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를 만난다는 것. 그것만큼 가슴 떨리는 일이 있을까? 나에게도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일기를 쓰듯 편지를 쓰고, 그 친구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 하지만 친구라는 것. 우정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친구 그 자체를 사랑하고 좋아했다면 좋았을 것을. 친구의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지 않다면 우정을 나눈다는 건 가식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사춘기에 접어든 내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우정을 나눈다. 여자 아이들처럼 예민하고 민감하지 않은 남자아이들의 우정은 그래서 조금은 더 편안하다. 뭐든 둥글둥글한 큰 아이는 그 나름의 우정을 이어가고 조금은 예민하고 각이 진 작은 아이는 그에 맞는 친구들을 사귀니 그나마 다행이다. 한참 예민하고 저돌적인 사춘기 아이들. 친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만나는 다양한 아이들. 그 아이들은 훗날 아이들의 인생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결코 두껍지 않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 작가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하며 두 소년을 상상했다. 만약 내가 유대인 소년 한스였다면, 한스의 친구 독일 귀족 콘라딘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이의 머릿속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고 하지? 사춘기의 아이들에게는? 하지만 그 어떤 가치관도 완성되지 않았을 그 시절의 아이들. 그 어떤 선택도 손가락질받아선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유대인 의사 아들 한스는 전학 온 독일 귀족 학생 콘라딘 폰 호엔펠스에게 끌린다. 처음은 서먹한 악수로 시작했지만 이후 둘은 우정을 키워나간다. 오래된 동전이나 장식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한스는 자신의 집으로 콘라딘을 초대하고 친구에게 ‘백작님’이라 부르며 깍듯한 아버지를 보며 모멸감을 느끼지만 콘라딘이 자주 집에 찾아오면서 그런 현상은 사라진다. 그러나 콘라딘은 한스를 집으로 초대하길 꺼리고, 자신의 부모가 없을 때만 집으로 초대한다. 이후 한스는 오페라를 보러 갔다 콘라딘과 마주하지만 콘라든은 한스를 못 본 척 무시한다. 이 일로 두 사람은 다투게 되고 콘라딘의 어머니가 유대인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간이 흘러 거리엔 유대인을 비난하는 포스터와 나치의 표식이 늘어난다. 학교에서도 점점 유대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한스의 부모는 한스를 미국으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이후 30년의 시간이 흐르고 한스는 변호사가 되어 성공한다. 평소 독일에 대해 잊으려는 그는 뜻밖의 방식으로 콘라딘과 만나게 되는데...
사상이나 체제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대단한 것이었을까?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원수가 되는 것. 어른들이 가르치지 않았어도 누구보다 빨리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것. 전쟁에 나가 총과 칼로 싸우는 것도 무섭지만 오늘의 이웃이 내일의 감시자가 되는 것도 무서운 일이다. 나는 유럽인이 아니기에 유럽 내에서 유대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매해 유럽을 다녀온 큰 아이의 말에 의하면 평등할 것 같으면서 은근한, 그 미묘한 심리적 갈등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가장 예민하고 혼돈에 빠진 아이들에게 진정한 우정은 존재하는 것인지, 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자란다면 분명 한스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오늘의 분위기가 내일과 달랐을 테니까.
사춘기 아이들이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조금씩 반항하고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가는 것 때문 아닐까? 어떤 선택을 할 때 부모님의 영향도 크지만 친구의 영향도 상당하다는 사실. 어떻게 우정을 키워나가느냐가 그래서 중요하지 않을까? 만약 내가 한스라면, 그리고 콘라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움직였을지 상상한다. 그리고 이 부분만큼은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정의 의미가 무엇이고 우정은 사춘기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길지 않지만 강한 한방이 있는 책. 좋은 책을 만나는 건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