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뜨거운 삶이 식혀지지 않는 것은 머물고 싶은 곳을 찾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가는 길 위에서 절실하게 걷고 있지만 가야 하는 길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다른 길을 찾지 못하면서 여전히 사상의 종언에 대한 충격과 함께 깊숙이 숨겨져 있던 문학의 길이 꿈틀거렸다.
대학 시절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문학에 깊숙이 빠져 생긴 낡은 흔적이었다. 나쓰메 소세키에서 얻은 영감이 머릿속을 흔들었기 때문에 생긴 희망이기도 했고 병이기도 했다. 그리고 문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상실의 시대》에서 그린 시대성에 공감하면서 생긴 울퉁불퉁한 감성이었다.
나는 깊숙이 자리를 잡았던 문학의 길과 새로운 길로 여겼던 학문의 길에 대해서 다시 물었다. 가는 곳이 어딘지 모르고 걷는 발길은 마치 뇌의 구조가 사라져 아무것도 없는 빈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처지였다. 정처 없이 걷는 발길과 답을 찾지 못하는 머리가 만들어낸 슬픈 이중주는 불투명한 자신을 찾는 발버둥이었을 뿐이다.
멍하니 가다 보니 막다른 골목과 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발길이 도착한 곳이어서 멈춰야만 했다. 더 이상 가는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막다른 골목과 벽에 발길이 멈추었듯이 자신이 가야 할 길도 지금처럼 무엇인가가 멈춰주기를 바랐다. 발길이 멈춘 곳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머물러 있는 숨을 하늘로 뱉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 대학 캠퍼스 정문이었다. ‘자신이 머물 곳이 여기인가?’라는 약간의 기대가 봄기운처럼 느껴졌다. 내가 서 있는 발아래에는 뜨거운 희망을 가졌던 청춘들이 끝없이 디뎌 바래버린 회색빛의 길이 있었다. 그들의 발길과 동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욕심 잃은 탄성만이 나를 위로했다.
잘 나가는 청춘들이 꿈을 실현해 온 이곳과 절망에 빠진 자신의 모습은 분명히 어울리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앞서면서 갈 수 있는 길인지 의심을 했다. 자신이 만든 흔들림의 넓이와 깊이는 매우 낮은 단계에 있는 탈출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길이 너무 밝아 무서워져 멈칫하며 뒤를 돌아보고 싶은 그런 절망이 밀려왔다. 너무 좋아 피하고 싶은 그런 공포심이 덮치고 있었다. 한 발은 이 순간이 두려워 김이 빠진 발걸음이었고, 다른 한 발은 내일을 위해 두근거리는 뜨거운 발걸음이었다. 등을 밀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들어가면 나오지 않겠다는 생각에 못 질을 해야 했기에 움직이질 못했다.
그러나 이정표가 있는 길에서 가지 않거나 멈추고 싶은 용기는 없었다. 땅에 붙어있는 양발은 내게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암시했다. 그리고 하늘로 뿜어낸 새하얀 입김이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고 결심하도록 압박했다. 연속된 긴장은 다리의 힘을 풀리게 했다. 그냥 잠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땅바닥에 앉은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다. 더 이상 낮아질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비록 낮은 곳에 있지만 지금 자리를 잡고 있듯이 미래를 위해 이곳에서 뭉개고 싶었다. 입속에서는 자신을 위한 해방공간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눈 속에서는 자신을 위한 자유공간이라고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캠퍼스 앞에 온 것은 무호흡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었고, 이곳에 들어가야 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낮은 곳에서 뛰는 심장으로 만들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무호흡이라는 혼돈과 낮은 곳에서 뛰는 심장이 만들어낸 결과는 잘 계획된 것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이 부족하면 채워야 한다. 그것은 배움의 이치이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것은 생의 이치이다. 돈이 없으면 벌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의 이치이다. 살고 싶으면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것은 삶의 이치이다. 학문이 있으면 살고 학문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이치였다.
이 시점에서 선택은 의미가 없었다. 지금 앞에 놓인 상황에 대해서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치스러운 결심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나온 감탄사와 같은 것이었다. 오랫동안 찾아왔고 바랬던 희망이었다. 아마도 운명이 있다면 이 순간이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앞에 있는 도다이(東京大學)와 타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국대학이었다는 사실과 유명하고 저명한 위인들을 많이 배출되었다는 사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뭉개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전부였다.
정문은 맘에 들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들어오는 데 매우 까다롭다는 것을 암시라도 하듯이 매우 간결하고 깔끔했다. 양옆으로는 큰 기둥 2개와 그사이에 작은 기둥 2개가 있었고 3개의 출입문으로 되었다. 서구 문명의 냄새를 풍기고 있어 유럽의 어느 명문가의 대문을 보는 듯했다.
나는 작아지는 자신을 수문장이 숨어서 보고 있는 듯한 뜨거운 눈길을 의식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자신과 그 앞에서 망설이는 자신의 마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매우 낮은 자세와 존재하지 않은 신분으로 이 정문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정문을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캠퍼스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있는 듯이 나의 눈길과 발길은 움직였다. 전방을 향해 눈을 들고 살포시 한 발을 딛는 순간 앞에 펼쳐진 것들이 환호하는 듯했다. 봐도 되나 밟아도 괜찮은가 등과 걱정은 한꺼번에 날아갔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학문과 문명의 본거지라는 탈 일본적인 정문과 오랜 세월 동행해 온 거목은 굵고 짧게 침묵으로 인사를 했고, 단정하게 흔드는 풍성한 잎새는 속삭이며 마구 질문을 쏟아냈다. ‘인생이 무엇인지?, 학문이 무엇인지?, 내가 가는 길이 옳은지?, 이곳에서 머물 수 있는지?’ 등 강하고 아픈 질문이었다.
수많은 지성들이 질문을 받으며 걸어갔을 이 길은 근대화의 길이었고, 문명의 길이었고, 학문의 길이었고, 희망의 길이었고, 철학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로지 거목처럼 침묵으로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이 길은 시작의 길, 사색의 길, 기회의 길로 이제 막 엉성한 발 돋음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의 열정과 욕망으로 주름진 거목은 침묵으로 걷고 있는 발길을 재촉했다. 직선으로 나있는 가로수길을 똑바로 걸어야만 할 것 같았다. 자유롭게 똑바로 걸어가야 어울리는 그런 길이었다. 앞을 보고 가거나 옆을 보고 가도 되었으나 뒷걸음질만 치지 않으면 되는 길이었다.
이 길은 내 길이 될 것이고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는 확신을 찾고 싶었다. 옷맵시와 마음을 다잡고 가야만 하는 길 위에서 있었지만 뒤돌아서면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마음의 불꽃을 소환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대로 들어가 나가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을 잡아주거나 놓아주지 않은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붙들면 되는 것이었다.
철학의 길을 지나니 고요함과 조용함을 가득 담은 여러 길이 나왔다. 이곳저곳을 봐도 모두가 미동도 없이 제자리에 있었다. 가끔 가랑비처럼 존재감 없어 보이는 더벅머리 학생이 어디론가 급하게 가고 있을 뿐이었다. 능력자들의 웃음도, 잘난 사람들의 재잘거림도, 지적 욕구의 북적거림도 없었으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 거동을 살피고 있는 듯했다.
애타게 찾았던 확신의 근거는 아주 단순한 것에 있었다. 나를 끌어안고 잔잔하게 흐르는 격렬한 따스함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있고 싶다는 마음을 폭발시키게 한 매우 거만한 분위기였다. 이미 내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뜨거운 열정은 ‘이곳에서 꽃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들어왔으니 나가는 길과 문을 찾아야 했다. 보고 싶은 정문을 아끼고 일단 남북을 가로지는 길을 따라가니 막다른 골목이 나왔다. 왼쪽은 의학부로 가는 길이었고, 오른쪽은 이제 가도 된다는 길처럼 보였다. 가는 길 앞에는 저만치 유난히 붉은색의 문이 조용히 서있었다.
마치 매혹적인 여인의 몸체처럼 아름다움이 드러났다. 화려하게 머리치장을 하였고, 가운데는 매혹적인 다리를 닮은 기둥이 있었다. 붉은 치마를 두르고 살포시 사랑을 속삭이듯 빨간 입술을 가진 출입구가 있었다. 여인의 향기가 흐르듯 사랑스러운 ‘아카몬(赤門)’이었다.
