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시간을 무감하게 채워갑니다
커피가 맛있는 청동 북까페에 갔습니다.
청동북까페는 서곡 근린공원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공원에 접한 모롱지 도서관도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고요.
카페와 공원과 도서관은 삼천(三川)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봄꽃이 피면 커피 한잔 들고 이 주변을 서성거리고 싶네요.
오늘이 입춘이니까 기다릴만해요.
청동 북까페에서 필사할 책 두 권을 샀습니다.
백석시인의 <사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책이 예뻐서 샀습니다.
필사를 계획하지는 않았었는데.....
북까페에 책이 많으니까 구경하다가 이 책들이 예뻐서 샀어요.
출판계획하시는 작가님들도 참고하세요.
예쁜 책을 만드세요!
백석의 시어(詩語)들은 시인의 고향, 평안도 방언이 많아 언뜻 이해하기 어려워요.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도 하고 어림짐작해 가면서 읽고 씁니다.
모르는 말은 공부해서 페이지 아래 기록해 두었습니다.
항상 잊어버리니까 써 놓는 게 좋습니다.
저는 시를 읽을 때 몰입하기가 좀 어려워요.
짧은 글을 음미하면서 새기는 것을 잘 못합니다.
시의 단어들이 떠다니고 시집은 금방 끝이 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은 시를 외우는 걸까요?
달아나지 못하게?
저도 한때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외웠습니다.
제 삶이 고요하지 못할 때 위로가 돼 주던 시였어요.
지금은 그 시의 내용은 기억하지만 외우지는 못해요.
길지 않은 시를 다시 적어봅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저처럼 시에 몰입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필사가 좋은 방법이 되네요.
백석시인의 <사슴> 시집을 손글씨로 끝까지 필사하고 나면 뿌듯할 것 같아요.
시인이 사랑한 고향의 언어들을 제 노트에 영원히 새겨 놓은 것처럼.
어린 왕자 책을 세 권째 샀습니다.
다른 책도 예뻐서 또 샀었거든요.
이사 다니면서도 어린 왕자는 꼭 데리고 다닙니다.
북카페에서 고를 땐 몰랐는데 집에 와서 펼쳐보니 그림까지 따라 그리면 좋겠네요.
제 글을 지을 때 하고 다르게 필사는 무념무상으로 할 수 있어요.
게으름 피우다가도 얼른 붙잡을 수 있어요.
창작하는 거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요.
물론 제 글 한편 마쳤을 때가 보람이야 크지만요.
연필 깎아 쓰기 귀찮아서 샤프펜슬을 써 보았습니다.
아니네요.
미끄럽고 각이 안 나와요.
종이와 연필의 마찰음,
약간 긁히는 느낌,
연필심의 각을 찾아 잡는 그립감,
이렇게 깎아 쓰는 연필의 손맛이 따로 있다고 해 두겠습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색연필도 깎아 쓰는 게 좋아요.
짧은 글 쓰고, 간단한 그림 그리고,
어린 왕자의 말투가 귀에 들리는 것 같고 즐거워요.
하루에 몇 페이지씩 연필과 색연필과 지우개를 써서 필사책을 메꿔갑니다.
제가 초등학생 같네요.
제가 등을 구부리고 엎드려서 쓰고 지우고 또 그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저는 할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