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안전산행을 기원하며!
2023년 첫 산행이다.
셋째 주 일요일 가랑비가 안개처럼 부옇게 날리는 새벽에 산악회 버스에 올랐다(06:30).
먼저 온 분들과 눈인사를 하고 히터자리를 피해 앉았다.
28인승 리무진 버스가 휑하니 다른 때보다 인원이 적었다.
날씨도 궂고 아무래도 겨울산행이라 참석률이 저조한가 보다.
지난달에 적설과 한파로 산행을 쉬었기 때문에 인원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다.
오늘은 새해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간단히 올리고 5시간 산행을 할 예정이다.
나는 이 산악회 소속회원은 아니지만 몇 달 전부터 일정을 맞춰 한 달에 한번 동행하고 있다.
회원들이 소박한 제수를 진설하고 경건하게 절을 올리고 서둘러 정리하고 단체사진 한 컷 찍고 산행을 시작했다(09:30). 나는 모든 산사람들의 무사고 산행과 일상의 안녕과 오늘 산행 중에는 눈비가 좀 참아주기를 기도했다.
이 산은 전남 조계산이다.
태고종의 본산 선암사에서 올라 장군봉을 거쳐 송광사로 하산하는 코스가 오늘 일정이다.
같은 코스로 1년 전에 친구들과 다녀갔었다.
그때도 힘이 들었는데 오늘도 역시 다리가 풀려 꼬이고 발가락에 쥐가 날 만큼 고단한 산행이었다.
최고봉 장군봉이 888미터라니 만만한 산은 아니다.
어떤 산이라도 한고비는 다 있다.
봉우리가 200~300미터 되는 낮은 산이라 해도 한바탕씩 허벅지가 뻑뻑하고 심장이 벅차게 뛰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묵묵히 한 걸음씩 딛고 나갈 뿐이다.
함께 오기로 했다가 못 온 친구 태염이 왔더라면 큰 고생을 했을 것이다.
지난번 지리산 피아골 산행 때도 태염은 여간 힘들었다고 다시 못 올 코스라고 고개를 저었으니까.
두 시간 만에 장군봉에 올라 정상 컷을 한 장 찍어 훈이에게 보내고 보리밥집 코스로 하산길을 잡았다.
정상 주변에는 서리꽃, 상고대가 피어 '와~'하고 천진한 사람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가장 순결한 나의 본성을 깨닫고 그 경험이 행복해서 또 자연 속으로 찾아든다.
다시 경제생활자로 돌아가서는, 때 묻은 피복도 입어야 하고 가식의 미소도 자주 지어야 할 망정.
정상에서 잠시 내려와 바람막이가 돼 주는 배바위를 등지고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12:00).
금세 체온이 떨어지고 손이 시려 서둘러 자리를 걷고 단단히 무장을 한 다음 내리막 길을 또 걷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미끄러질까 봐 발 끝에 힘을 주고 내려오다 보니 작년 산행 중에 맛나게 점심을 먹었던 보리밥집이 나왔다.
'작년 더운 날에는 막걸리가 시원하니 참 좋았었는데' 하고 입맛만 다시다, 송광사 방향을 향해 지나쳐 갔다.
또 한차례 봉우리를 넘고, 무릎이 싫다 싫다 신호를 보내는데도 겨우 달래 가며 걷다가, 아이쿠! 개 짖는 소리가 이리 반가울까? 곧 송광사에 도착했다(14:40).
꼬박 5시간 산행을 채우고 잠깐 절마당을 배회하다 터벅거리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버스에 올라 노곤한 몸을 부려놓고 후미팀을 한참 기다렸다.
컨디션 난조로 늦는 회원이 있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부상 없이 모두 하산했다.
돌아오는 길에 남원에서 추어탕으로 저녁을 먹고 전주에 도착했다(18:00).
군데군데 하차하며 인사를 나누는 산꾼들의 하루가 뿌듯하게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