현대식 건물 사이에서 도도하게 서있는 모습은 거부감이 생기기보다는 그렇게 있어야 어울리는 것이었다. 다가가기 어려운 여인의 새침함이 물씬 풍겼고, 만지면 터질 듯한 홍조를 띤 얼굴을 대하는 듯했다. 급하게 입술을 가져가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내게 이 문은 사랑의 문이고 연정의 문이었고, 여인의 혼을 담은 문처럼 느껴졌다.
아카몬을 버티고 있는 땅은 여인을 대신하는 생명의 원천이었다. 동행하는 나무는 살아있는 여인의 생명이 있었다.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돌은 여인을 떠받고 있는 힘이었다. 아카몬은 그렇게 여인의 생명을 살리고 있었다. 지금 나가기 위해 도달한 이문은 나가는 문이 아니라 머물러야 가치가 있는 그런 문이었다.
한동안 넋이 나간 후 문 옆에 있는 설명문이 들어왔다. 에도(江戸) 시대 마에다가(前田家) 13대 번주(藩主) 마에다 나리야스(前田斉泰)가 11대 쇼군 도쿠카와 이에나리(徳川家斉)의 21번째 딸 요우히메(溶姫)을 정실로 맞이하기 위해서 세운 환영문이라고 소개했다. 고수뎅문(御守殿門)이라고 불린 아카몬은 3품 이상의 다이묘(大名)가 쇼군가(將軍家)로부터 아내를 맞이할 때 세우는 거소를 칭했다.
아카몬은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을 갖도록 품위 있게 그리고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누구나 문을 들여다볼 수 있으나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아카몬의 의미를 접하면서 이 문을 화려하게 드나들었던 요우히메(溶姫)처럼 당당하게 환영을 받으며 들어와 축복을 받으며 나가기를 바랐다.
나에게 도다이(東大)는 아카몬처럼 아름답고 품위 있게 다가왔다. 지식으로 쌓인 듯한 정문과 아름다움과 화려함이 넘치는 아카문이 잘 어우러졌다. 외부인으로서 들어와 나가고 있음에도 그 어떤 위화감도 느낄 수 없었다. 지금 나는 객으로 들어왔지만 주인으로 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졌다. 지식과 미를 가진 출입구에 알맞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사명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2
하늘은 푸르다고 하지만 항상 푸른 것만은 아니다. 길은 있다고 하지만 항상 가는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항상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우러러보는 하늘이고 가는 길이고 살아가는 인생이다. 나는 하늘 아래에서, 길 위에서, 인생 속에서 여전히 신분 잃은 존재로 있었다.
자신에게 부여된 최대의 사명은 ‘잘 들어와 잘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의 근거가 있다고 생각되는 매우 적합한 장소를 찾았다. 집단지성과 엘리트들이 향하는 곳이기에, 버팀목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빠져 급하게 발길을 옮겼다. 그곳은 떠나 있거나 없거나 관계없이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도서관이었다.
편안해지면서도 텁텁해지는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길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유보할 이유도 모두 사라졌다. 그곳 어딘가에 답이 숨어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눈을 크게 뜨고 살피는 순간, 학생들은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에 열중하였고, 연륜이 있는 듯한 어떤 노신사는 서가 앞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발걸음이 멈춰지고 눈은 그분들의 크고 작은 행동에 몰입했다. 속으로 “책이 그렇게 좋은가요? 학문하는 데는 나이 제한이 없는가요? 지식은 백발처럼 하얗게 피는 건가요?”라고 속삭였다. 상대방이 풍기는 아우라에 대한 나의 희망 섞인 하소연이었다.
마치 일곱 색깔 무지개가, 매혹적인 장미가, 자유로운 야생화가 피워내는 아름다움보다도 조용히 공간을 차지한 백발의 인꽃(人花)이 더욱 빛을 발하는 듯했다.
“나도 이곳에서 꽃이 될 수 있을까?
인생은 무엇을 찾는가 에서 시작되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에서 성장하며, 무엇을 했는가에서 매듭이 지어지게 된다. 나의 인생은 학문을 찾는 시작점에 있었다. 그리고 아직 그것을 통해서 성장하거나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는 숙제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앞에 있는 노신사는 그 과정의 정점에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몹시 급해졌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으로 눈을 돌렸다. 진짜 도다이(東大)의 학생과 교수들 틈에서 가짜 학생이 숨소리를 죽이며 희망을 찾았다.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듯이 책들은 낚아채 갈 주인을 기다리며 옹기종기 속앓이를 했고, 나는 초연의 심정으로 그것을 간절하게 응시했다. 자그만 유혹에도, 끌림에도 금방 넘어갈 것 같았고 빠져들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우연은 필연이고, 누군가에게 필연은 우연이다. 도서관의 주인이 된 노신사와 책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이 순간과 공간은 우연이었는지 필연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나에게 우연한 필연이고 필연적인 우연이라는 확신을 갖고 싶었다.
나는 한 구속에 나란히 꽂혀있는 책으로 눈이 갔다. 모두 동일한 저자가 쓴 책들이었다. 학문의 경지는 알 수 없으면서도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은 분명 ‘낯설움’이었고 동시에 ‘새로움’이었다. 그것은 사상의 혼란에 빠졌던 자신, 그리고 인생과 삶이 흔들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구세주와 같은 신선함을 주었다.
그것은 바래버렸다고 생각했던 사상의 새로운 방향과 흐름을 암시했다. 나는 새로운 만남에 고개를 숙여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했다. 한참 동안 내용에 빠져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다. 당분간은 이 책 저자의 제자가 아니라 이 책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임이 없었다. 우연히 이 대학의 정문에서 이 대학을 선택했지만, 이번에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이 대학에서 스승을 찾아야 했다.
책장에 진열된 스승이 된 책을 제자가 모두 손에 넣었다. 책에 인생을 거는 모험을 하면서도 한없이 짜릿했다. 온 마음으로 도박하는 것이 행복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만약 인생에서 올인할 경우가 있다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손에 든 책을 보고 간절히 “센세이(先生), 잘 부탁합니다. 삶의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충심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시원하게 말했다. 학문에 대한 다짐인지, 책의 저자에 대한 바람 인지 헷갈리고 있었지만 진심을 내보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나는 잠시 처음으로 도쿄에서 선택받기보다는 선택하는 사치를 누렸다. 마음속에서는 있는 숙제가 잘 풀리고 있는 것인지, 안 풀리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 나의 선택은 태풍이 갑자기 거세게 밀려와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는 단비와 같이 달콤했고 유쾌했다.
그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무게를 강하게 느꼈다. 무거운 것은 무거운 만큼만 지고, 가벼운 것이라도 그만큼만 지면 된다는 체념론이 둔갑한 낙관론이 나를 휘어 감았다. 무거운 것을 가볍게 져 망치거나 가벼운 것을 무겁게 져 망치고 싶지 않았다.
“삶의 무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무게만큼만 잘 지면 되는 것”이라고 속삭였지만, 앞으로 끊임없이 밀려올 학문의 무게가 자신을 압박하고 있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 의심이 갔기 때문이고, 낮지만 깨지지 않는 초심으로 강하게 버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자신이 선택하면서 생긴 무게만큼만 잘 지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믿고 그 무게를 가늠하면서 님이 되어버린 책의 저자에 대한 그리움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노트에 써 내려갔다.
사사곡(思師曲)
님을 알지 못합니다
님을 알고 싶습니다
해가 포효하듯 벌겋게 알고 싶습니다
달이 요동치듯 설레게 알고 싶습니다
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님을 뵙고 싶습니다.
햇빛처럼 뜨겁게 뵙고 싶습니다
달빛처럼 살갑게 뵙고 싶습니다
님을 찾은 적이 없습니다
님을 찾고 싶습니다
해처럼 밝게 찾고 싶습니다
달처럼 은은하게 찾고 싶습니다
님과 동행한 적이 없습니다
님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햇빛에 젖은 낯처럼 동행하고 싶습니다
달빛에 취한 밤처럼 동행하고 싶습니다
소원은 이루어져야 맛이 난다. 나의 소원은 지금처럼 도다이의 정문으로 들어가 내부인이 되어 당당하게 생활하며 의미가 있는 흔적을 남기고 아카몬(赤門)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 출발점은 사사곡(思師曲)으로 확인된 짝사랑을 진하게 하는 것이었다.
