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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 문명

by 청사

문명은 적이 아니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포로이트(Sigmund Freud)는 ‘창을 던지는 대신 욕설을 내뱉은 최초의 사람이 문명의 창시자’라고 인식했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인류에게 닥친 시련을 인류가 창의력을 발휘해서 문명이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는 ‘문명을 서로 돕는 이타적인 인간 본성의 발현으로 인식하고, 부러졌다가 회복된 흔적이 있는 원시인의 다리뼈’를 증거로 제시했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Samuel Phillips Huntington)은 ‘문명 간의 충돌’을 전망하여 각 문명권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제시했다. 그런 인식은 문명에 정신성과 물질성이 내재되어 있는다는 사실을 함의하고 있다.

문명의 주체인 인간은 정신적이며 물질적인 삶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남겼다. 문명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지속된 삶의 과정을 통해 세련되게 누적된 가치체계이며 물질체계이다. 따라서 삶의 역사가 있거나 그것을 계승하고 있다면 문명은 존재하는 것이다. 삶이 없었던 곳에서 문명은 존재하지 않고, 단절된 곳에서 문명은 사라졌을 개연성이 높은 이유이다. 삶의 분신인 문명 간에는 우열을 가리거나 피아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문명 간의 충돌이나 투쟁으로 인식하는 문명관은 문명을 차별적 관점에서 왜곡된 허상으로 존재하는 ‘문명의 난폭성’을 강조하는 시각이다. 거기에는 문명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하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인식방법에 대한 오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슬람 문명권을 특이한 또는 이질적인 문명이라고 규정해 왔다. 특이하다거나 다르다는 것은 화합할 수 없는, 동질성이 없는,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공존하기 어려운, 동행할 수 없다는 의미로 현실사회에서 규정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보거나 보편적으로 보는 시각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생산되고 돌출된 부정적 문명관이다. 그럼으로써 어느 문명이 어느 문명보다는 우수하다든가 또는 열등하다든가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문명에는 결코 불협화음을 조장하는 요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문명을 기계적이며 기술적이며 누적적인 물질적 체계라고 인식하였다. 문명을 물질적 특징이라는 관점에서 인식해야 한다는 인식은 문명을 상대적으로 또는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아랍에미리트의 문명에 대해서 객관성을 확보한 삶 속에서 구체적인 물질로 존재하는 칸두라, 히잡이나 부르카, 수염, 향수 등을 통해서 접근해볼까 한다.

이슬람 문명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색깔 즉 흑과 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사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거나 검소함을 강조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흑은 어둡지만 포근함을 제공하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는 차분함을 가지고 있다. 백은 하얗지만 싸늘함과 웃음을 자아내는 깨끗함을 가지고 있다. 흑과 백이 만든 문명에는 다른 문명과 차이가 있을 뿐 그 어디에도 틀린 것이 없다. 그런 색깔이 점령한 곳에서 나는 붕 떠있는 감정이 차분해졌고, 동시에 긴장된 얼굴에는 웃음이 찾아들었다. 전통복장으로서 하얀 칸두라(Kandhura)를 입은 남성과 검은 히잡을 쓰고 긴 의복 아바야(Abaya)를 입은 여성이 주는, 그들만이 표출하고 있는 상반된 색깔이 빚은 차분함과 깨끗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복으로서 칸두라는 아라비아반도에서 유목 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나의 전통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씨족 사회를 형성하며 유목 생활을 하는 아랍인으로서 베두인족(Bedouin)이 입은 의복에서 유래한 것이다. 전신을 덮는 하얀 천으로 된 의상 칸두라를 입고, 머리에 구트라(Ghutra)를 착용한 모습은 두바이에서 눈으로 맞이한 첫 번째의 인상적인 문명이었다. 아마도 그런 복장을 하게 된 배경에는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휘한 지혜와 지식, 오래된 관습, 그리고 종교적 의미가 반영된 삶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이질감보다는 관심과 흥미를 유발했고,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동기가 됐다.

남성이 입은 칸두라는 넓고 긴 천으로 되어 있고, 목에서 발목까지 통으로 감싸는 흰색 가운이며, 목에 깃이 없고, 목 부분에 긴 술이 달려 있다. 멋을 내기 위해서 옷깃이나 소매 등에는 수공예품인 탈리(Talli)라는 자수를 놓아 아름답게 꾸미는 등 실용성뿐 아니라 미학을 강조하고 있다. 더운 날씨에 통풍이 잘되도록 하고, 유연하게 활동하는 편리성을 도모했다. 그리고 기능적으로는 사막의 강한 햇살과 모래바람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의복으로 보호 수단이다. 흰색의 긴 칸두라는 햇빛을 반사해 신체가 열을 흡수하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추운 겨울에는 네이비 혹은 베이지 색상의 두터운 소재로 된 의복을 착용한다.

