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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취, 쓸쓸함

작약 목단에 장미화, 한 떨기도 없는......

by 화수분

지난 6월 6일, 이른 아침 전주를 출발해 남원에 있는 혼불문학관에 다녀왔다.

혼불문학관은 전주출생 작가 최명희(1947~1998, 51세)의 소설 <혼불>의 배경지, 남원시 사매면 노봉리에 2004년에 세워진 문학관이다.


내가 너무 일찍 방문했는지 관리인이 한참 후에야 출근해서 잠시 기다렸다가 문학관 내부를 관람했다.

최명희작가의 얼굴을 보니 젊은 얼굴, 기운이 느껴지는 모습이 반가웠다.

출입구 쪽에 작가의 방을 꾸며 놓았고 아늑한 소품들과 작가의 친필 원고, 친지들에게 쓴 편지도 펼쳐져 있다.

한자를 섞어가며 만년필로 쓴 글씨가 몽글몽글 참 정갈하고 예뻤다.


"혼불"이란 애초에 사전에도 없었던 말로 사람이 죽기 전 그 집에서 공중으로 날아가는 푸른빛을 일컫는 전라도 방언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 1부가 당선되어 처음 세상에 나왔다.

작가는 1980년부터 1996년까지 만 17년 동안 5부 10권의 책을 미완성으로 집필하고 난소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작가는 후속 집필의 열망을 놓지 않고 투병 중에도 자료준비등 노력했으나 병마를 이기지는 못했다.

2011년부터 혼불 문학상이 재정되어 해마다 당선작가를 배출하고 있다.


종이 공예로 소설 속 주요 장면들을 재현해서 전시했는데, 종이인형들의 표정과 몸짓과 색채미가 여간 호사스럽지 않다. 과연 양반집 마당에 열린 잔치라 눈호강도 흐뭇하여라.

소설 속의 정신적 지주 청암부인의 장례마저 근엄하고 기품 있고 출렁이는 듯 고급져 보였다.


<혼불>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매안 이 씨 종가 3대 여인들의 파란의 세월을, 쌀알을 세는 듯 밀도 있게 기록한 대하소설이다.

얼마나 그 기록이 세세한지 주인공 강모와 효원의 혼인식장면은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하여 활자를 읽는 게 아니라 잔치마당에 내가 서 있는 듯 황홀한 기분이 다 든다.


주인공 효원의 시할머니 청암부인은, 쇠락한 양반집으로 흰 족두리 흰 가마를 타고 시집왔다.

신행 다녀간 신랑이 열병으로 죽었지만 혼례를 치렀기에 상복을 입고 그 집안사람이 되어, 양자를 들이고 집안을 세워 장부 못지않은 큰 어른이 되었다.

그것을 지키고 대를 물려 봉건지주의 기틀을 공고히 하려고 전력하였지만 세상은 변하고 자손들은 신학문에 물들고 장부 같은 종부는 노쇠하여 떠났다.


얽히고설킨 사연들이 결말을 맺지 못하고 아쉬움을 품은 채 소설이 끝났다.

아쉽다고는 하지만 결말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지금의 세상을 보면 알지.

영원한 것이 무엇이랴.


크게는 지리산자락, 가까이는 노적봉 아래 번번한 들과 마을과 개울가에, 잇고 잇는 대대손손의 파란의 질곡을 베짜듯이 엮어나간 우리 민족 반상의 일대기가 가엾어서 혀를 차며 읽었던 소설이다.

"우리말의 원형"을 깨알같이 박아 쓴 작가의 고증에 찬사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최작가는 생전에,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새기듯 쓴 글이라고 소회를 밝힌 적이 있단다.

그 상징으로 문학관 한켠에 "새암바위"가 서있다.


문학관은 아랫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이에 자리하고 멀리 산맥의 병풍이 겹을 이룬 명당에 앉아있다.

뜰에는 잔디가 반들반들 가지런하고 디딤돌만 암팡지게 가로세로 열을 지어 박혔다.

난 고개를 돌려가며 꽃밭을 찾았다.

피어있는 꽃이 한 송이도 없다.


소설 속에는 살구꽃의 사연이 얼마나 절절하고 사무쳐서, 장차 파국의 예감이 강실이네 마당 한가득 깔려 있는데......

그뿐인가, 조화로운 온갖 빛깔과 한복에 들인 색감의 표현이 셀 수도 없이 나오는데......

비록 살구꽃의 계절은 넘어갔대도, 목단이나 작약이나 흔한 넝쿨장미라도 담장을 감았으려니 그리며 달려갔던 내 심정이 무색해져 버렸다.


"청와대" 너른 마당같이 가꾼 잔디밭이 나는 정이 안 간다.

어찌 냉정하게도 단발머리 작가의 기념관에 6월의 마당안팎에 꽃 한 송이 없당가.

갑자기 꽃에 갈급한 나는

"이대로 달려 장미가 흐드러진 수목원으로 갈 것이다"하고 뒤돌았다.


아랫동네, 소설 속 매안 이 씨 종가에 들렀다.

고래등 같았을 원뜸의 안채는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안내문구가 서있고 쇠락한 빛의 솟을대문은 잠겼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마당엔 풀이 담장을 넘게 자랐다.

사실, 작가는 삭녕최 씨 집안의 사람이다.

이 소설은 삭녕최 씨 종가의 서사를 기반으로 써 내려간 작품이라고 한다.


청암부인이 오천석 지기 대지주가 되는 과정에서 농사에 물부족을 해결하려고 인력으로 땅을 파서 완성했다는 "청호저수지"가 문학관 주차장 곁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준설을 하는지 중장비들을 동원해 공사가 한창이었다.

포크레인 바가지에 달린 이빨과 거멍굴, 고리배미에 살던 상민들의 손발톱이 오버랩되었다.


가까이에 있는 옛서도역에도 들러 보았다.

그곳에는 젊은 사람들이 연출용 사진을 찍느라고 이리 번쩍 저리 번쩍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오래된 역사(驛舍)와 키 큰 나무들, 잘 가꾸어진 철도가 사진에 참 예쁘게 나올 것 같았다.


***또 하나의 최명희문학관은 전주한옥마을에 있다.

한옥마을 최명희문학관은 운영상의 문제로 예전만큼 관리되지는 못한다는 소식을 들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전북대학교 부근 건지산에는 최명희작가의 묘소가 있고 그 일대가 최명희 문학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난 건지산에 갈 때마다 작가의 산소에 묵념하고 지난봄에는 묘소 앞 상석에 후리지아 꽃을 올려드렸다.

단발머리 소녀 같은 작가의 미소가 까만 돌에 부조로 조각돼 있다.

후리지아 꽃향기를 흠향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뒤돌아 오솔길을 내려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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