거만한 캠퍼스에 유혹당하면서, 도서관에서 신선하게 만난 노신사를 보면서, 새로움으로 타격을 준 책들에 홀리면서 새로운 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현재의 마음 그대로 직진을 하면 행복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 심장부인 도쿄에서도 그러했듯이 도다이에서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딘가에 떨어트린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는 결심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을 통해서 만난 그분이 가는 학문의 길에 동행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쌓여가는 기다림을 소각하기 위해 책 속의 글과 대화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움’은 무엇일까? 새로움의 시대는? 새로움의 미래는? 등에 대한 ‘문(問)’을 일방적으로 그분에게 보내는 문통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사곡과 짝사랑으로 시작된 길 찾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막다른 골목에 수없이 부딪히면서 ‘답(答)’이 없는 문통을 이어갔다. 나의 간절함은 마치 넓은 하늘 속으로 흔적 없이 흡수되는 한 줌의 공기와 같았고, 세찬 바람에 꼬꾸라지는 작은 숨소리에 불과했고, 거세게 낙하하는 소낙비로 지워지는 눈물 자국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시작은 이미 고사 상태에 빠졌다. 사람이 몹시 그리웠고, 님이 한없이 야속했다. 슬픔에 빠진 내가 슬픔에 빠진 나를 위로하던 어느 날 오후 연락이 왔다. “연구실로 와” 그 한마디였다. 거기에는 대화도, 쉼표도, 질문도, 대답도 없었다. 오로지 시작과 마침표가 붙어있는 전언뿐이었다.
“책 속의 님이 ‘연구실로 와’라고 합니다. 매우 간결하게 긴 여정을 시작하고 싶은 님이었습니다. 희망의 시작과 절망의 끝을 알고 있는 님이었습니다. 칼날 위에서 곡예를 해도 웃으며 동행하고 싶은 님이었습니다. 따듯함과 냉혹함을 가진 님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는 님이었습니다.”
‘연구실로 와’라는 이끌림에 연구실 앞에 있었다. 잠시 망설임에 기대어 자신감이 누락된 노크를 했다. 책으로 둘러싸인 구석에서 선생님이 고개를 들고 빼꼼히 나를 봤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서관에서 본 그 노신사였다.
첫 만남에서는 살얼음을 걷는 나와 살얼음을 만든 선생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보다는 기울어진 운동장만 있었다. 칼칼한 쇳소리 같은 짧은 ‘문’에 모랫바람 속으로 사라지는 듯한 ‘답’이 있었다.
“학문하는 이유는?”
“예...”
이 짧은 ‘문답’이 사사곡에서 시작된 짝사랑의 결말이었다. 거기에는 고마움이나 그리움을 표현할 간극이나 찰나도 없었다.
짧은 만남으로 정문 앞에 서게 되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정문을 통과해야 하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작의 매듭은 종결이 아니라 다른 시작이라는 생각이 아프게 밀려왔다. 시작을 완전하게 사라지도록 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이제 겨우 캠퍼스에 깔려있던 고요한 침묵은 격렬한 경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사라진 딱딱함은 뜨거운 마음으로 굳어진 열정이었다. 덥수룩한 더벅머리 학생은 이곳에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이었다. 날카로운 눈길은 여기에만 있는 도가니 같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행스럽게 정문을 통과하는 행운을 얻었다. 나에게 이곳은 감성의 유무를 느끼지 못해야 설 수 있는 곳이었다. 미추를 등한시해야 정상으로 향할 수 있는 곳이었다. 자존심이 최대의 장애가 되는 곳이었다. 빨간 마음으로 경쟁해야 하는 곳이었다. 인간다움이 무너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었다. 버거움을 느껴야 행복한 사람이 되는 곳이었다.
나는 비로소 까다롭게 굴었던 정문, 많은 질문을 쏟아냈던 나무들, 두려움에 기죽은 발길을 응원했던 철학의 길, 나가는 길을 아름답게 축복했던 아카몬, 지식인의 생각과 열정으로 물들여진 소문난 역사, 백발로 맞이한 어느 노신사의 유혹, 유난히도 날카로운 스승의 목소리 모두가 캠퍼스의 사랑이었다. 나도 이제 막 캠퍼스 사랑을 시작했다.
3
나는 나에게 둘도 없는 선물을 줬다. 그것은 스스로 명명해 간직해 온 ‘경쟁대학, 자부심 대학, 거만한 대학’이었다. 그런 살벌한 세계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과 필연으로 다가온 지금의 상황은 그 어느 것과도 그 어느 때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존재였다.
이제야 비로소 쌓여있던 역사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단아하게 서있는 야스다 강당(安田講堂)이었다. 정문에서 똑바로 가도록 안내를 하는 건물이었다. 일본산업혁명의 선두에 서서 성공한 재벌이 익명의 조건으로 기부하여 건축됐다.
건물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문에 착안하여 설계하였고, 관동대지진으로 일시 중지되었다가 1925년 준공되었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신선한 마음이나 고답적인 마음이나 차별하지 않고 벽 속으로 담아냈다. 그리고 1988년 야스다 기업이 강당이 입은 외상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으로 보수했다.
관심을 끈 것은 벽에 깊이 남아있는 상처들이었다. 이곳은 일본이 고도 경제성장을 하던 1960년 후반경 청년 세대가 권위적인 기성세대를 상대로 저항한 도다이 분쟁(東大紛争)을 온몸으로 담아냈던 곳으로 민주화의 성지로 여겼다.
눈앞에서 펼쳐져 야릇하게 웃고 있는 벽돌의 사연이 알고 싶었다. 1980년대 대학의 한 모퉁이에서 민주화를 위해 저항했던 나로서는 이곳의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어 어떻게 결말을 맺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내 몸속에 운동 기질이 남아 용솟음치거나 분출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곳의 상처는 질풍노도를 거치면서 생긴 자신의 상처와 오버랩되는 것 같았다. 치유해도 치유되지 않는 아픔,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 시대가 바뀌어도 남는 기억, 시간이 흘러도 흘러가지 않은 잔해, 버리려 해도 되돌아오는 메아리 그것이 바로 민주화가 남긴 영원한 유산이었다.
역사는 흘러가면 과거로 남아 기록되거나 사라진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강당의 상처는 시간과 공간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항상 현재로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벽의 상처로 남긴 청년들의 민주화 소리는 내가 냈던 신음과 매우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곳저곳 상처를 살폈다. 어딘가에 그 흔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강당의 한 모퉁이에 당시 학생이었을 선생의 이름이 아주 작게 흐릿하게 새겨져 있었다. 첫 대면에서 인상적이었던 선생의 쇳소리가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직감했다.
시대적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젊음을 불살랐고, 무엇인가를 위해 몸부림쳤을 선생의 모습이 고스란히 낙서로 상처 난 벽돌과 동행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어떻게 이름이 새겨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영광의 상처’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여전히 나를 아프게 했던 민주화운동이기에, 선생에게 상처를 냈을지도 모를 민주화운동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선생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애용하던 도서관의 그 자리에 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벽돌에 얽힌 사연을 직접 듣고 싶어 돌연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마르크스주의자였습니까?”
“...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민주주의자라고 하면 좋지 않을까?”
“자네는 마르크스주의자인가?”
“예. 그 사상을 신봉하였고, 그 연장선에서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선생은 민주주의자로서 ‘민주화’를 위해서 학생운동을 했고, 나도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였고, ‘민주화’를 위해서 학생운동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는 비판 사상에 기초해서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 운동 과정과 결과가 어떠했는지 궁금했다.
선생은 자신이 체험한 도다이 분쟁(東大分爭)에 대해서 회상에 잠겼다. 도다이 분쟁은 의학부 학생의 인턴제도 폐지 요구와 처우개선, 대학 운영의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학교 측과 충돌하면서 시작되었다. 의학부 학생들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무기한 파업을 단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직원 간의 불상사가 일어나면서 대학 당국은 의대생에게 징계를 내렸다. 그중 한 학생이 오인되어 징계받았다는 의혹이 생기면서 점화된 대학분쟁이 폭발하게 되었다.