머리에 착용하는 구트라(ghutra)는 사막의 모래 먼지와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머리와 얼굴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구트라는 지역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보통 흰색을 사용하며,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는 빨간색이 들어간 구트라를 선호한다. 구트라는 보통 길이가 어깨를 넘으며, 구트라를 고정시키기 위해 이갈(Igal)이라고 불리는 검은 원형 장식구를 사용된다. 옛날 배두인족은 낙타를 타고 유목 생활을 하면서, 밤에 낙타가 도망가지 못하게 이갈로 텐트에 낙타의 발목을 고정시켰다고 한다. 현재 남성복인 칸드라와 부속품들은 생존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사용되고, 전통적인 관습에 의해서 계승되었고, 특히 종교적 규범과 연결되면서 아랍에미리트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칸두라와 구트라는 일상복이나 예의복장으로 착용하고, 그 위에다 비슈트(Bisht)라는 겉옷을 걸친다. 비슈트는 아랍어로 귀족 또는 품위를 뜻하며, 검은색이 일반적이고, 기호에 따라 갈색, 베이지색, 크림색, 회색 등을 선택할 수 있다. 즐거운 날이나 기념하는 날에는 아름답게 디자인한 칸두라와 구트라를 하고 화려한 비슈트를 걸친다. 예를 들면, 결혼식, 축제, 왕실의 중요한 이벤트, 금식 라마단 기간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날을 의미하는 이드 알피트르(Eid al-Fitr), 금요일에 이루어지는 무슬림 예배 주무아(Jumu'ah) 등과 같은 날에 착용한다. 쿠란이나 하디스에서는 복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지에 대한 견해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다만 아라비아반도의 기후환경과 생존에 대응하기 위해 일상생활을 하면서 계승해 왔고, 다른 한편으로 무슬림과 연결되면서 검소하고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이슬람 율법에 부합하여 착용하는 측면도 강조되고 있다. 칸두라, 이갈, 비슈트 등으로 구성되는 복장은 아랍에미리트의 정체성을 함의하고 있고, 유산이며 문명이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칸두라를 입고 구트라를 두르고 거기에다 수염을 기르면 일단 그들의 정체성이 완성되는 듯했다. 그들의 외모를 보면 수염이 돋보인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수염은 어떤 의미를 함의하고 있을까? 역사적으로 수염은 많은 의미와 상징성을 가졌다. 특히 문화적 전통, 생활습관, 역사적 배경, 사회적 지위 등과 연결되면서 다양한 의미를 갖고 변천해 왔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수염은 남성성, 활력, 미덕, 아름다움, 지혜, 힘, 다산, 성적 능력, 멋, 지위, 개성, 신성성 등을 의미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위생, 나태, 과시, 권위, 독단 등을 상징하는 관점에서 보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항상 풍성한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올림포스 12 신 중 하나로 여행자의 신 헤르메스(Hermes), 고대 이란의 예언자이자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조로아스터(Zoroaster) 등도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이미지화했다. 북유럽 신화와 미술에서는 전쟁의 신으로 지식과 지혜를 자랑하는 오딘(Odin)과 육체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농사꾼의 신 토르(Thor)도 풍성한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그려졌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수염은 주변 환경을 감지하는 센서 기능, 몸의 보호, 균형 감각 등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수염은 생물학적 기능보다는 사회적 · 문화적 · 정치적 상징성을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는 점에서 그것과는 다르다.

이슬람에서도 수염의 역사는 오래됐다. 오스만 스타일의 긴 콧수염은 오스만 제20대 할리파 술탄 셀림 3세(sultan Selim III)를 통해서 잘 묘사되었다. 쿠란에서는 예언자 모세의 형이자 이스라엘의 지도자 아론(Aaron)이 수염을 길렀다고 전한다. 하디스 문헌에 의하면, 예언자 무함마드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과 두꺼운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이슬람 율법 순나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습관과 생활 방식에 따라 수염을 기르는 것을 권장한다. 아랍에미리트에서 남성은 수염을 기르는 것이 이슬람 문명의 일부이며, 남성다움, 지혜, 성숙 등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인식과 습관이 정착되면서 아랍에미리트에 거주하는 이주민들도 수염을 기르는 경우가 많다. 아랍에미리트에서 남성의 수염은 개성의 표현, 전통, 종교적 신념, 사회적 · 정치적 · 문화적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

