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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Apr 11. 2024

글을 안 쓰는 즐거움

- 그런데 글이 고인다.

꽃이 피고 잎이 나는 계절이라 그런지 허공만 바라보아도 내 몸이 공중부양할 것처럼 둥싯거린다.

이렇게 들뜬 기운을 가두고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짜낸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처럼 야박한 일.

마침 수요연재도 마감했고 꽃바람에 마음이 숭숭거려서 여기저기 쏘댕기다 보니 글을 잊었다.


쑥을 캤다.

동네 산책을 하면서 매일매일 자라나는 쑥 무더기를 눈여겨 봐 두었다.

저것들이 쓸데없이 대궁을 올리고 꽃을 피우면 동네 공원이 쑥대밭이 될 터인데 걱정이구먼.


작정하고 벙거지모자를 쓰고 얇은 장갑, 튼튼한 종이봉투, 나물 캐기 전용 칼을 챙겨서 오후 4시쯤 쑥 무더기를 찾아갔다. 쭈그려 앉아 무념무상으로 연신 손을 놀리며 쑥을 캤다.

쑥향기, 흙향기 모두 맡으며 두어 시간을 보냈더니 제법 종이봉투가 채워졌다.


캐온 쑥으로 무엇을 할지 잘 모르겠다.

쑥국? 쑥떡?

일단 냉장고에 넣었다.

우리 집 냉장고 채소보관칸에는 며칠 전 캐다놓은 나물도 한보퉁이 들어있다.

나물 캐는 '행위'에 집착하는 편이라 어쨌든 마음만은 매우 흡족했다.




며칠 전 우리 가족이 남매계를 했다.

전남 구례에 있는 지인의 별장에 열댓 명의 가족이 모였다.

남도의 길은 어디나 벚꽃구름으로 터널을 이루고, 우리는 다 같이 눈과 입을 벌리고 "우와---"라고 연신 외쳤다. 지리산의 봄, 깊은 계곡의 풍광을 말이나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하늘과 바람과 산봉우리에 홀려서 바라볼수록 눈이 부실 뿐.


우리 가족들은 제각각 편한 자세로 눕거나, 먹거나, 산책을 하거나, 채집을 했다.

나는 언니들과 나물을 캐러 나섰다. 나물 패티쉬(?)를 가진 나는 제법 나물지식을 갖춘 편이다.

그래서 언니들도 내 말을 믿고 나물을 채취했다.   


"이런 것도 먹냐?"

"그것은 쑥부쟁이, 머위, 멜라초, 삼잎국화, 개미취......"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 뜯어온 나물을 얼른 삶아서 무쳐냈더니 맛나다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가족들.

내일 캐러 가자고 오래된 우리 언니들이 눈을 반짝거린다.

쑥을 뜯어서 쑥전을 부치고, 묵은 김치를 쫑쫑 썰어 넣고 쑥국을 끓이고, 온통 지리산자락의 산나물로 몸보신을 한 듯 우리 가족들의 기운이 한결 맑아졌다.


우리 부모님은 일곱 남매를 두셨다.

지금, 우리 부모님의 자손은 오십 명이 넘는 가족을 이루었다.

부모님은 장수를 못 누리고 떠나셨지만, 불어난 자손들이 지금도 자손을 불리고 있다.


우리 큰언니가 칠십 대 중반이 되었으니 칠 남매는 더욱 애틋하고 우애가 깊어진다.

모두들 건강한 모습에 감사하고 어떻게 재밌게 지낼까 연구 중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동네에 우리들의 놀이터를 만들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구례에서 얻어온 지리산의 기운으로 우리 가족 공동의 숙제를 곧 풀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작년, 너무 이른 봄 언니들과 나물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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