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내가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급식 도우미에서 헤어 디자이너까지 10년. 누구보다 다양하고 독특한 직업을 넘나들며 살아온 사람.”
공저로 참여한 책에 실렸던 내 작가 소개 글이다.
그중 ‘급식 도우미’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잊고 지냈던 기억 하나가, 아련한 바람처럼 다시 불어온다.
큰아이가 다섯 살 무렵,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오빠가 가니, 자연스럽게 작은아이도 어린이집에 보내게 됐다.
아이들이 집을 비운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소소하게 용돈이나 벌까 싶어,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그때 눈에 띈 것이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모교에서의 ‘급식 도우미’ 모집 공고였다.
마침 시간도 딱 맞았고, 밖에 나가 콧바람 쐬는 게 좋았던 나는
주저 없이 지원했다.
그 시절, 의류 사업이 잘 되던 때였다.
큰돈을 벌고 있었고, 일이 아니라 바람 쐬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서나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든 법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주방에서 일하시던 이모님들은 나이가 지긋하셨고
억새기도, 솔직히 텃세도 좀 있으셨다.
나도 젊었지만, 동대문 시장에서 한가닥 하며 옷 장사를 했었기 그까짓 텃세는 무섭지 않았다.
어지간한 텃세쯤은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님들이 쉬는 시간에 바닥에 누워 옥수수를 물고 계셨다.
그중 한 분이 내게 말했다.
“막내는 화장실 청소도 하는 거야.”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그깟 게 뭐라고.
웃으며 변기솔을 들었다.
옥수수를 씹으며 이어지는 자식 자랑.
누구는 아들이 공무원이래, 누구는 딸이 대기업 다닌대.
나는 변기를 닦으며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저 나이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자식도 잘 키웠지만, 내 이름 석 자로 당당히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 다짐은 마음속 깊이 남았고,
그 후로도 잊지 않고 살아왔다.
참 열심히 살아왔다.
때로는 울면서도 걸어야 했고,
뒤돌아보면 늘 앞으로 가야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걸어온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또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내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