아랍에미리트 여성들은 아바야(Abaya)라는 전통 의복을 입는다. 아바야는 길고 검은 드레스 형태를 띠었고, 단추가 달려서 풀 수 있는 형태가 많으며 없는 것도 있다. 일반적으로 검은 색상이며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덮는 특징이 있다. 아바야는 몸만 가리기 때문에 머리와 목을 감싸는 히잡(Hijab), 눈만 내놓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니캅(Niqab), 얼굴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Burka) 등의 스카프를 착용한다. 여성이 옷을 입는 방식은 가족이나 집안의 보수성 정도를 알려주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샤자르(Sharjah)라는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현지 여성들이 니캅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히잡이다. 히잡은 가리다 또는 분리하다는 뜻을 가졌다. 히잡을 착용하는 관습은 고대 유목인들의 전통, 고대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그리고 사막 지역의 유목 문화 등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여성들은 사막의 강한 태양의 직사광선으로부터 몸과 피부를 보호하고, 약탈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천으로 몸을 가리는 의복을 착용했다. 그 이후 이슬람이 창시되고 전파되면서 히잡은 하나의 종교적 규율로 규정되었다. 쿠란에 기초한 율법적 규범에서는 여성들이 히잡을 써서 남편, 부모, 자녀 등과 같은 가족 이외의 외부인에게 신체를 보이지 않도록 하고 있다. 히잡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시작됐지만 종교적인 율법으로 규정되어 고착화되었다.

그러나 현재 사회에서 히잡의 착용과 강제성은 사회적이며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히잡 착용이 의무화되면서, 히잡은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상징으로서, 그리고 차별규정으로 인식하여 이란 여성의 인권 운동의 척결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히잡이 부정적인 문명으로 인식되어 인종적 · 종교적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를 배제한다면, 전통으로서 아바야를 입고 히잡을 착용하는 문명은 그들만이 갖고 있는 전통이고 정체성을 담고 있는 것으로 거기에는 결코 사회에 악영향을 주는 요소가 없는 것 같다.

아랍에미리트의 공기에서 맡을 수 있는 것은 알싸하고 사나운 사막의 바람이 아니라 향기였다. 어디를 가나 향기가 진동하면서 향수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향은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화장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약 오천 년 전부터 종교적 의식 및 교감의 매체로 사용되면서 시작되었다. 특히 그리스와 로마를 시작으로 고대 종교의식에서 신들에게 향을 바치는 전통이 있었다. 그리고 신성한 의식에서 향을 피우면서 올리브 오일에 향료를 섞어 몸을 정화하기 위해 바르기도 했다. 그것이 현대의 향수 문화의 기원이다. 기독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 대부분의 종교의식에서는 향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불교에서 향은 신성한 분위기 조성, 자기희생, 정화, 공양, 해탈, 공덕, 화합 등을 상징하면서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여긴다.

중국의 향 문화는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어 다양한 왕조를 거치며 발전했다. 신석기시대에는 향초, 향목, 향 제품 등이 사용되었다. 한(漢)대에는 여러 향을 섞은 합향(合香)이 제조되기 시작했고, 향로의 일종인 훈롱(熏籠)을 사용하여 향을 피웠다. 당(唐)대에서는 오랜 전란을 끝내고 통일 왕조를 이루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사치스러운 향 문화가 발흥했다. 더욱이 여러 대륙과의 향료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문화적으로 크게 융성했다. 향의 용도는 종교 의례, 제사, 의학, 일상생활 등에서 사용되어 전통으로 정착되었고, 정신생활 문화로서 향도(香道)로 발전하기도 했다. 중국의 향 문화는 각 왕조의 시대적 배경과 다양한 사회환경에 조응하면서 중국 문명의 한 축을 구축했던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역사적으로 전래된 향료는 오우드(Oud)로 알려졌다. 인류의 향료 사용 역사를 통해서 살펴보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우드가 의료적으로 활용되면서 흑금으로까지 불리며 가치가 높아졌다. 중동 지역에서 오우드가 사랑을 받는 것은 이슬람 문화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이슬람의 예언자이자 창시자 무함마드는 오우드를 천국의 선물이라고 인식했다. 그 후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몸을 정화하는 용도로 오우드를 사용하는 습관이 생기면서 전통이 되었다. 기도 전후나 중요한 행사에서 환영과 존경의 의미로 오우드를 태우기도 한다. 종교적으로도 좋은 향이 나도록 권장하였고, 동시에 묵직하면서도 은은하고 청량한 향을 가진 오우드 향기는 아랍에리미트를 비롯한 아랍 국가에서 선호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현지 남성들이 입는 칸두라에서도 오우도 향을 맡을 수 있다. 오우드는 아열대 우림에서 자생하는 침향나무의 수지 덩어리이다. 나무에 바이러스나 세균이 침입하면 생성된다. 이 수지는 오랜 세월에 걸쳐 어두운 갈색으로 숙성되면 약용이나 종교의식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아랍 지역에서는 오우드 오일을 추출하고 수지 조각을 숙성시켜 사용함으로써, 향을 강화하고 지속시키는 방법을 선호한다. 오우드 향은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남녀 모두에게 사랑받아 오우드를 활용한 향수가 출시되는 등 화장품 산업에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또한 거의 모든 아랍에미리트 가정에서 손님을 환대하는 징표로 나무 형태의 오우드를 일주일 중 금요일에 한 번씩 태우기도 한다.

