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수분 Nov 24. 2024

큰 나무 아래로 소풍 가자

달래야! 오빠 왔다, 엄마도.

지난 주말에 아들이 다녀갔다.

황금 같은 계절을 소풍 한 번 못 가보고 보내버리면 너무 아쉬우니까 토요일 아침 후다닥 도시락을 준비했다.


아들이 워낙 소풍 가서 밥 먹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혼자 있는 엄마에게 바람도 쐬어줄 겸 말을 내놓는 것 같았다.


장소는 망설일 것 없이 작년 봄에 세상을 떠난 우리 강아지 달래가 잠든 곳.

운암저수지 끝자락, 호젓해서 아무도 오지 않는, 큰 소나무가 있는 소공원이다.

지난 늦여름에도 찾아갔다가 칡넝쿨이 성해서 물가로는 내려가보지 못하고 돌아왔었는데,

이번에 갔더니 말끔하게 정리가 돼서 기분이 좋았다.


가을이 깊어 호숫가의 풍경도 한없이 아늑하고 평화로웠다.

하늘과 호수가 분간할 수 없이 한 가지 색깔로 푸르고 바람도 한 점 없이 고요했다.


훈이가 땅콩과 잔멸치를 한 줌 들고 소나무 밑으로 내려갔다.

"달래야! 오빠 왔다."

그러고 나무아래에 흩뿌려준다.

이따가 우리가 떠나고 나면 이곳을 지나치는 작은 동물들의 간식거리가 되겠지.


난 조금 더 몸을 숙이고 소나무 뿌리 쪽을 훑어보았다.

"아이구! 반가워라."

구절초 한 무더기가 하얗게 피어있다.

땅바닥도 살폈다.

아주가 화초, 보랏잎이 몇 뿌리 땅에 납작 박혀있다.

범부채, 뾰족 잎들도 우듬지를 뜯긴 채 짱짱하게 서있다.

작년 초겨울 눈밭에 뿌리만 심어두었던 것들이 살아있었던 것이다.


물 주러 한 번 못 가고 거의 잊고 있었는데 고맙기도 하지.

훈이하고 요리조리 사진을 찍고 나서 도시락을 펼쳤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햇볕도 알맞고 바람도 없는 공원 잔디밭에 은빛 돗자리를 깔고.


김치, 나물, 상추, 쑥갓, 고기, 맥주......

멀리 가까이 자연을 두르고, 달래와의 추억을 덕담하며 고기쌈을 크게 싸서 맛나게 먹었다.


달래 안녕!

추운 날 이사 와서 자리 잘 잡은 화초들도 안녕!

소나무에게도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

내년에는 여름을 꼭  피해서 오자고 훈이와 약속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얼씨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