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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선 Mar 07. 2021

1일 1 드로잉 약속은 지켜졌을까?

나를 사랑하려는 노력


1일 1 드로잉을 해보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한 지 대략 열흘 정도 지났다. 과연 그동안 잘 지켰을까 생각해 본다면... 글쎄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결론을 말하기 전에 우선 하루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하루 일과를 찬찬히 정리해 보니 시간 여유가 별로 다.



매일 아침에 딸을 깨워 아침 준비를 도와주고 같이 집을 나선다. 도보 20분 거리의 수영장에서 수영 강습을 받고 씻고 집으로 돌아오면 10시 반 정도. 대충 수영복과 수모, 수경 등을 정리해 놓고 가게로 출근을 한다. 빠른 걸음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가게에 도착해 점심 식사를 하고 남편과 교대를 해서 가게를 지킨다.


우리 가게는 도매상이라 새벽 일찍 출근을 하는데 남편이 있는 오전에 손님이 많은 편이고 오후에는 그리 바쁘지 않다. 명세서를 정리하고 가끔 손님이 오면 물건 판매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 여파로 손님이 거의 없어 오후 서너 시간 동안 가게에 앉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님들 글을 읽기도 하고 조금씩 글을 써보기도 한다. 작은 스케치북을 들고 그림그릴 수 있는 시간도 바로 이때이다. 


가게를 마치고 나면 다시 집으로 가서 일주일에 이틀은 이른 저녁을 먹은 뒤 댄스 학원으로 가서 줌바 댄스 수업을 듣는다. 이런 날은 폰에 있는 만보기로 2만 보 넘게 걷는다. 나머지 날은 남편이 준비해 주는 맛있는 안주에 술을  곁들여 대화를 나누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부산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1.5단계가 되면서 거의 매일 같은 일상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그래도 그동안 1일 1 드로잉을 해왔을까? 결론을 말하자면 반반이라고 볼 수 있다. 드로잉, 즉 그림을 그렸느냐라고 묻는다면 예스(Yes),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냐고 묻는다면 노(No)라고 대답할 수 있다. 물론 하루 동안 한 작품을 완성한 적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오늘은 도안을 생각해서 스케치를 해놓고 다음날 패턴을 그리고 칠을 해서 완성을 한다. 뭐 그런 식이었다. 사실 원래 나의 계획은 매일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첫날 젠탱글이 재미있어서 밤늦게까지 그림을 두 개나 완성하고 보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그림을 그려보니 변명 같지만 일상을 해가면서 하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 중 하나가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사람이다. 유독 남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는 엄격한 잣대를 내세우며 비난하고 자신의 잘못은 핑계를 내세우며 변명하는 소위 '내로남불'같은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반대 경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이에 대한  경우는 물론 관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나와 다르다고 배척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배려해야 좋을 것 같다.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는 누구나 위로가 필요하고 나름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자신에게도 엄격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리 큰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스스로에게 조금은 관대해도 괜찮지 않을까. 모든 일에 완벽하려고 애를 쓴다는 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일인가.


얼마 전 브런치 작가님의 작품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많은 생각을 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나를 사랑하는 법을 잘 알지 못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운동은 물론이고 사회성도 없고 뭐라도 잘하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스스로를 사랑하기보다는 남들과 비교하며 본인의 자존감을 더 낮추고 자라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나에게 잘 못해도 괜찮다고, 꼭 잘할 필요는 없다고 다독여 주고 싶다. 아직도 운동 신경이 없어 수영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물을 그렇게 무서워하던 내가 수영을 배운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끈기가 없어 모든 걸 쉽게 포기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벌써 9년째 꾸준히 댄스 학원을 다니고 있다. 소소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해 나가는 나에게 자신감이 생겼다.


1일 1 드로잉을 한다던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질책하지 말고 조금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즐기는 도전인데 스트레스받지 말고 나를 좀 위해 주자 라며 변명도 해본다. 고작 드로잉이 뭐라고 생각이 갈래를 타고 어디까지 뻗어 나간다.


앞으로도 매일 완성은 못하겠지만 즐겁게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있으니까...

잘하지 못해도 나는 내 그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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