아랍에미리트 여성들이 좋아하는 향은 천연향을 가진 바쿠르(Bakhour)이다. 바쿠르는 아라비아 유목민들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해 온 전통적인 향료이다. 이 향료는 서아시아와 지중해에 접한 레반트(Levant) 지역의 부족들이 곤충 방지 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향나무 심지를 태워 나오는 연기를 사용하는데, 옷이나 머리카락 등에 쐬어 향을 입히기도 한다. 옷장 안에 바쿠르를 피워 옷에 좋은 향기가 스며들도록 한다. 향기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시중에 파는 향수보다 더욱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용하는 데 있어 개인의 기호나 전통에 따르기도 하고, 그 향료에 재스민, 감귤류 오일 등을 첨가해서 새로운 향을 내기도 한다. 더욱이 바쿠르에서 영감을 받은 제조되는 합성 향수도 등장했다.

특히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의 향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일상생활에서 향수를 중시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정착되었다. UAE에서 인기 있는 향수는 중성적인 향수로 Z세대에게 인기가 있고, 여성용이나 남성용으로 구분하지 않고 애용된다. 그들은 알 쿼라시(Al Qurashi), 아라비안 오우드(Arabian Oud), 아즈말(Ajmal), 프라다(Prada), 버버리(Burberry), 1760 크리드(1760 Creed), 바이레도(Byredo), 샤넬(Chanel) 브랜드의 향수를 선호한다. 그리고 소수의 취향에 맞춰진 프리미엄 향수인 니치 향수와 직접 향료를 조합해서 만드는 비스포크(Bespoke) 향수도 생산되어 선택지가 다양해졌다. 현재는 전통적인 아랍 향, 유명한 브랜드의 향수, 그리고 현대적인 향을 조화롭게 한 프리미엄 향수가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인구 약 1,000만 명 정도의 규모이지만, 향수 수입은 세계에서 6-7위를 차지할 정도의 향수 소비국이다.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이 향수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적이며 종교적으로 좋은 향기를 미덕으로 여겨 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취 관리로 긴 여름과 무더운 날씨 속에서 생기는 불쾌한 체취를 줄이기 위해 향수를 자주 사용한다. 기본적으로 향이 오래 지속되는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패션이나 옷차림에 따라 향수를 달리하는 등 개인의 개성과 패션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향수는 의상, 패션, 화장, 성별, 세대별 등에 어울리는 향수를 즐겨 사용한다. 향수는 아랍에미리트의 정체성, 개성과 미, 패션 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쇼핑몰에는 향수 판매대가 즐비해 있고, 향수 연기를 날려 적극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를 그들답게 만들고 있는 것에는, 삶을 아름답게 하고, 현실을 즐겁게 살게 하며, 미래로 존재하게 하며,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문명이 있다.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문명처럼 그들에게도 삶을 구성지게 하는 미와 멋, 자부심, 정통성, 전통, 지혜, 감성, 개성, 신념 등이 담긴 문명이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계승해 온 그들의 문명에는 우려했던 차별이나 갈등, 전쟁 등을 유발할 여지가 티끌만큼도 없어 보였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이름으로 거대하게 부풀려진 불협화음은 인식적 · 정치적 왜곡으로 만들어진 허상이 아닐는지? 내가 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칸두라와 아바야, 히잡, 향수 등에는 잔잔하고 편안한 인간의 냄새가 세련되게 누적되어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입어보고, 길러보고, 써보고, 뿌려보고 싶은 감성을 끄는 문명이었다. 그런 점에서 문명은 적이 아니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자라고 있는 문명에는 혼란스러운 난폭성이 아니라 매력적인 정체성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실언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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