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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그림이 슬며시 나를 안아줄 때

by 나무

무엇이 이 여인을 힘들게 했을까?
붉은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은 채, 손끝에 매달린 체리를 바라보는 그녀.
체리를 입에 넣을 힘조차 잃은 걸까?



화려한 초록 드레스를 입고도

소파 위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삶의 고단 함이었을까?

그림을 바라보며 나에게도 묻는다.
지금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건 무엇일까?

체리를 든 여인.PNG Alfred Emile stevens_ Woman with Cherries



사랑하는 사람과 그림처럼 한적한 숲길을 걸으며,

자연과 함께 노닥노닥 살아간다면

내 마음의 무게도 조금은 가벼워질까?


모네에서.PNG Jozef Israëls








살면서 종종 그림을 보러 다니지만,

이번 전시는 유독 다르다.

그림이 먼저 다가와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강가옆창가.PNG Henri Le Sidaner_window On The River/ 앙리 르 시다네르 '강 옆 창가'




작은 점들이 모여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듯,

작은 힘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든다.



향긋한 차 한잔을 준비해서 식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멍 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붓을 들었을까?

햇빛이 비치는 물가가 아름다워 라일락의 향기처럼 표현하고 싶었을까?


풍경 속에 숨어 있는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창밖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바람만큼은
너무나도 매혹적이었으리라.



살다 보면 누구나 무성한 풀숲을 헤치며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

가끔은 길을 잃고, 가끔은 발걸음이 무겁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앉아서 엉엉 울면 조금은 괜찮아질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길을 알려주었냐”라고 소리치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질까?


아니면 스님이 염불을 외우듯,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걸까?

답을 찾지 못한 채 멍하니 그림 앞에 서 있을 때,
그림이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인다.

'힘들 땐 잠시 쉬어 가렴.
잠시라도 숨을 고르고 힘을 비축해서 다시 가야지?
여태 잘 해왔으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마음속 검은 그림자들이 서서히 걷혀가고 있었다.
그림들이 한 줄기 빛이 되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밝혀주는 중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따뜻함을 느껴본다.
슬그머니 감싸 안아 주어서 고맙다.

그림은 그렇게 조용히 다가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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