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모님은 단추를 다는 봉제공장을 운영하셨다.
공장 일에 매진하셔야 했기에, 나와 동생은 주로 할머니 손에 자랐다.
일주일에 한 번, 엄마 아빠가 할머니 댁에 들르셨다.
빵 봉지와 양념치킨을 한 아름 안고 말이다.
가끔은 일이 바빠, 나와 동생을 공장에 데려가시기도 했다.
우린 옷 더미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거나,
일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옷을 정리하며 놀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좁고 덥고, 먼지구덩이에 기계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리던 그 공간이
오히려 나에겐 행복이었다.
엄마 아빠가 함께 놀아주진 않았지만,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따뜻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옷에 대한 애정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패션학과를 선택했고,
그곳에서 만난 첫 남자친구가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의류를 배우고, 만지고, 일하게 된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래서 그땐 몰랐다.
그 길의 끝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픈 장면이 될 줄은.
백화점 브랜드가 아닌 옷들은 주로 동대문에서 거래되었다.
온라인 쇼핑이 없던 시절,
막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우리도 그 흐름 속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잘 되는 줄 알았다. 아니, 정말 잘 됐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젊어서 큰돈을 만지는 건 독이다.”
하지만 그땐 그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만 들렸다.
가게 문만 열면 돈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6개월에 집 한 채씩 생길 정도였고,
돈이 돈을 버는 상황이 이어졌다.
탄탄대로, 꽃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쓸 돈을 다 쓰고도 한 달에 몇 천만 원씩 저축했다.
돈이 많이 벌린다고 해서 흥청망청 쓰진 않았다.
아니, 쓸 시간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 번 돈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돈이 흩어지자,
함께했던 사람과의 사이에도 흩어짐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젊음은 많은 걸 주기도 했지만
결국 가장 소중한 것도 잃게 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내 삶을 돌아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