학교 당국이 징계 철회를 거부하자 의학부 학생들의 주장에 크게 동조를 했던 급진파 학생들은 야스다 강당을 점거했다.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 총장은 경시청 기동대의 출동을 요청해 점거한 학생의 강제퇴거에 나섰다. 강제퇴거에 반대하기 위해 법학부를 제외한 학부가 참여하여 하루 파업을 단행하였다.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대치국면이 지속되면서 안전모와 마스크를 쓰고, 각목을 드는 적극적인 대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야스다 강당을 두고 벌이는 기동대와 학생 간의 싸움에서 각목, 최루탄, 물대포 등이 사용되어 아수라장이 되었고 강도가 더해지면서 강당의 벽이 깨지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학생들의 싸움은 권위적 권력행사에 대한 저항이었고, 학생들의 함성은 기득권이나 불합리한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민주화의 소리였다. 그 과정에서 도다이 분쟁 참여자들은 변혁의 새로운 주체로 탄생했던 것이다. 도다이 급진파 학생 중의 한 사람이었던 선생은 당시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는 데 참가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외부의 극좌익세력이 참가하면서 새로운 과격한 단체가 결성되었다. 이후 강력해진 과격한 단체와 당국과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도다이 학부자치회는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과격한 단체는 결사적으로 투쟁을 하는 동시에 ‘도다이 해체’라는 더욱 새로운 표적물을 들고 나왔다.
그들은 도다이가 기득권을 유지하고, 기회를 독점하는 극단적인 기관으로 규정하였다. 그런 도다이를 유지하는 것은 특권적인 공동체를 옹호하여 편익을 도모하는 사악한 행위이며, 인간차별과 인권유린에 해당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권위적으로 사익을 독점해 온 도다이 권력 클러스터를 없애기 위해 도다이를 해체하는 것이 공익추구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미래사회는 전통적인 가치와 권위로부터 과감하게 해방되어야 하기 때문에 도다이 해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선생은 중학교 수학여행 코스로 도다이를 견학했을 때, 정문을 보면서 반드시 이곳으로 들어와 아카몬을 보면서 웃으며 나갈 것이라고 다짐을 했었다. 이후 선생은 도다이 정문을 통해서 들어와 비판 문학을 지향하면서 개혁과 민주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도다이의 민주화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그동안 대학개혁, 민주화, 반권위 등에 크게 동조했지만, 과격한 단체가 주도하는 운동이 대학의 민주화에서 도다이 해체로 이행한 것에 대해서 강한 이질감을 가졌고, 큰 충격과 함께 반감을 갖게 되었다.
더욱이 도다이를 해체하는 것이 공익이라는 주장에는 대학의 미래와 희망이 없었고, 대학의 민주화를 가장한 또 다른 특권층 만들기이며, 그것을 위한 노림수에 불과하며, 공익을 위장한 사익이 내재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그리고 파괴적인 투쟁방식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현상이라고 인식했다. 학생운동은 전근대성과 근대성의 한복판에서 허덕이는 민주화의 방향성을 잡기 위한 힘이지 결코 대학 존재 자체를 붕괴시키는 파괴적 힘은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인식했다.
그런 이유로 대학개혁과 민주화라는 명분에서 크게 벗어난 파괴적 투쟁방식과 왜곡된 목표에 근거한 도다이 해체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를 하였다. 더욱이 미래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현장을 파괴하는 행위를 용인할 수 없었다.
선생은 도다이 지킴이가 되기로 결심하여 행동하기 시작했다. 도다이 지킴이가 된 선생의 주도로 그동안 분쟁의 씨앗이 됐던 학생징계 철회, 자치활동의 자유화, 대학개혁과 민주화 등에 대한 합의가 성사되었다.
이후 많은 민주화에 목말라 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파업과 투쟁을 중지하고 학교생활로 돌아갔다. 과격한 단체의 힘이 약화되었고, 동시에 극렬활동가가 검거되면서 도다이 분쟁은 막을 내렸다. 분쟁이 종식된 후에 대학개혁과 민주화의 과제는 도다이의 바람직한 존재방식과 비전적 역할을 강조하는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지식은 신념을 낳기도 하고 변절을 낳기도 한다. 지식은 분쟁을 낳기도 하고 타협을 낳기도 한다. 지식은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 지식은 방향성을 갖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지식은 희망이기도 하고 절망이기도 하다. 선생의 지식은 그렇게 신념, 변절, 분쟁, 타협, 열정, 냉정, 희망, 절망 등과 같은 칼날 위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이정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선생은 사익과 공익,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보수화와 민주화, 도다이 해체와 존치, 현실과 미래, 자신과 타인 등과 같은 이중 구도에서 파괴 사상과 새로운 사상의 갈림길에서 몸부림을 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선생은 도다이 분쟁을 계기로 급진적 파괴와 붕괴를 조장하는 사상을 포기하고 점진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온전한 민주화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선생은 말을 마치고 나의 상황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자네가 참가한 학생운동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네. 아마도... 군부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정권을 탄생시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사회를 구축하는 데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내에서의 민주화운동은 어떠했는가?”
“거의 매일 군부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집회와 과격한 투쟁을 하여 대학교육은 고사상태의 위기에 빠졌지요.”
“일시적으로 우리도 그랬네, 학생들의 호응은?”
“처음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으나, 운동 세력이 독단적이어서 외면받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지요. 더욱이 운동세력이 좌지우지하면서 민주화가 누락된 ‘운동권 세력화를 추구했다는 생각에 이질감이 생겼습니다.”
“민주주의 도입에 기여를 했는가?”
“저항에 부딪힌 군사정권은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뽑도록 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정권이 탄생했는가?”
“민주화 세력 사이에 민주화운동의 원조를 둘러싸고 분파가 생겨 민주주의적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군사정권이 탄생했지요. 그 이후 민주정권을 탄생시켰지만 권력을 독점하는 기득권자로 행세를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정권이 교체된 것은 민주화운동의 결실이라고 생각하네.”
“그 일부는 민주화운동을 훈장으로 알고, 여전히 자신들만이 옳다고 하는...”
선생이 참여한 민주화운동과 내가 참여한 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의 활성화에 긍정적인 역할과 기능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남겼다. 민주화운동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목적을 두었지만, 자칭 민주세력 일부는 정치적 욕망과 연결시키 자기중심적 의지를 무리하게 내세워 비민주주의의 한 주체가 되었던 것이다.
도다이 분쟁은 결과적으로 권위적인 뱃사공이 민주적으로 배를 운행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배의 존재를 없애기 위해 구멍을 뚫어 난파시키려 한 딜레마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은 침몰하는 배와 동행할 수 없어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내가 참여한 민주화운동은 독재하는 뱃사공을 민주적으로 세워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공했다는 데 성공했지만, 스스로 뱃사공이 되어 자신들만이 옳다고 주장하여 배를 산으로 가게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산으로 가는 배와 동행할 수 없어 새로운 길을 찾았던 것이다.
선생은 도다이 분쟁을 통해서 도다이 해체 세력에 대항하는 도다이 지킴이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길’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민주화를 가장한 또 다른 권위 세력’이 되어 도다이 해체에 가담했을 것이고, 선생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군부 권력의 대체를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민주화를 가장한 또 다른 독재세력으로 등장하는데 반기를 들지 않았다면, 나는 그 행로에서 결코 ‘새로운 길’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새로운 독재 세력화’에 동조했을 것이고, 선생을 만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60년대 선생이 추구했던 민주화와 30년 후 자신이 추구했던 민주화는 ‘새로운 길’을 찾는데 일맥상통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찾기 위한 운동으로 구축한 민주화의 발판을 내어줬어야 했다는 점, 원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비워줬어야 했다는 점에서도 일치하는 듯했다.
민주주의는 사상으로서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쓸모가 없어졌거나 헌책방의 한구석에서 잠자지 않고 있어 이 시대를 움직이는 사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민주주의와 민주화운동은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으며 누군가의 전유물이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이 시대의 불문율이라면 잘못된 판단일까?
4
청춘이 피워내는 따듯한 온기가 모이는 곳이었다. 혼란한 정신과 경직된 신체가 스스로 녹아내려 깔끔해지는 곳이었다. 어지러운 세상을 비추고자 광기를 부렸던 햇살도, 힘이 빠져 하염없이 뛰어내리는 빗물도 부드럽게 받아내는 곳이었다. 파랗게 돋아난 새싹이 노랗게 익어가는 사계의 변덕도 기쁘게 안고 가는 곳이었다.
거기에서는 누군가에게 달려가 안기거나 고백을 해도 될 것 같았고, 누군가가 데려가 줘도 고마워할 것 같았다. 그러기에 꽃향기처럼 부드럽고 유혹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야 어울렸고,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는 한가로움이 있어야 어울렸고, 한 모퉁이에서 죽고 싶을 정도의 지독한 외로움이 있어야 어울렸다.
이곳에는 언제나 함께 건너고 싶은 돌다리, 야한 마음을 흘려보내는 잔잔한 물줄기, 거친 미소를 머금은 야생화, 겹겹이 서로를 안고 있는 나무, 떼 지어 군무하는 금붕어, 자유롭게 올라가야 할 것 같은 돌계단, 유유자적 물질하는 거북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돌부리가 엉켜 있는 곳이었다.
