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하게 된 게 아니라, 잘 살아야 했기 때문에 선택한 일.”
그 말은 내 삶 그 자체였다.
웹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시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고민이 있었다.
내가 다루는 디자인 툴을 나보다 능숙하게 다룰줄만 안다면, 내 자리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으로도, 아니면 프로그램으로도 대체 가능한 위치였다.
그땐 AI라는 말이 낯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불안은 선견지명 같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사람의 손길만으로 가능하고, 한 사람만의 감각이 필요한 일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찾은 것이 헤어디자이너라는 길이었다.
당시 '염색방'이라는, 염색만을 전문으로 하는 샵이 트렌드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속으론 “나도 나이 들면 저런 거 하나 차리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쉽게 보인다고 쉬운 건 아니란 걸, 나는 이미 삶을 통해 배웠다.
곧바로 학원을 알아보았다.
회사를 마치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곳, 내게 허락된 유일한 시간은 퇴근 후 밤 시간뿐이었다.
그렇게 하루 일과가 회사, 학원, 집으로 이어졌다.
6시에 퇴근하면 7시에 수업이 시작되고, 수업이 끝나면 밤 10시가 넘었다.
매일이 반복이었다.
웹디자이너를 도전한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몇 년을 그렇게 살았다.
지금 돌아보면 나도 가끔은 묻는다.
“어떻게 그리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유는 분명했다.
“아이 둘을 무사히 키울 수 있는 길이라면, 못할 일이 없었다.”
그땐 두려움도, 망설임도 사치였다.
앞만 보고 달렸다.
뒤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무기는 성실함과 체력뿐이었다.
매일 연습했다.
회사에서 퇴근한 뒤에는 학원으로, 주말이면 하루 종일 연습에 매달렸다.
아이들을 방치할 순 없었기에, 미용 연습가발과 가위, 도구들까지 한가득 싸들고 친정으로 향했다.
친정 엄마가 밥을 해주셨고, 아이들은 친정아빠와 퍼즐을 맞추거나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계속 연습했다.
목표한 연습량을 채울때까지 앉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하루는 아빠가 말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하다가는 쓰러지겠다. 우리도 도와줄 수 있으니, 조금은 쉬어가면서 해.”
아빠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은 연습용 가발에서 떼지 않았다.
“목표는 6개월.”
그 목표를 이루고 싶었다.
시간이 걸려도 포기하기 않을 자신은 있었다.
그리고 결국 정확히 6개월 뒤
미용사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