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가?
요새 어찌나 글싹이 안 터지는지, 맥없이 심통만 자꾸 터진다.
계절은 뭔가 간질간질 스멀스멀 부풀만도 한 때에,
응달엔 아직도 더러운 얼음덩어리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년 이맘때 썼던 글을 찾아보았다.
땅속에서부터 봄이 올라온다고 호들갑스럽게도 써 놓았다.
거실 창밖의 풍경은 작년과 똑같다.
그런데도 지금은 아무 계절도 아닌 것만 같고......
어둑 칙칙하니 매력이라고는 일도 없는 풍경이다.
나는 일개 소시민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책을 읽고 몇 가지 취미클럽에 가고 산책을 하고 뉴스를 본다.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들을 접하고 나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순간 호흡이 멎는다.
비행기 사고가 그랬고, 어린이를 죽게 한 선생의 만행이 그랬고, 계엄포고가 그랬다.
안 끝난다.
연일 호흡곤란이 계속되면 제 명대로 살겠는가.
조지오웰의 <1984>에 '이중사고'라는 단어가 나온다. 실체도 모르는 독재자의 지배하에 피지배자들은 이중사고를 당해야만 한다.
기억을 왜곡하고 날조하고, 왜곡을 잊어야 하고 날조를 믿어야 하고, 결국 거짓이 진실이 된다.
모든 의문은 잊어버려야 한다.
궁금한 것은 모두 없던 일이 된다.
<1984>에서 '영사'라고 부르는 독재 집행부의 슬로건은 이렇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
언어도단이다. 말의 오염이다. 정신의 분열이다.
뉴스에 나오는 멀쩡하고 번듯하게 생긴 사람들의 입을 본다.
그들이 나와서 말을 하니까.
그들도 자신이 하는 말을 아는가, 모르는가.
<1984>의 저주가 우리들의 공동체를 좀먹지 말라!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에 매달리는가.
인간의 공동체는 어떤 목표를 이루어내는가, 파괴하는가.
인간의 역사와 문명은 이미 반복적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답을 준 것 아닌가?
악인은 아주 드물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을 갈수록 의심하게 된다.
저렇게 멀쩡한 사람들이 왜 저러고 있지?
이젠 일부 시민들조차 좀비병에 걸린 듯 날뛰어댄다.
부조리한 자신을 버릴 수 없나?
아무도 없을 때 진짜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나?
일개 소시민인 나도 소위 '이불킥'을 가끔 한다.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실수, 부끄러움, 후회......
나만 아는 괴로운 과거도 이렇게 고통이 되는데 저 사람들은 어쩌려고 저럴까.
난 내 앞가림만 잘하면 되는데,
세상걱정 다하느라 올봄을 제대로 맞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만 그럴 리가 없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큰 식구들 모두 잘 살아내자.
온화한 봄기운에 씨 뿌리고
햇빛 찬란한 여름에 무장무장 키워내고
추수가을이 되면 마른 들마다 노적가리 수북하다
걱정도 없다, 겨울 추워봐야 등 따시고 배부르다
으흠, 의심병이 돋는데?
혹시 이런 생각들이 나를 일개 소시민으로 만든 거 아녀???
그래도 빈논에서 들려오는 소리 반갑다.
둘둘둘둘 둘둘둘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