물안개가 안개가 되고, 금붕어도 붕어가 되고, 검정물방개도 방개가 되고, 그림자도 어둠이 되고, 짝사랑도 사랑이 되는 소박함이 물 멍으로 살아나기도 했다. 본류에서 약간 비켜 간 죄로 물안개, 금붕어, 검정물방개, 그림자, 짝사랑이 되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었다.
이곳은 신지이케(心字池)라고 부르는 연못이었다. 마에다가(前田家)가 에도시대 쇼군(將軍)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이곳에 연못을 조성해서 쇼군 이에미쓰(徳川3代将軍家光)를 맞이한 곳이었다. 연못의 형태가 ‘心’ 자를 형성하고 있어 더욱 유명해졌다. 군신 간에 충(忠)으로 하나가 되고, 사람 간에는 사(思)로 하나가 되는 듯한 곳이었다.
이후 신지이케는 소설 《산시로》(三四郎)에서 오카와 산시로(小川三四郎)와 사토미 미네코(里見美禰子)가 만난 곳이어서 산시로 연못(三四郎池)으로도 불렸다. 그들의 사랑은 만나면서도 그리워하는 짝사랑이었고, 홀로 되어 애가 타는 외톨이 사랑이었다. 좋아해도 가까워질 수 없고 놓아도 놓지 못하며, 떠나도 떠나지 못하는 상태로 서로를 그리워하는 별리 사랑이었다.
산시로 연못은 정숙하고 부드러운 여성을 닮았고, 성깔 있게 절정에 다다른 거친 남자를 닮았다. 가끔가다 남성을 닮은 햇빛과 여인을 닮은 물빛으로 곱게 차려지는 일곱 색깔 무지개가 물 꽃으로 피어났다. 언제가 홀연히 나타날 것만 같은 님을 기다리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가끔 속이 뒤집혀 무엇인가 그리우면 와야 했다. 외로움이 솟구쳐 오르면 물속을 거닐고 있는 홀로 된 노란 비단잉어의 물장구에 맞추면 되었다. 빈 마음을 채우고 싶으며 물 위에 비췬 나무 그림자를 보면 됐고, 걱정거리가 있으면 조용히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섞어 날려버리면 됐다. 행복이 넘치면 돌부리의 기운에 의지하여 조용히 앉아 흥을 내면 됐다.
매일 먹어도 때가 되면 허기가 지듯이 매일 들러도 돌아서면 그리워지는 그런 곳이었다. 이곳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소중하고, 혼자 가만히 있어도, 자신을 껴안고 있어도, 알지 못하는 사람과 의미 없이 마주쳐도, 부딪침이 없어도 좋은 곳이었다. 보이면 보이는 대로 아는 척 가만히 있으면 됐고, 가면 가는 대로 꽁무니를 향해 ‘잘 가시라’고 인사를 하면 됐다. 서먹함과 익숙함이 하나가 되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가끔 사랑에 대한 갈증이 생기면, 연못을 맴돌며 서성이는 자신의 얼굴을 물 위에 진하게 그리곤 했다. 산시로 연못과 함께 하는 익숙한 얼굴을 볼 때면 “또 만났군요. 당신을 좋아해도 될까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주문을 외우면 됐다. 연못과의 사랑은, 자신과의 사랑은 그렇게 이곳에서 존재했다.
언제나 일편단심 하나로 있는 연못과 자신이 내게 있는 전부였다. 연못이 있어야 볼 수 있는 자신을 닮은 물그림자를 보며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우리 사이에는 눈치를 안 보고 고백을 해도 됐다. 날카로운 거절이 없어 좋았고, 항상 부드러울 메아리로 오는데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 좋았다.
그것으로 부족할 때면 가끔 스쳐 간 사람을 그렸다 지웠다 하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번개처럼 왔다가 물속의 그림자로 길게 남은 여인이 생겼다. 아름다운 꽃을 떨군 것도 아니었고, 향기를 듬뿍 뿌리고 간 것도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여운과 함께 뚜렷한 자태를 연못 속의 물그림자로 띄우고 가버린 사람이었다.
아무런 인연이 없는 듯이 사뿐히 사라졌지만 산시로 연못을 갈 때마다 그 모습은 항상 그 자리에 진하게 남아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물그림자와의 짝사랑은 잔잔한 물살로도 깨져버리곤 했지만 언제나 그 자리로 돌아왔다. 물그림자로 살아가는 짜릿한 여인이 있어 이곳을 찾아와야 했다. 다시는 그런 스침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밤낯처럼 찾아왔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었고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었다. 그녀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부정하고 싶었고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나와 함께 긍정적인 부정과 인정 사이에 존재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에게 했던 ‘사랑합니다.’가 물 위에 그려진 그녀에게로 향했다.
“몹시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그리움이 그녀에게 훅 들어간 것이기에 자신만이 알고 앓는 홀로 하는 사랑이었다. 생각하거나 그릴 수는 있으나 품을 수 없는 그런 허깨비 사랑이었다. 아주 잠깐 오는 것이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무모한 사랑이었다. 마음껏 사랑하고 싶지만 그녀는 알지 못하는 짝사랑이었다.
그리움으로 어두워진 마음을 깨울 듯한 화창한 봄기운이 기지개를 펴면서 새 학기 제미(ゼミ:seminar)가 시작되었다. 선생의 제자가 된 대학원생들이 강의실에서 조우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이른 시간에 갔다. 이윽고 선후배들이 속속 자리에 앉으면서 짧은 인사의 눈빛이 오고 갔다.
선생의 강의가 무르익어 갈 때쯤 소리 없이 한 사람이 들어왔다. 눈에 들어오기에 힐끔 봤다. 그러나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얼굴이 아니라 확실하게 봤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그 사람이 틀림없었다.
산시로 연못에서 한순간 스치고 간 후부터 기억 속에서 그리고 그렸던 그 여인이었다. 물속에서 물그림자로 살고 있는 그 여인이었다. 마치 물속에서 있어야 할 물그림자가 야생화처럼 생생하게 피어나 내 앞에 있었다. 눈길은 그녀로부터 멀어지려고 허공을 헤맸지만, 요란하게 뛰고 있는 가슴은 그녀를 외면하지 못했다. 외면하고 싶은 눈빛과 머물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엇박자가 되어 몸체를 흔들었다.
다행스럽게 마음속에 어떤 여인이 들어오면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울림에 대해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 오로지 자신만이 그 황당하고 가슴 벅찬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빠져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 자리에는 그 이외의 아무런 소동도 재잘거림도 없었다. 그녀도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강의가 잠시 휴식 시간에 들어가면 틈을 이용해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했다. 이윽고 그녀는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치조 마리(一條茉莉)’라고 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땅으로 떨어져 사라지기 전에, 다른 이들의 귀에 들어가 희석되기 전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숙명처럼 다가왔다.
머리와 가슴으로 그녀의 이름을 정확하게 반복적으로 속삭였다.
“이치조 마리, 이치조 마리”
한 글자 한 글자 외우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순간적으로 생긴 혼란이 제어되지 않는 것은 좋아하고 있다는 징표라는 것을 알았다. 속마음이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초조함은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조그맣게 일어나는 파장이 기뻐하는 설렘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연히 산시로 연못의 마주침이 멀리 날아가는 바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감정이 뭉쳐져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당신에게 마음을 쌓아가도 될까요?’라고 묻고 싶었다. 그 모든 것은 그녀가 있어 생긴 소동이지만 그녀의 책임이 아니었다. 마치 어느 작가가 쓰는 소설의 한 장면이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그것은 실체가 아닌 허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만남이 도쿄에서 생길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이 거짓 없이 똑바로 전달되어 뒤틀리지 않게 반향 하는 교류가 되기를 바랐다. 저절로 흘러가는 이 눈빛이 엇갈리지 않기를 기도했다. 산시로 연못에서 시작된 물보라 사랑이 현실이 되기를, 영원히 깨지지 않는 물그림자로 남아있기를 희망했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부끄럽지 않은 심정으로 산시로 사랑에 불을 댕겼다. 타들어 가는 마음을 끌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마음껏 태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어도 매번 다시 시작해야 될 것 같다는 것도 알았다. 내게 산시로 사랑은 오늘의 시작이 내일의 시작으로 반복되어도 버텨야 하는 그런 것이었다.
