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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먹고 싶은 사람?

화단엔 수국꽃이 피었고, 우리는 파티를 했다

by 화수분

장마가 시작되었나 보다.

비 맞은 꽃들이 빛을 내며 반짝거리고 한껏 뽐을 낸 자태가 곱기도 곱다.

내가 가꾸는 작은 화단에는 몇 가지 꽃들이 피어있다.

수국꽃, 향기 나는 낮달맞이꽃, 백합은 부풀어 터질 듯하고, 계속 피고 지는 풍로초, 빨간 제라늄......

얘들을 매일 들여다보면서 손질해 주었더니 이젠 꽃이파리 하나도 식구 같고 정이 간다.


내일모레 친구들을 초대했으니 로컬푸드 매장으로 장을 보러 갔다.

메뉴는, 집밥이니까 크게 어려울 것 없이 척척 카트에 담고 농협카드를 착 꼽고 계산을 마쳤다.

집에 와서 냉장고를 채워 놓고 청소를 했다.

혼자 사는 집에 뭐 그리 치울 것도 없고 처음 오는 손님들도 아니고 치레할 걱정도 없다.


미리 손질할 재료, 잘잘한 조기를 먼저 닦달한다.

꼬리와 지느러미를 잘라내고 소금 간을 더해서 간간한 미니굴비를 만들 참이다.

소쿠리에 가지런히 펴 담고 바람이 잘 치는 뒷베란다에 널었다.

뒤집어 가며 한 이틀 바람 치면 꾸덕하니 굽기도 좋고 발라 먹기도 좋은 짭조름한 밥반찬이 될 거다.




평화가 내려앉은 창 밖의 아침 풍경에 저절로 활짝 웃음을 웃었다.

개망초 하얀 꽃이 비싼 양탄자처럼, 묵은 밭을 뒤덮고 흐드러진다.

벼논, 옥수수밭, 고구마밭, 참깨밭, 소류지......

시야에 들어오는 농지와 야산의 연두색 초록색에, 물색과 하늘색까지 더해진 자연의 조화가 흠잡을 데 없다.


오늘 저녁에 예닐곱 명이 우리 집에서 파티를 할 건데 오전에는 시간이 여유롭다.

책도 보고, 짧은 글도 쓰고, 커피를 마시고...

긴 테이블에 의자를 배열했다.

나를 거울에 비춰보고 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오후에 접어들어 냉장고를 열고 장 봐두었던 식재료를 아일랜드 식탁 위에 쌓았다.

난 일머리가 정연하고 손이 빠르다.

그래서 한 번에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맛에 대한 진실된 평가는 잘 모른다.

누구든 인사성 평가를 하는 바람에 그런 것 같다.


식재료를 껍질 까고, 깎고, 썰고, 찧고, 씻고, 삶고, 양념을 눈에 보이는 곳에 늘어놓고, 가스불을 켜고, 나무 주걱을 놀리고, 집게 가위가 춤추고, 위생장갑을 두세 개 뽑고, 음식 담을 통들을 닦아 두고.

요리는 끝났다.


개인접시, 수저, 집게, 물 잔, 술잔, 밥공기, 국대접, 쟁반, 마른행주, 티슈, 생수.

테이블 세팅도 끝났다.


깨똑깨똑 하더니, 띵동띵동 하더니 모두 모였다.

큭, 와인과 맥주와 소주도 함께 왔다.


아일랜드 식탁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집밥 메뉴는 이랬다.

완두콩밥, 소고기 뭇국, 굴비구이, 돼지고기 김치찜, 시래기 감자 들깨탕, 표고새우 들깨탕, 알배추 사과 물김치, 숙주나물, 잔멸치 땅콩조림, 발사믹 채소과일샐러드.

뷔페식으로 긴 테이블에 차려놓고 개인접시에 덜어 먹기로 했다.

먼저 소맥을 가볍게 말아서 다 같이 치얼스! 했다.

축하할 이유는 각자 달라도 좋다, 치얼스!


늦게 오기로 한 친구가, 내 집밥을 잘 먹는 친구가, 결국은 아쉽게 못 오고 끝났다.

은정! 에구 빨리 컨디션 회복하고 밥 한 번 먹자.

내 나이가 젤 많다.

20년 젊은 친구, 띠동갑도 더 젊은 친구, 여하튼 젊은이들과 어울려 먹고 마신 저녁시간이, 활기가 넘치고 기분 좋았다.


며칠 전 그날을 회상하는 이 시간도 치얼스! 하던 열정의 기운이 감돈다.

각자 인생의 숙제를 묵묵히 수행하느라 분투하는 우리들이여!

밥 잘 먹고, 여럿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서로서로 기대고 몸과 맘 건강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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