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쓰는 일

by 글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일어난다. 흔들림 같은 움직임일 수도 있고, 밀려드는 파동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볼 수 없고, 어떠한 형태도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외부로 드러나도록 쏟아내는 것이다.

글자를 쓰고 쓰고 또 쓰다 보면 비로소 존재성을 가진 형태가 된다. 그렇게 글이 탄생한다.

어느 날 눈을 뜨면서 문득 든 생각.

거리 풍경이 눈에 가득 들어온 날의 평소와 다른 감성.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네는 표정과 말.

기억하고 싶은 순간.

잊고 싶지 않은 감정

그 많은 삶의 시간들이 글이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글짓기상을 곧잘 받았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글을 잘 쓴다고 여기며 자랐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 글쓰기는 독후감이나 주제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실제로 개인적인 글을 쓰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더불어 점점 나의 세상이 확장되어 가면서, 지나가버리는 순간들, 흩어져 버리는 생각과 감정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그 날짜의 일기를 채우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하루를 되돌아봐야 했기에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봐야만 한다. 그렇게 쌓여가는 일기장의 수만큼이나 늘어나는 것이 또 있었다. 내 삶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

물론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적인 것들이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일부분일 뿐,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삶의 모습을 좌우하는 내면의 모습이다.

더 인생을 살다 보면 바뀔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내면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방법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첫 문장을 쓰기까지는 어려울 수 있지만, 처음 문장이 드러나면 그다음부터는 조금 쉽게 문장을 쓸 수 있다. 연결된 실의 한 부분만 찾아내면 실을 당길 수 있는 것처럼, 감정이나 생각의 한 부분을 찾아내면 연결된 감정과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은 쓰면 쓸수록 실력이 좋아진다고 말한다.

또 하나 다른 사람에게 읽힐 때, 즉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쓸 때, 글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나는 브런치에 연재를 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첫 글을 발행했을 때의 떨림을 기억한다.


일기 속 이야기만이 아닌, 이야기 자체가 가진 힘을 믿는 순간이었다.


나의 이야기가 내 손을 떠나, 누군가에게 닿아 문장으로 이어지는 친밀감이 생기는 경험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반대로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글이 나에게도 그렇게 친밀하게 다가온다.



글이 모여 있는 공간. 그 공간 속에서 나는 새삼 깨닫는다.

우리 삶의 모습이 각기 다르듯, 글의 모습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안에서 자신의 삶의 모습을 잘 가꾸어나가는 수많은 아름다운 사람을 발견한다.


나는 미니멀리즘까지는 아니지만, 많은 물건이 없는 삶을 꿈꾼다. 효율적이면서, 내 정체성을 잘 나타내주는 사물들로 꾸려진 공간을 꿈꾼다.


나의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많은 미사여구도, 지나친 형용사나 부사의 덧댐도 없이 담백하고 간결하며, 본질이 잘 드러나는 글.


그리고 계속 글을 쓰면서 완성되어 갈 나의 내면의 최종 모습은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나를 잘 표현한 한 문장이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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