이치조 마리는 호수와 같은 맑고 촉촉한 눈을 가졌다. 일본열도처럼 길게 내리 뻗은 코를 가졌다. 입술은 꼭 닮은 선남선녀가 사랑을 나누는 한 쌍처럼 요염하게 자리를 잡았다. 머리칼은 잘 다듬어진 정원수처럼 다소곳했다. 이목구비는 날카로운 칼로 정성을 들여 조각한 작품처럼 보였다. 서구적인 풍을 담고 있어 판단할 틈도 없이 미인이라는 단어가 아름다운 위협으로 다가왔다.
가냘픈 목덜미는 상하를 조화롭게 연결했다. 어깨는 세파의 흐름을 적절하게 지고 갈 수 있을 만큼 버티고 있었다. 가슴은 조용하게 사뿐히 한숨을 쉬고 넘을 수 있는 언덕처럼 아담함과 부끄럼을 안고 있었다. 허리와 다리는 잠자리처럼 가냘프고 아름답게 온몸을 떠받치고 있었다. 몸체는 즉시 탐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완전한 도시풍의 여자였다. 빼어난 이국적인 미모와 눈을 빼앗아버리는 몸매와 귀를 기울이게 하는 화력을 가졌다. 그 누구도 거부하거나 부인할 수 없는 매력을 가졌기에 항상 화두의 중심에 서있는 여성이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발산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침묵하는 흑백의 여성이었다. 특히 영어, 독일어, 한국어에 능통하였고, 많은 재능을 갖고 있는 재주꾼이기도 했다.
그녀는 내면에서부터 외면에 이르기까지 있는 모든 것을 향유하는 자유방임주의자였다. 불합리한 규칙을 파괴하고 새롭게 만들어내는데 익숙한 제도 파괴자이고 개혁가였다. 안갯 속에 있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이는 것을 소중히 하는 실증주의자였다. 과거의 사실이나 미래의 허상보다는 현실적 실상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자였다.
특히 그녀는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았다.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생기는 파열음을 촘촘히 분석하고 대응하는 완벽주의자였다. 민주주의가 부르짖는 자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극히 위험한 도구로도 사용되어 때로는 독이 된다고 인식했다. 민주주의는 항상 민(民)에게 약이 되는 존재이기를 바랐다.
잘 속지 않을 만큼의 냉정함, 상대방을 대화로 제압하는 언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세워지는 논리, 버들가지처럼 살랑거리는 다정함으로 그녀의 비밀을 묻고 있었다. 자신이 자란 환경과 가족에 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듯했다.
그녀가 선생의 제자가 된 것은 선생이 추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매력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올바른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몰두했다. 평소에 그녀는 일본형 민주주의에 대해서 회의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형 민주주의에 대해서 회의를 가진 자신과 매우 흡사한 상황이었다.
선생의 제미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연구하여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녀는 한국형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나는 일본형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공동연구를 하기로 하였다. 다행스럽게 공동연구를 통해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우리는 한일 간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 민족주의를 초극할 수 있는 사상을 민주주의로 규정하였다. 한일관계에 존재하는 문제가 민주주의의 조락이나 왜곡에 의해 발생되는 것이며, 미래지향적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했다.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온전한 민주주의’에서 찾았다.
이치조 마리와 나는 민주주의 정체와 실체에 대해서 몰두하면서도 서로의 정체와 실체를 탐색하는 시간도 양념처럼 곁들여졌다. 우리는 각자가 갖고 있는 호흡의 길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가 표현하고 있는 감정의 색깔과 농도를 느낄 수 있었다. 괴변이나 주장을 들어줄 수 있었고, 질문에 답을 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민주주의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증거를 찾을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하고 풍부한 자료가 있는 도서관 서고로 나를 끌고 갔다. 오래된 도서가 있는 서고에는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쌓였고, 철 지난 냄새들이 코를 자극했다. 그녀는 서고 냄새에 푹 빠져있었다. 인기척이 없었고 반기는 것은 책뿐이었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치조 마리가 유일했다.
찾아올 연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인고의 시간을 보내다 바래버린 초췌한 도서들이 외롭지 않게 나란히 서로에게 기대고 있었다. 그녀는 책들이 갖고 있는 사연을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자료를 찾으면서 책 사이로 가끔 마주치는 눈빛이, 때로는 투박하게 때로는 사푼사푼 다가오는 발소리가 빈 공간과 내 마음을 채웠다.
분류표가 이끄는 대로 가다 보니 불투명한 만남과 이별이 반복됐다. 어느 순간에는 저편으로 사라지는 그녀가 갑자기 그리워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에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녀가 더욱 그리웠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내는 소리를 귓가에 담았고, 그녀가 가진 자태를 눈에 새겼다.
책들이 만들어낸 공간은 사랑스러운 공간이 되어갔다. 이따금 마주치는 눈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고, 가끔 부딪치는 스침이 부드러운 기운을 만들어냈다. 서고 속에 있는 마리는 아주 오랜 세월을 같이 한 연인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름다운 여인 그대로였지만 야한 냄새가 나지 않는 여인이었다. 고서들이 내뿜는 진한 냄새를 가진 여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이성과 감성이 그녀 속으로 파고들 틈이 없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고서들이 그녀가 사랑하는 대상이었고, 사랑의 보호막으로 있었다. 나를 위한 공간이 없다는 인식과 빈틈없이 진행되는 이 상황에 질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살며시 그녀를 훔치기 위해 고개를 내밀었다가도 속마음이 읽히지 않도록 거북이 목처럼 끌어들이는 데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고요함 속에서 이따금 들리는 그녀의 발소리는 ‘빨리 쫓아오라’는 소리로 들렸고, 새근거리는 숨소리는 무엇인가를 재촉하는 듯한 신호로 들렸다. 책을 집었다 다시 꼽는 행동은 ‘빨리 안았다가 되돌려 놓으라’는 행위로 착각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행방을 잃고 허공을 떠돌 때면 잡아줘야 한다고 오인했다. 그녀가 길게 빚어내는 눈빛은 내가 만들어낸 잘못된 인식을 태워주는 듯했다.
그녀의 순수함과 나의 불량함이 달리면서 유지하는 평행선은 이따금 마주치는 친근감으로 상쇄되는 듯했다. 이 접점에서 생기는 친근감은 너무 빨리 사라져 잡거나 멈출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나만 알고 그녀는 알지 못했기에 공유할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시간과 공간이 모두 그녀의 것이 되었다. 순수함과 불량함이 평행선을 유지하는데 지친 시점에서 나는 가지고 온 책을 땅바닥에 놓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녀도 잠시 쉬어가자며 옆에 앉았다. 행복한 순간이었지만, 숨겨왔던 마음과 조용히 내뱉는 숨소리가 거칠어질 때면 나는 그녀를 보고 겸연쩍게 웃었다. 긴장이 담긴 모습을 해결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마리는 승패가 나지 않는 숨 막히는 감정 공간을 깨기라고 하듯이 몸을 내게로 살며시 기댔다. 그녀답게 매우 자신 있고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이내 그녀가 뿜어내는 향기가 신선하게 맴돌았다. 그렇게 달콤한 향기를 맡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로 기울어지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몰리고 있었다.
그녀는 우연히 겹쳐진 손을 떼지 않았다.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잡은 손만을 뚫어지게 봤다. 망설임이 길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그녀의 입술이 돌진했다. 피할 힘도 피할 용기도 없었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가장 잘한 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바닥에 누워 포개진 몸짓이 만들어내는 향연에 긴장과 짜릿함을 느꼈다. 흔들리는 설렘은 거칠고 낯선 호흡으로 이어졌고, 여러 곳으로 분산되고 있던 몸체의 무게는 사랑의 눌림으로 다가왔다. ‘사랑하고 싶다. 좋아하고 싶다.’는 급한 마음에 그녀의 가슴을 강하게 잡고 말았다.
“바보야..., 이렇게!”라는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는 속삭임이 들렸다. 용기를 내어 수정하는 재치를 보였다.
이윽고 은밀한 곳으로 마음이 옮겨가는 것을 느꼈다. 내 손은 철통 보안요원으로 기능하고 있는 달라붙은 속옷을 매우 천박하게 다루었다. “바보야..., 이렇게?”라고 다시 바보에게 수정을 요구했다.
