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김해진 소설을 추천해주고 싶다
3자의 이야기에는 한 없이 너그러워질 수 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 대한 고민을 할 때 ‘공부 말고 다른 재능이 있을 거야. 그러니 기다려줘’, 유난히 독특한 아이에 대해서는 ‘개성이 강한 모양이네, 나중에 크게 될 거야.’ 이런 식의 말을. 하지만 그게 내 아이가 되면 달라지는 게 사람이다. 나에게도 그런 아이가 있다. 큰 아이와는 너무도 달라 유난히 버거운 아이. 누구보다 얌전하게 생겼고, 누구보다 착하게 생겼다. 어른들 앞에선 예의 바르게 인사도 잘하고 말도 잘 듣지만 집에 오면 그 모든 가면을 벗어던진다. 유난히 나와 합이 맞지 않아서 나와는 유독 힘든지 모르겠다. 그 아이도 나도. 이런 고민들을 아는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면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런 아이가 나중에 효도 많이 해... 글쎄. 난 효도 안 해도 좋으니 지금 편안하게 지내고 싶지만..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 참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자식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고민을 낳고 아픔을 낳는 것 같다. 아직은 성장하고 있는 이 아이에게 어느 날 남들과 다른 성 정체성에 고민이 온다면... 나는 또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받아들이게 될까?
무남독녀 외동딸을 둔 엄마인 ‘나’. 딸아이가 살던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처하자, 나는 딸에게 집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한다. 딸은 자신의 동성 연인과 함께 엄마가 살고 있는 집으로 들어온다. 딸의 연인인 여자아이를 바라보는 나는 괴롭고 힘들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저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쟁을 치른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동성애 문제로 대학에서 해고된 동료들을 위해 시위에 나선다. 누구보다 많이 배우고 똑똑한 딸은 왜 거리에서 시위하며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일까? 그렇게 사는 딸을 인정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나는 분노와 미움을 딸의 연인에게 토한다. 나는 노인요양병원 요양 보호사로 치매환자를 돌보고 있다. 나의 담당은 젠이고 누구보다 열심히 젠을 돌본다. 하지만 가족도 연고도 없고, 의식까지 불분명한 젠을 병원에선 홀대하고 오로지 이익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일터에서고 집에서고 뜻대로 되지 않는 나의 고민은 깊어만 가는데...
술술 읽히는 소설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쉽거나 가볍지 않다. 만약.. 내 아이가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남자 연인을 데리고 온다면? 그랬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3자 입장에서라면 그래 아이의 의견이나 생각을 존중해야지, 성 정체성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잖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내 아이라면... 달라지겠지.
이 책의 주인공 '나'에게 자랑이었던 딸. 그랬기에 더 많이 가르쳤고, 더 많이 배웠던 딸아이. 그 딸아이가 사랑한다며 데리고 들어온 연인이 여자라니... 인정할 수 없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엄마. 딸은 왜 남들처럼 보통의 인생을 살지 않는 것일까? ‘내 딸은 왜 이토록 가혹한 걸까요? 내 배로 낳은 자식을 나는 왜 부끄러워하는 걸까요. 나는 그 애의 엄마라는 걸 부끄러워하는 내가 싫어요. 그 애는 왜 나로 하여금 그 애를 부정하게 하고 나조차 부정하게 하고 내가 살아온 시간 모두를 부정하게 만드는 걸까요.’ (84) 엄마의 독백 형태로 이뤄진 이 책을 보면서 계속해서 나에게 묻고 있었다. 나라면 나는 어떤 엄마로 아이와 대립하거나 인정할지, 우리네 삶은 딱 정해놓은 정답이 없어 더 혼란스럽지만 그럼에도 결국 나는 아이의 행복에 한 표를 던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 주인공 엄마가 젠을 돌보며 느끼는 죽음이라는 키워드. 치매로 기억을 잃어버린 젠이 이 사회에 점점 쓸모없는 생명으로 취급받는 모습은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딸과 젠을 동일 선상에 놓고 혹 딸이 그렇게 늙어갈까 힘들어하는 엄마의 마음이 이해된다. ‘좁고 갑갑한 고독 속에서 늙어가는 사람. 젊은 날을 타인과 사회, 그런 거창한 것들에 낭비하고 모든 걸 소진한 다음 삶이 저물어 가는 것을 혼자 바라봐야 하는 딱하고 가련한 사람. (104) 타인과 사회를 의해 시간을 낭비(?) 한 이들이 있었기에 이 사회는 조금씩 달라지고 변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로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을 살고 있는 건지 모른다. 세상을 보다 살기 좋게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좋지만, 그 중심에 내 아이가 있는 건 엄마 입장에선 싫었을 것이다. 그냥 평범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그렇게 늙어가길 소원하면서.
나도 엄마이다 보니 다양한 사연이나 사건에 '만약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 아이만의 우주를 하나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그 과정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훌륭한 삶요? 존경받는 인생요? 그런 건, 삶이 아주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는 말이에요. 봐요. 삶은 징그럽도록 길어요. 살다 보면 다 똑같아요.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된다고요. (173)