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방 정리를 했다.
모처럼만에 오른 기온에 들떴던 탓일까?
오랜만에 창문을 열었다,
멈춰있던 대기가 갑자기 분 바람에 놀란 듯 쌓여있던 먼지들이 궤적을 남기며 날린다.
그러자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겨울이 되고서 미뤄두었던 정리를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나면서, 겨울 날씨에 맞게 필요한 것들도 챙길 겸 해서 겸사겸사 시작한 방 정리.
정리를 하면서 리스트를 작성했다. 책, 문구, 옷, 화장품, 다른 일반 사물들을 분류해서 작성하다 보니 지금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많이 읽고, 어떤 물건들을 샀고, 또 어떤 것들은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고, 구입하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도 있음을 눈으로 보고 실감하게 되었다.
방 정리가 끝나고 한 가지 목표가 생겨났다.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게 된 만큼,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현명하게 구매하고, 내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겠다고 다짐을 한 것이다.
이번 결심은 부디 작심 3일의 법칙이 나를 비껴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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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따뜻한 겨울햇살이 내 공간을 비친다.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조금은 가볍게 옷을 입고 나선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오늘따라 가게들이 내 눈을 더 붙잡는 것인지.
'이건 없는데',
'아! 새로 나온 건가?',
'이건 금방 쓸 거 같으니 미리 사야겠다'
어제의 그 수고가 결과적으로 나에게 없는 것을 더 정확히 알게 해 버렸다.
그렇게 나의 결심은 '무엇이 없지?'로 초점이 바뀌어버렸다.
부족함은 채움으로서 만족시킬 수 있고, 넘치거나 많은 것은 비움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계속해서 채우다 보면 비워야 하고 비우다 보면 채워야 한다. 결국 둘 사이의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어렵다.
내 삶으로 들어온 그 순간부터 나름 각각의 의미를 가지게 되고, 내가 그 의미에 집중할수록 그것들은 비워내기가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을,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내 주위에 비움의 자리를 두는 것, 비움으로 채우는 것이다.
모든 것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듯, 나와 사물들, 사물과 사물들 사이에도 공간이 필요하다. 단지 내가 샀다는 이유로, 혹은 내가 부여한 의미 때문에 서랍의 한 구석을 차지하거나, 처음 놓인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옮지 못한 일이다. 각각의 물건들은 각각의 용도와 역할을 가지고 있다. 그 물건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의미부여가 아닐까 생각한다.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것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