그녀는 침범하고 있는 낯선 행인을 숨김없이 받아들였다. 나의 천박함은 그녀의 너그러움으로 승화됐다. 그녀의 숭고함은 나의 허물을 덮고 있었다. 그녀는 숭고함과 천박함의 경계를 없애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의 접촉이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사랑의 완성으로 인식했고, 절대사랑으로 생각했다.
“사랑은 천박하고 숭고한 것이었다. 사랑은 허물어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사랑은 항상 풍족하고 부족한 것이었다. 사랑은 동행하고 갈라지는 것이었다. 사랑은 손을 잡고 놓는 것이었다. 사랑은 하나이고 둘이 되는 것이었다. 사랑은 매우 두렵고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사랑에는 승패가 없는 것이었다. ”
그녀와 나의 만남은 다행스럽게 접점에 잠시 서있었다. 그러나 언제든지 접점을 지나면 평행선이나 기울어진 선으로 달릴 수 있었다. 접점을 지나면 점점 멀어질 수 있는 운명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와의 사랑은 옳아도 옳지 않아도,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접점에 있어도 있지 않아도 항상 흔들림 속에서 찾아가야 하는 그런 것으로 다가왔다. 마치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애증의 평행선을 걷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형상과도 같았다. 그녀와 나는 도서관에서 형성된 접점에 대해서 이견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접점을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데 확신이 없었다. 그것은 현재 내가 갖고 있는 포용력을 능가하는 사람이어서 생기는 것이었다. 그녀는 좀 더 고도가 있는 곳에서 만나야 할 그런 사람이었다.
마리는 이미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운명론을 감지하였다. 그녀는 그런 생각에 일침을 가하며 긍정적인 운명론을 설파했다. 그녀는 “너와 나의 만남은 한국과 일본 간의 현안과 같은 관계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앞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해!”라는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그녀와 나와의 접점은 산시로 연못에서 시작된 산시로와 미네코의 접점과 오버랩되고 있는 듯했다. 산시로 연못에서 산시로와 미네코가 만난 현실, 선생의 제자로서 일본인으로서 이치조 마리와 한국인으로서 자신이 만난 현실은 되돌릴 수 없는 숙명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종종 처음 만났던 산시로 연못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처음 만나 그려진 물그림자가, 수없이 반복했던 독백이, 말없이 남겼던 발길이, 서로의 호흡으로 표시했던 사랑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연못이 담고 있는 물처럼 깊고 넓게 고이고 있었다. 산시로 연못은 우리의 현실이었고, 미래였다.
그녀는 “이 학교에 오면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아버지가 데려왔던 산시로 연못”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도다이 출신으로 이곳에 애착을 가져 산시로 연못을 닮은 정원을 만들고 싶어 했었다. 그 이상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을 보면서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다만 이치조 마리는 “산시로 연못에서 시작된 아버지의 사랑이 행방을 잃었듯이 자신의 사랑이 묘연해지는 것을 막고 싶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마리의 말에는 진심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고, 희망도 있었고, 고마움도 있었고, 사랑도 담겨 있었다.
산시로 연못은 잊을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는, 갈라질 수 있으면서도 소중한, 몸과 마음을 다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그런 사랑으로 남는 그런 곳이었다. 산시로 사랑은 절대적 희생으로 양산하는,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매우 아파하는 사이로 남아야 살 수 있는, 상처를 내면서 기억하는 사랑이었다. 우리가 시작한 사랑도 신시로 연못이 갖고 있는 사랑으로 남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그녀의 즐거운 노예가 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하는 말에 대해서 거부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할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이유를 말하지 않고 ‘목숨을 요구한다.’고 해도 기꺼이 내어 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와 한 약속은 생명이 다해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녀가 있거나 없거나, 사라지거나 증발하거나 관계없이 맹세한 나만의 약속이었다. 그녀를 받아들이는데 그런 약속을 하는데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것만이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그녀의 ‘바라기’라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5
행복보다 위에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닌 듯했다. 어느 날 마리는 박사과정 진학을 앞두고 아무런 연락도 없이 학교와 도서관에 나타나지 않았다. 동경의 대상에서 이야기의 상대로, 남과 여에서 연인으로, 야생화에서 심장에 남는 사람으로 알아 온 그녀가 사라졌다.
새삼스럽게 그녀가 누군 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새빨간 용암처럼 솟아오르던 뜨거움, 빗줄기 하나하나를 골라내는 섬세함, 복잡하게 있는 혼돈을 분해하는 날카로움, 끝없이 참아내는 인내력, 저돌적으로 도전하여 담대함, 한없이 부드럽게 들리는 속삭임은 그녀의 것이었다.
그리고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걷는 것이 동행이라고 알려준, 행복 위에는 불행이 도사리고 있다고 강조한, 기다림은 기다리는 자의 몫이라고 이야기했던 그녀는 이 자리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침묵을 남겼다.
그동안 같이 밟고 올랐던 도서관 계단은 비탈길과 다름없이 기울어져 있었고, 헛발을 디뎌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 같았다. 무게를 느끼며 걷는 발길이 아니었다. 목적이 있어 가는 길도 아니었다. 앞으로 향해야 할 눈길은 하염없이 뒤를 돌아보며 누군가를 찾으며 멈추고 있었다.
마리로 인하여 벌어진 혼란은 아픔의 구덩이로 깊이 파이고 있었고, 그녀를 찾아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넓어지고 있었다. 감쪽같이 사라진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녀가 흘렸던 조각을 찾아야 했다. 산시로 연못에 나타난 이후 그녀와 동행하면서 획득한 조각을 하나하나 떠올려야 했다.
가끔 ‘집안에 일이 있다.’고 급하게 호출될 때 양복을 입은 신사가 데리러 오는 경우가 있었다.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모습은 마치 경호원이라는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유명 인사에게 있을 법한 그런 상황은 그녀가 숨기고 있는 비밀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혼자 등교할 때면 노란 스포츠카를 몰고 와 잘 보이지 않는 주차장 구석에 세워두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딸이라는 소문도 무성했었다. 서양인을 닮은 혼열아라는 이야기도 흘렀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신분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확인한 적이 없었다.
그녀와 한 약속 때문이었다. 이전에 그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과 자신에 대해서 묻거나 찾지 말라”라고 약속을 요구했고, “그렇지만 반드시 너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약속을 했었다. 그녀를 찾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유일했다.
그녀가 말한 “그렇지만 반드시 너에게 나타날 것”이라는 약속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약속’의 유효기간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그녀와의 약속을 깨는 것과 지키는 것은 헤어짐이라는 동일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녀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는 사그라지고 있었다.
나는 나의 약속을 깨기 위해 그녀가 남긴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기 시작했다. 가장 유력한 단서는 이치조 마리라는 이름, 어느 날 빼앗아 지갑 속에 간직하고 있던 그녀의 사진, 애마였던 시나가와(品川) 자동차 번호판, 아버지가 좋아한 산시로 연못, 찾지 말라는 강요된 약속 등이 전부였다.
도쿄에서 나카무라상을 찾는 격이었다. 우선 시나카와 라는 지역과 그녀의 사진에 찍힌 대문 찾기에 나섰다. 어딘가에 있을 마리를 생각하며 돌아다녔지만 헛수고였다.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봤다. 거기에는 아는 집도 사람도 없었다.
문득 그녀가 흘렸던 대문의 문장이 생각났다. 벚꽃 형상을 한 문장이었다. 벚꽃이 피는 명소를 찾아가듯이 벚꽃 문장이 있는 대문을 찾았다. 나는 벚꽃을 찾았지만 즐길 수가 없었다. 두려움이 가득한 벚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자세하게 본 벚꽃은 처음이었다.
문패가 없어 마리의 집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문틈과 담벼락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산시로 연못을 닮은 곳도 찾지 못했다. 뚫어지게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감시 카메라가 경고하듯이 눈을 맞추며 돌아가라고 하듯이 돌아갔다. 한참 동안 카메라와 눈싸움을 하면서도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불안감을 안고 문 앞에 앉았다. 찾아야 한다는 의욕은 뜨거운 햇빛에 달아올라 목구멍을 태웠다. 이윽고 인기척이 들리면서 육중한 문 모퉁이의 작은 틈으로 신사가 나와 조용히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고 말을 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남성은 어디에선가 봤었다는 느낌이 있었다. 가끔 학교에 와서 그녀를 데리고 갔던 그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퍼즐이 풀리는 것 같은 생각에 급하게
“저기 이치조 마...”
“네? 그런 분은 없습니다.”
그 남자는 틈을 주지 않고 들어가 버렸다. 단호한 말에 다시 뒷걸음질 치기를 하고 말았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집이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그녀와 한 약속이 가슴을 강하게 내리쳤기 때문이다.
