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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든 세입자

그가, 꽃밭에 물을 주던 나에게 말했다

by 화수분

"제가 좀 아파서 며칠 입원을 하고 올게요."


그는 내가 이 집을 지을 때부터 오며 가며 언제 준공을 하는지 물었었다.

꼭 이 집에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 아예 자신의 호실을 정해놓고 대기하는 세입자였다.


302호, 제일 구조가 좋은 방에 첫 번째로 이사를 왔던 독신자 아저씨는 3년째 우리 집에서 잘 살고 있다.

건설현장에 다닌다더니 얼마 전엔 배달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내가 집관리를 할 때, 그 아저씨의 오토바이를 보면 '일을 쉬는가' 보다 생각하고

'월세 내는 게 버겁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때때로 302호 세입자는 마치 집주인처럼 무단주차한 차량을 내게 일러주고, 집에 대한 정보를 내게 알려주고 그랬다. 나도 그때그때 감사인사를 전했다.


오늘 아침 302호 아저씨가 배게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꽃밭에 물을 주던 내게 다가와 말을 했다.

"제가 좀 아파서 며칠 입원을 하고 올게요."

내가 걱정스럽게 몸을 돌려 바라보니 아저씨의 누나부부가 뒤따라 병원까지 동행을 하는 모양이다.

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걱정을 내려놓았다.

늘 혼자서 지내는 것 같더니 문제가 생기면 도와줄 형제가 와 준다니 '의지할 데가 있는 분이구나.' 생각했다.


'혼자살이'를 생각해 본다.

아, 혼자 사는 사람은 곁에서 보는 사람에게그냥 염려를 끼치게 되는구나.

누구와 함께 산 다는 것은 보호자가 있는 삶, 타인의 시선에 걱정이 한 자락 따라올 일은 없겠다.


'나의 혼자살이'도 생각해 본다.

자녀들은 멀리 살고 형제들은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 여럿이 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자녀나, 형제들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게 아닐까?


일단, 몸과 맘이 건강하기만 하면 걱정이 없을 것 같다. 응급 시의 문제는 너나없이 닥쳐서야 수습할 문제이니 맨날 걱정한다고 답이 나올 리 없고.

언제쯤, 누군가에게든 잠시라도 신세 지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날이 최대한 멀리서 오기를 바랄 수밖에......


우리 꽃밭에서 봄부터 긴 시간 불 밝혀 준 수국꽃을 가지치기해 줄 때가 됐다.

빛바랜 수국꽃도 나는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년에 탐스런 꽃을 보려면 잘라내야 한다.


요즘 뙤약볕아래선 꽃들도 지치고 잎들도 구멍이 숭숭 뚫리고 볼품이 없다.

찬바람 불면 풀도 싹 뽑고 새 단장 해 줄 테니 버티어 보자, 내 꽃님들!


오늘 아침 혈색 없는 얼굴로 병원에 가던 302호 아저씨 생각이 자꾸 난다.

며칠만 고생하고 돌아와 다시 집주인처럼 씩씩하게 주차장 관리를 해주면 좋겠다.

형편이 넉넉한 지, 하루하루 벌어서 살아가는지, 잘 모르지만 건강은 빨리 회복하시길......

302호, 이번 달 월세는 감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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