 기대감을 갖고 식탁 위의 '모월 인' 병이 오픈되기를 기다렸다. 맑고 투명한 술이 잔 안에 쪼르르 떨어진다. 술을 한 잔 마시기 전에 먼저 향을 맡아보았다. 약간의 누룩 향과 알코올 향이 코를 살짝 찌르듯이 맡아졌다. 한 모금 입에 머금고 맛을 음미해 보니 첫맛은 부드러운가 싶었는데 목으로 넘길 때 끝으로  알코올 맛이 강하게 난다. 향이 없고 깨끗한 보드카와 비슷한 맛을 기대했는데 안동 소주처럼 향이 좀 강한 증류식 소주의 맛이 나는 것 같다. 생각보다 독하게 느껴지고 향과 맛이 거칠게 다가와 조금 당황스럽다. 낯선 맛이라 그런가...


어쩌다 보니 '모월 인'의 시음은 3단계로 하게 되었다.

도착한 날 한 잔만 맛보고 나머지 술을 병째 가게로 가져가 옆 가게 사장님과 송년회 삼아 건배를 하고 한 잔씩 나누어 맛을 보았다. 하루가 지나 마셔본 술은 전날보다 술의 맛과 향이 더 나아진 것 같다. 술의 향이나 목 넘김도 전날보다  부드러워져서 마실 때 거부감이 없었다. 첫날에는 호불호가 있을 법한 술이라 생각했는데 오픈한 지 하루가 지나서 디캔팅이 된 것인지 맛이 훨씬 더 깊어졌다. 실히 디캔팅이 필요한 술인 것 같다. 두 번째 단계의 시음 후기


멸치볶음 안주로 종이컵에 부어 짠~ 건배를 했다. 가게 안 테이블 위에서 아침부터 작은 술자리가 벌어졌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았고 내년에도 더 열심히 해보자.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덕담이 오간다. 코로나 시대의 송년회 풍경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보드카를 마시고 남는 술을 보관하는 방법은 바로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마시는 것이다. 얼린 보드카는 도수가 높아서 완전히 얼지 않고 약간 걸쭉한 상태가 되는데 마실 때 입 안에서 차갑고 찐한 보드카의 맛이 더할 수 없이 훌륭하다. '모월 인'도 도수가 41%로 높은 술이라 얼리면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나머지 술을 가게로 가져가기 전에 병에 조금 덜어서 얼려 보았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어제 집으로 오랜만에 손님이 왔다. 유럽 배낭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는 선배였다. 송년회 삼아 술자리를 갖기로 했는데 평소라면 밖에서 만났겠지만 역시 코로나  때문에 집으로 초대를 하게 되었다. 소고기 육회와 갈빗살 구이를 안주로 소주를 한 잔 하며 술자리가 시작된다. 서로의 근황이나 관심사 등 여러 이야기를 하다 '모월 인' 얘기가 나와서 얼려 두었던 술을 꺼내와 맛을 보기로 했.



얼린 술이 걸쭉한 느낌을 주며 잔에 담겼고 두 잔을 따라 선배에게 한 잔을 주고 남편과 나는 한 잔으로 나누어 맛을 보았다. 선배도 독주를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 어린 표정으로 향을 맡고는 한 모금 마셔 보더니 와~하고 감탄을 내뱉는다.


예전에 동유럽을 여행했을 때 5 유로(약 7000원) 정도의 저렴한 보드카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이런 향이 났었다고 한다. 그 향이 너무 좋지 않아서 그 이후로 거친 향이 없는 비싼 보드카를 주로 사 먹는 쌀로 만든 술인 '모월 인'에서 그때 보드카와 비슷한 향이 나서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맛이 안 좋다는 말인가  싶은데... 그렇지만 오히려 그 향을 너무 잘 잡아서 거슬리지 않고 맛과 향이 고급스럽게 느껴진다며 최근 마셨던 술 중 최고라고 극찬을 했다. 바로 잔을 비우고는 더 달라며 술잔을 내밀었다.


남편과 나도 한 모금 입을 대 보았다. 남편은 세 번의 시음 중에 얼려서 마시는 이번 잔의 맛이 가장 좋기는 하지만 사실 그 보다는 맛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대에 못 미친다고 했다. 안동 소주와 보드카의 중간 어디쯤의 맛이지만 남편에게는 불호에 가깝다고 한다. 나도 여전히 거친 향이 거슬렸고 비슷한 술이라면 안동 소주가 더 취향에 맞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술자리를 자주 갖는 우리로서는 가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면 꼭 찾아서 마실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누구에게는 최고의 술이지만 또 다른 누구는 안 좋을 수도 있고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좀 갈리는 술이구나 싶다.

세상 사는 이치가 다 그렇겠지만...

매거진의 이전글 봉골레 파스타가 먹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