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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수분 Jun 21. 2024

cctv로 도둑 훔쳐보기

안 보는 게 나을 뻔

우리 빌라에 몇 주 전에 좀도둑이 다녀갔다.

내겐 소중하고 남에겐 소소한 것을 털렸다.

헛심 삼아 우리 집 사방에 설치된 cctv를 돌려보기로 했다.


대략 시간을 특정한 시점부터 들여다보았다.

핸드폰에 앱을 깔아 두었기 때문에 편안한 자세로 보았다.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듯 매끄러운 영상이 아니고 뚝뚝 끊어지는 데다,  

네 대의 카메라를 연결 지으며 눈동자를 민첩하게 굴려야, 등장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따라갈 수 있다.

안 보고 싶은 것도 다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 집 세입자들의 사생활에 관한 것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기 먼 골목에서부터 중년의 커플이 손을 잡고 마실 가듯 천진하게 걸어온다.

한 사람이 한쪽씩 골목 양쪽의 집집마다 안쪽까지 샅샅이 두리번거리며 걸어온다.


우리 집을 지나치려다,

여자가 남자손을 놓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안쪽 화분 무더기를 향해 걷는다.

한 손으로 연신 입을 가리고 조금 쭈뼛거리면서.


한번 둘러보더니 별게 없는지 돌아서다가 다시 기둥뒤쪽을 눈으로 뒤진다.

거기에 내가 숨겨둔 자잘한 토분들이 쌓여 있는데......

플라스틱, 사기화분들을 치워두고 토분만 골라 안고 우리 집을 빠져나갔다.


잠깐 약이 올랐지만 바로 웃음이 나왔다.

도둑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괜찮았다.

저들도 알면서 도둑질을 하는 걸까?

cctv가 다 보고 있다는 걸?


며칠 뒤, 단골 미용실에 파마를 하러 갔다.

원장님 딸이 네일 숍을 하는데, 엄마의 미용실에 와서 우리랑 수다를 하는 중이었다.

"엄마, 정말 웃기는 손님이 왔었어. 자기 친구 직업이 도둑인데 요즘엔 cctv가 너무 많아서 그 일도 못한데. 큭, 자기도 그 말하고는 찔끔하더라고. 어떻게 직업이 도둑일 수가 있어? 당근에 판다는 가 봐."


미용실 손님들이 하나, 둘 수다에 동참했다.

"아끼던 꽃화분이 사라져서 cctv를 돌려봤더니 지인이더라. 그냥 모른 척했다."

"난 꽃집을 하는데, 크고 비싼 화분을 도둑맞아서 cctv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잡고 보니 공무원이었고 억수같이 비가 오는 날, 그 여자공무원 대신 남편이 찾아와서 땅바닥에 무릎 꿇고 빌더라."

"너무 예쁜 꽃화분을 화단에 두었는데 없어졌다. cctv를 보고 경찰이 범인을 찾았다. 중년 남자였다. 꽃이 너무 예뻐서 훔쳤는데 자기도 또 도둑을 맞았다더라."


그 사연들을 듣다 보니 쓴웃음이 났다.

요즘엔 cctv나 차량 블랙박스가 있어서 맘만 먹으면 범인을 찾을 수가 있다.

그런데 찾았다 해도 그게 뭐 뾰족한 수도 없다.

당근에 올라온 화분들을 보며, 갸우뚱거리는 부작용만 생겼네.


난 우리 집 화분 도둑을 찾는 대신 화단 옆 기둥에

"CCTV 촬영중" 경고문을 붙여 놓았다.

직업 도둑님!

제발 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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