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어른이 되는 것도 축복이다.

'내일은 내일에게' 김선영 작가의 책을 읽고

by 꿈에 날개를 달자

철딱서니 없기가 하늘을 찌르는 우리 집 작은 녀석. 가끔 그 녀석에게 장난처럼 이야기한다. ‘넌 언제 철들거니? 엄마는 네가 철드는 게 소원이다.’ 그럼 작은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답한다. ‘엄마 철들면 죽어요.’ 고로 아직은 철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나? 그래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른스러운 아이가 좋을까? 아님 아이다운 아이가 좋을까?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선 어른스러운 아이가 키우기 좋겠지만 뒷 목 여러 번 잡게 하는 우리 집 작은 녀석 같은 아이도 있어야 세상은 재미나지 않을까?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는 아이다운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아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어른스러운 인성을 갖춘다면 모를까 주변 상황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드는 것은 슬픈 일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당연히 사랑받고 자라야 한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부모를 피해 맨발로 도망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의붓어머니에 의해 여행 가방에서 숨지는 아이가 발생하는 세상이니까. 그 아이들에게 집은 사랑과 행복, 그리고 편안함이 아닌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부모이고 아이에게 어떤 부모로 보이는지.


고1 연두에게 아버지는 같고, 엄마는 다른 동생 보라가 있다. 이런 연두가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보라의 엄마. 즉 연두의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했고 이후 돌아가셨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맡겨졌고, 보라와 보라 엄마가 같이 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보라 엄마와 살고 있다. 연두는 새엄마인 보라 엄마가 자신을 떠날까 내심 불안하다. 새엄마가 때려도 늘 참던 연두가 어느 날 보라를 혼내는 엄마에게 대들고 이후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저지대와 고지대로 나뉘어 모든 것이 차별화되고 있는 동네. 허름한 이 동네에 카페 이상이 오픈한다. 이곳에서 연두는 불량 커피 생두를 골라내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난다. 연두와 유겸이는 자신의 반에서 한 개의 섬과 같다. 휴대폰이 없고 아이들 곁에 갈 수 없는 겉도는 존재. 우연히 카페 이상의 우체통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둘은 마음을 나누게 된다. 유겸이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어 고립된 섬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일까? 또한 카페에 찾아온 해외 입양아 마농의 사연과 동생 보라에게 찾아온 아픔. 그리고 혼자 남게 된 연두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스무 살이 되기 전 몸에 있는 눈물을 모두 말려버리는 것이 꿈인 연두. 그게 가능할까? 얼마나 슬픈 일이 많았으면 그게 꿈이 되었을지, 연두의 입장에서 연두를 생각하게 한다. 작은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나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뭐 이런 이상한 녀석이 나를 통해 태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아이가 곁에 오는 것도 싫었다. 아마 그때 나는 이 녀석이 하자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게 내가 이런 하자 있는 아이를 낳았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심리적 저항이 컸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아이를 그나마 이해하려 노력했던 건 이 철딱서니 없는 녀석이 말한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고, 머리에서 매일 폭죽이 터지는 것 같다는 말. 그 말을 듣고 나는 어른이 되려 온몸이, 온 생각이, 온 기관들이 난리부르스를 치고 있는 아이의 몸을 생각했다. 그나마 그런 이야기를 엄마인 나에게 할 수 있었다는 것, 매일 슬픔으로 물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 2학년. 여전히 철딱서니 없는 세상이 점점 힘들어진다고 말하는 아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웃을 줄도 아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공평하게 사랑받고 자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왜 세상은 태어남에도, 자람에도, 환경에도 공평할 수 없는 건지. 이제 고 1인 연두라는 아이에게 드리운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읽는 내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도 확연히 드러나는 신분의 차(?)가 있다. 어느 지역에 살고 부모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따라 출발점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열심히 오늘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연두를 보면 애잔하다. 그리고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말을 더럽게도 안 듣는 아이의 대갈통(?)을 주먹으로 치고 싶지만, 연두 같은 아이를 생각하며 참기도 한다. ^^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두려움은 갖지 않기로 하자. 어젯밤 생각의 생각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두려움에 지칠 무렵, 겨우 내린 결론이었다. 지레 겁먹고 졸지 말자고 다짐하며 다잡는 중이다. (189)

내 미래를 기대해주는 누군가 있다는 것. 세찬 비바람을 맞고 있을 때 등 뒤에 따뜻한 모포 한 장이 날아와 감싸주는 기분이었다. 내가 뭐라고, 나 따위가 무엇이라고. (214~215)

연두 혼자 이겨내기엔 세상이 너무 차갑고 무섭지만 그래도 곁에 이런 사람들이 있어 줘서 고맙다. 연두가 내 아이 혹은 내 아이의 친구 같다고 생각되면 조금이라도 따스한 시선을 보내 줄 수 있을까?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 다양한 연두 같은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미래를 생각하고 기댈 수 있게 따스한 말 한마디 해줄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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