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것, 향기도 함께 피었구나!
나는 꽃 가꾸기를 좋아한다.
아마도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과 나무, 크게는 자연을 사랑하고 거기서 행복감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 계절에 맞춰 차례차례 세상을 꾸며놓고 우리와 교감을 나누어 주는 자연 속의 온갖 존재들에게 늘 감사함!
해마다 꽃을 심는 마음은 새봄에 생겨난다.
땅속으로 춘풍이 들락거리고 소복소복 흙이 솟으면, 나도 봄흙처럼 저절로 들썩거린다.
계획 없이 마당 넓은 꽃집으로 구경을 가본다.
벌써 꽃얼굴들이 웃음을 짓고, 줄지어 인연을 부르는 듯 마당에 늘비하다.
내 꽃밭은 손바닥만 한데, 앙증맞은 꽃을 보면 또 데려가고 싶어서 자꾸만 그 곁에서 배회한다.
지난봄에 그렇게 우리 집 꽃밭으로 모셔온 꽃님들은 향기 나는 흰 백합, 보라색 매발톱, 목마가렛, 풍로초였다.
새 꽃들에게 마땅한 제자리를 잡아주고 물을 흠뻑 줘놓고 잠깐 자리를 비운 새,
목마가렛은 뽑혀 나가고 작은 구덩이만 남아 순간 내 속이 찌르르했었지.
어느 미운 손이 또 내게 소중한 것을 훔쳐갔을까?
그 미운 손들은 때때로 내 꽃밭에 가장 예쁜 꽃을 탐내고 납치해 갔다.
흰 꽃 제라늄, 타래붓꽃, 기둥뒤에 감춰 둔 토분들......
꽃도둑은 나보다 더 꽃을 사랑하는 사람일까?
예쁜이들! 도둑네 집에 가서도 잘 살아라.
그래서 이젠 길에서 안 보이는 안쪽으로 새 꽃을 심어준다.
흰 백합뿌리도 지난봄에 안쪽에 심었더니 개화가 늦어 나의 애를 좀 태웠다.
햇볕이 비추는 시간이 짧아서 그랬던가 보다.
지금 한창 흰 백합꽃 여러 송이가 피어서 곁에 가면 고급진 향기가 먼저 아는 체를 해준다.
나도 답례로 흐뭇한 미소를 날려준다.
요새 비가 잦아서 비 맞은 꽃대가 휘엉청 엎어지는 바람에 부리나케 지주대를 세워줬다.
미리 만난 꽃, 수국들은 충분히 낯이 익었고 장미꽃은 벌써 한차례 마른 꽃대를 잘렸고, 잎이 무성해지는 남천이나 단풍나무들도 한 번씩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좁고 긴 화단에 눈 부시게 빛나고 풍성한 내 것들, 혼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흐뭇하고 오진가!
화분 하나든, 손바닥만 한 꽃밭이든, 밭두덕이 펀펀한 텃밭이든, 흙과 잎과 꽃과 교감하는 생활이 끊기지 않기를 나는 소망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신선한 위로가 그들에게서 나에게로 끊임없이 흘러드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