이윽고 어정쩡한 상태로 있는 상황에서 대문이 열리고 자동차가 안으로 사라졌다. 홀연히 사라진 그녀처럼 미련 없이 자동차도 사라졌다. 마리 행방 찾기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뒤늦은 자각으로 중지되고 말았다. 차라리 이렇게 만나는 것보다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체념이라는 글자가 나를 지배하면서 그녀가 말한 “그렇지만 반드시 너에게 나타날 것”이라는 말은 희석되어 갔다. 그녀가 없는 일상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무료하게 지나갔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산시로 연못뿐이었다.
생각이 많아질 때 왔던 산시로 연못은 매우 낯설었다. 그러나 행인들을 물끄러미 응시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갔다. 가끔 눈을 감고 있으면, 연못 건너편에 그녀처럼 보이는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눈을 뜨면 여운이 길게 남았다. 그녀를 보기 위해 눈을 감고 허공에 그녀를 그리는 혼돈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세상은 잘만 돌아갔다.
어느 날 산시로 연못에 행복한 순간 의지했던 유난히 빛이 나는 돌부리에 기대어 눈을 감고 선잠에 빠졌다. 그동안 숱하게 보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물속에 익숙한 그림자가 있었다. 분명히 눈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그림자는 잔잔한 물보라에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자신의 그림자를 본 것이었다. 언제나 허깨비처럼 서 있는 자신만이 자신의 그림자를 지켰다. 이렇게 자신이 미워하고 실망한 적이 없었다.
그 순간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툭 쳤다.
“잘 있었어?”
“.....”
너무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마리였다. 그녀는 약간 구겨진 웃음으로 이 상황에 대응했다. 나는 그저 바라만 봤다. 구겨진 웃음이 오히려 이 상황에 잘 어울렸다.
“산시로 연못의 기운이 필요해서...”
“.... 응 나도... 그래서 여기에 온 거야.”
우리의 대화는 상처를 덮으려는 듯이 겉으로 돌고 있었다. 나는 이미 대화를 할 힘이 빠져 멍하니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이전에 갖고 있었던 완전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많은 사연이 있었다는 듯이 그녀의 입속에는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담고 있는 사연을 풀어내려는 듯이 부풀어 올랐다.
“사실은..., 문 앞에 있는 너를 봤어, 시나가와에서...”
“나도 짐작은 했어. 왜 안 나왔어?”
“네가 한 약속이 깨질까 봐. 나왔으면 약속을 어긴 것이 되잖아. 내 덕에 너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거야.”
“그래서 지금 약속을 지키고 있는 거야.”
이 여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안아줘야 할지,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할지, 다시는 놓을 수 없다고 매달려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연못 한가운데 있는 큰 바위 위에 앉으며 “이리 와 앉아, 할 이야기가 있어”라고 했다. 헤어짐이라는 마지막 장을 열고 있다고 직감했다.
‘만남은 서먹한 맛, 인연은 스쳐 가는 맛, 사랑은 비켜 가는 맛, 연인은 이별하는 맛’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약속을 이행하는 순간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없다는 것이 슬프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약속이 없으면 그녀를 놓아주면 됐고, 그녀에 대해서 망설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담아두었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거침이 없는 언변과 자신감이 있는 모습이어서 불안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상처받는 말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아 담지 않기로 했다. 다만 지금까지 그녀의 말을 잘 들어주었듯이 그녀의 말을 잘 들어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용서를 받기 위해서,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서, 우리의 미래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약속을 지켜 약속을 없애고 다시는 약속하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아카몬(赤門) 주식회사, 그리고 국내외무역업과 마케팅업을 하는 아카몬 무역회사, 기업합병을 통해 성장시키는 아카몬 투자사 등으로 구성된 아카몬(赤門)홀딩스의 오너였다.
그중에서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M&A전문회사인 아카몬(赤門) 투자사였다. 이 회사는 미래지향적인 기술을 가졌으면서도 투자자금이 없는 기업을 매수하여 상장회사로 성장시키는 사업을 했다. 그리고 유망한 기업 간 또는 산업 간의 합병을 통해서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사업을 해 왔다.
그와 더불어 아카몬(赤門) 투자사는 사회가 변화하는 가운데 전망이 있는 도시의 재생사업이나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했다. 신도시 개발사업뿐 아니라 도시로 이동하면서 생긴 공동화된 농촌 지역에서 전문경영농장을 개발하는 지역개발사업을 했다.
어머니는 골동품과 미술품 사업에 전념하면서 나름대로 확장했다. 그녀는 어머니의 사업에 종종 관여하면서 그 업계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지식도 풍부하여 사업가로서의 실력을 발휘하곤 했다. 마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업을 이어갈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가 이루진 못한 학업의 꿈과 자신의 의지가 일치하여 도다이 대학원에 진학하여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선생의 제자가 되었고, 그 제미에서 우연히 나와 연결되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아카몬 투자사는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래산업을 선점하기 위해서 합병을 추진했다. 할인 매장 등과 같은 오프라인 판매를 해오는 과정에서 기울어지고 있는 상장사 콘니치(今日) 슈퍼마켓사를 매수하기로 했다. 그와 동시에 전망이 밝을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투자금이 없어 곤궁에 처한 온라인판매 전문업체 아시타(明日) 네트워크를 매수하여 온라인매매나 홈쇼핑사업을 활성화하려는 구상이었다.
아카몬 투자사는 콘니치주식의 33%, 그리고 아시타사의 주식의 30%를 각각 취득하고 합병을 추진하였지만 양사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양사는 아카몬 투자사의 기업매수에 대항하기 위해 자본제휴를 목적으로 하는 제삼자 할당증자용의 신주 발생을 결의했다.
신주발행으로 양사에 대한 아카몬 투자사의 지주 비율이 저하되면서 합병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 아카몬 투자사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기업매수에 대항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현저하게 불공정한 방법에 의한 신주 발생은 정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지법은 ‘신주 발생이 유리(有利) 발생에 해당되고 불공정발행에 해당된다.’고 판결을 하여 아카몬 투자사의 손을 들어줬다. 도쿄지법의 판결로 아카몬 투자사는 양사의 필두 주주(筆頭株主)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법적으로 지위를 확보하여 병합에 들어가려는 찰나에 경쟁사와 관련된 야쿠자 단체 구로이 파(黒い派))가 개입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경쟁 관계에 있는 야쿠자 집단과의 싸움에 휘말리면서 합병하려던 사업이 위기에 빠지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아버지는 경쟁 관계에 있는 구로이 파의 음로로 도쿄지검에 피소를 당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는 심복인 아카몬 투자사의 법률 실장이 이 일을 해결하면서 그를 가업 후계자로 낙점하려고 하였다.
아버지는 가문과 가업을 이를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장래를 위해 결단할 때가 왔다고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장녀인 마리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법률 실장과 결혼할 것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이치조 마리는 아버지의 요구와 가업이 처한 상황에서 선택에 망설이면서도 아버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 나를 보면서 ‘너는 사업을 할 성품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포기했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마리는 아버지와 자신이 바랐던 학업을 중지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하여 결혼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결정된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 아쉬움을 가진 듯했지만 그녀의 성격대로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이제 산시로 연못에서 시작된 만남과 사랑, 그녀와의 약속은 공중 분해되는 상황이 됐다. 산시로가 그랬듯이, 아버지가 그랬듯이, 그녀도 그래야 하는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그녀는 결혼에 앞서 “그렇지만 반드시 너에게 나타날 것”이라는 약속을 마지막으로 지키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그녀는 그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새로운 운명에 대해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 학업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침묵했다.
말이 끝나자 그녀는 “뒤로 돌아!”라고 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는 “잘 지내, 산시로 연못 내 사랑!”그리고 "앞으로 흔들리지 말고 똑바로 가"라고 했다. 이것은 약속도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하는 말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남이 된다.’하더라도 그것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못됐다.
그녀가 눈앞에서 떠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고 놓아주어야 하는 운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가는 길이기에 잡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의 희망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희망대로 따르는 것이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리는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실바람에 실려 왔다가 거역할 수 없는 회오리바람에 실려 다시 돌아갔다. 마리는 그런 존재였다. 나와 그녀가 시작한 산시로 연못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었다. 나는 그녀의 ‘바라기’로 변함없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한 약속을 산시로 연못을 떠난 적도 없고 떠날 수도 없는 돌부리에 살짝 얹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